올림픽 대표선수가 올림픽을 못 뛰는 나라.

in #kr7 years ago (edited)

대한 스키협회에서 올림픽 대표로 단복까지 지급받고 훈련 받던 스키선수들 중 일부가 올림픽을 못 뛴다는 협회의 통보를 받았다며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뉴스를 접한 난 너무나 황당하고 당혹스러웠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우리가 원한 건 공정한 사회였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무질서와 비공정성. 사회정의가 무너진 나라를 뒤집자는 게 촛불 시위의 목적이었다.

사회정의에 대해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1971년 발표한 정의론에서 세 가지 원칙에 대해 얘기한다.

첫째, 모든 이에게 자유를 완벽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배려해야한다.

셋째, 결과의 불평등은 존재하되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 이상 세 가지로 사회 정의로 정의했다.

우리가 원한 건 이 세가지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대한민국에서 복지를 원했는가? 그저 횡포를 당하지 않고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랐을 뿐이다.

그들은 올림픽 만을 보며 살았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평창에 북한을 들이기 위해 우리 대표선수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난 이미 정부가 사회정의보다 정치적 이득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정부에 원한 건 사회정의였는데, 그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난 그들이 대표팀으로 뛰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이 나라는 또다시 정의를 잃고 있다.

북한이란 현실적 외교문제를 등한시 한다고? 난 이 점에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아버지가 부장님과 주말에 골프 약속이 생겨서 아들의 학예회를 놓친다면, 과연 그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냐고? 아버진 그렇게 노력해서 돈을 벌어서 가정이 유지되는 거라고 말하겠지만, 나도 가정이 있는 아버지의 입장으로 말하되, 학예회가 더 중요하다.

골프 약속에 나가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써가 아닌 개인으로써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가정을 핑계삼아. 물론 이 예시가 엄청나게 무식한 사람이 들만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맥락상 이해하기 쉬운 예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은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면 팔이 안으로 굽는 맛도 있어야지. 혹, 안으로 굽어야 하는 대상을 나만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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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