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최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위해 광주를 방문할 것임을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시민들의 분노가 한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국회 내에서 벌이는 조직적 사보타주로 인해 5.18 특조위 구성이 지연되고, 심지어는 5.18 망언과 관련된 자한당 의원들에 대해 이행되어야 할 징계조차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에 방문해 화해의 악수를 어물쩍 내미는 것은 그저 기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이 5.18 특조위 구성에 성실하게 참여한다고만 해서,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 과정을 성실하게 이행한다고만 해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교안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상징의 정치 너머에는, 남한의 수구 정치세력과 당대의 민주주의 요구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남한 사회에서 민주주의 실천의 주체로서 시민의 상이 드러나는 계기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5.18은 억압적 지배 권력이 권위주의적 국가 기획의 기제인 군사조직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요구를 진압하려 든, 대중을 향한 반동적 정치구성체의 전쟁 선포이기도 했다.
시민사회는 그것이 구성된 이래로부터 전쟁터의 역할을 해왔다. 전선의 한 축에는 억압적 권력 관계의 하부에서 체제의 모순에 대한 논의의 장을 구성하고, 이를 사회적 요구와 실천으로 벼려내려는 이들이 있다. 시민사회를 다극화된 주체들의 요구가 자유로이 유통되는 공간으로 구축하고 또 이를 수호하려는 점에서,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토대, 민주주의라는 수단과 함께 한다. 한편 전선의 다른 한 축에는, 기존의 지배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이러한 질서에 도전하는 민주주의 요구들을 은폐하려 드는 이들이 있다. 대중의 요구들을 강제적 수단으로 진압하기 위해 권위주의적 국가 기획으로 회귀하려는 시도, 혹은 대중의 문제제기가 지배 질서에 대한 공격으로 수렴되지 않도록 사회문제의 책임을 약자들에게 전가하는 혐오 선동은 이러한 정치 기획의 수단들이다.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이는 5.18이 시민의 요구를 들고 공간으로서의 시민사회를 열어 젖히려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총칼로 진압한 신군부는 이제 없지만, 민주주의의 적들은 여전히 도처에서 우리와 투쟁하고 있다. 사회적 낙오자들의 생존을 보장하여, 이들을 사회적 성원으로서 민주주의적 담론의 장으로 참여케 하는 사회보장제도는 누구의 공격에 직면하고 있나. 세월호 사고로부터 시작된 자본과 안전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제기를, “세월호는 교통사고”라는 망언으로 폄하한 이는 누구인가. 여성, 퀴어, 장애인, 청소년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누가 조장한 혐오의 정치를 마주하고 있나. 자유한국당은 남한 사회 속 반동적 정치구성체의 한가운데서 민주주의와의 여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적 논의에 참여하려는 사회의 성원들을, 민주주의적 시민사회 바깥으로 내쫓으려 하고 있다. 전쟁은 1980년 5월 18일에도, 2019년 5월 18일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적들을 민주주의의 성지에 들일 수는 없는 법이다. 자유한국당이 민주사회의 시민들과 마주해야 할 곳은 광주가 아니다. 시민사회 속에 펼쳐진 전선과 전쟁터다. 5.18 정신은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광주에 얼굴을 비추고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때에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