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도전 #9 - 100년 된 스타벅스에서 배운 마을과 집 이야기. The story of a town and a house that I learned from a 100-year-old Starbucks.

in #kr7 years ago (edited)

다리도 아픈데 커피나 한잔 마실까..

고베에서 100년이 넘은 두 집을 보고 내려오면서 기타노이진칸 스타벅스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100년 정도 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스타벅스입니다. 스타벅스의 시작이 1971년이니 이것은 스타벅스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카페 건물로 볼 수 있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 보면 정말 스타벅스의 커피 향기를 느낄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정말 자리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일본인, 중국인, 대만인 등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자리를 찾다가 작은 테이블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앉아서 여행의 피로를 달래고 이제 일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전에 일본 고베에 왔을 때는 모자이크라는 곳에서 야경만 즐기다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고베를 깊숙이 볼 수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정말 고베는 제가 딱 찾던 도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복잡하지 않고 여유로운 느낌도 반가웠죠. 그래서 고베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자리에 있는 것도 참 좋아했습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할아버지 한 분.

스타벅스 안에 어떤 공간이 더 있나 찾으러 다닐 때쯤..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저를 부르더니 옆자리가 비었다고 오라고 하는 손짓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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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할아버지로 소개한 할아버지. 한국으로 귀국 후.. 다시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일본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사람은 나눔을 통해 연결된다.

좀 더 대화를 해보고 싶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편안한 인상의 할아버지는 기꺼이 제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인도 사람으로 일본에서 5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50년이면 정말 긴 시간입니다. 때문에 본인이 인도에서 보낸 시간보다 일본에서 더 오래 살았던 것입니다. 젊은 시절 가족들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고 열심히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젊은 사람들을 카운슬링을 해주는 것으로 삶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물론 비용 없이 모두 무료로 자원봉사를 한다며 웃으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서 제 고민을 털어놓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왜 이렇게 도시의 삶이 힘든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만났던 어른들과 달랐던 점은 바로 삶에 대한 고민을 '돈'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젊을 때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이런 인생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은 그만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께서는 달랐습니다. 책에서만 듣던 이야기를 실제 사람을 만나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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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이진칸의 스타벅스는 특별함이 있다.

카페에서 맺은 신기한 인연

카페는 문화 공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 떠납니다. 할아버지는 이곳에 앉아서 매일 커피를 즐기다 간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대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대화가 필요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던 것이죠.

일본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도쿄와 오사카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대도시에 직장을 찾아오는 청년들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비싼 아파트 임대료로 인해서 부담스러운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높은 지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비용을 초래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은 결국 무엇을 위해 땅값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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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 좌석은 앉을 수 없지만. 느낌을 보기엔 안성맞춤.

"도시 생활에서 답답함은 누구나 느낀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도시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제 자신이 이상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할아버지 모습엔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자연도 없고 높은 건물들에 둘러 싸여 매일 매일 바쁘게 사는데 어떻게 행복하냐고 할아버지는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자신은 돈도 많지 않고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왔지만. 현재 청년들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런 할아버지가 있다고 하면. 아마 부자 할아버지라고 이야기할 듯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외모를 보면 부유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믿어보자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더 경청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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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어울어져 있는 그림. 그리고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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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는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나눔이 없는 경쟁사회의 문제점.

결국 삶 속에서 나눔이 없는 삶. 이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전원주택을 짓게 되면. 주변 이웃들과 교류하며 나누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주변 이웃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커뮤니티의 붕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커뮤니티.. 우리에게 커뮤니티란 무엇일까요. 직장이나 학교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보금자리인 집 주변의 사람들을 잘 알게 된다면 마음의 안정은 더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커뮤니티는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천 가구 중에서 나 혼자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지 않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이뤄 나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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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면 커질수록 외로움도 커지는 아파트 단지의 규모.

그렇다면 이웃의 규모는 얼마나 적당한지 궁금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서로가 이름을 외울 수 있는 규모가 적당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물론 아파트만 있는 도시에서는 그것은 자신이 보기에도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아파트 단지 가구수가 1000세대 혹은 1만 세대 규모도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할아버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건 크레이지 한 규모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의 심적 안정은 중요합니다. 물론 이웃과 이웃이 너무 서로를 잘 알게 되면 프라이버시에 대한 부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나와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나누는 정도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000세대 이하 아파트보다는 대단위 아파트가 프리미엄도 붙고 가격이 비싸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일부 신도시에 큰 규모의 아파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최근 그런 식의 개발은 멈추었다고 합니다. 감당하지 못할 규모의 대단위는 커뮤니티 측면에서 인간에게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최근 선진국들의 추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더 큰 규모의 개발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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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삶 .. 모든 욕심을 내리고 그렇게 살고 싶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웃의 정을 느끼지 못한 것도 아주 오래되었네요. @lklab2013 님 덕분에 나의 가치관과 주변을 한번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

학생때보다 점점 더 돈을 향해 달려가는 제 자신을 되돌아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은 제가 돈을 많이 갖고 싶다고 해서 돈을 주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이웃의 정.
친구의 정.
세상의 정.

이 정이 모여서 만들어진 나라가 우리나라였는데. 언젠가부터 황금이 최고가 되어갑니다. 본질이 흐려지게 되면 부작용도 심해질텐데 앞으로 좀더 햇살이 가득한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도 고베 이진칸 스타벅스에서 하릴없이 오후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저 인도 할아버지를 만나봤으면 좋았을 것 같네요. 아침부터 좋은 글을 읽으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 앞으로 있을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고베 기타노이진칸에서 시간을 보내셨군요~!
저도 한때 심취해서 여러번 방문했었습니다.
다음에 방문하시게 되면 그 시간에 꼭 인도 할아버지를 만나보세요.
어떤 사람이나 환영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한 시간 되시길~!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잘보고 갑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리플 역시 감사합니다.

@lklab2013님 잠시나마 글을 보며, 크레이지한 삶을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적입니다. 정말 부러운 삶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과의 나눔을 통해 소중한 인연도 만들고 온전한 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팔로우하고 시간이 되면 1편부터 정독하여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 저런 할아버지가 있다니..
저도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