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essay] 고전읽기의 괴로움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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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문학이 어떻게 여타의 책보다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고전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삶의 정수가 들어있고,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검증된 사상과 간접 체험을 전하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을 읽을 때는 몸이 배배 꼬이기 일쑤고, 책장을 펴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는 잠마의 위협을 겪는다. 한 구절 혹은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의 수많은 활동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고전을 읽는 것은 괴로움을 자처하는 일일 수 있다. 고전이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토록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의 비밀이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은, 쉽게 얻은 것보다 더욱 내면에 깊이 각인된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책'으로 손에 꼽고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고전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고전을 읽는 것은, 정신에 깊은 흔적을 내는 과정이며, 그것은 고통이 따른다. 내 미력한 경험을 통해서도 난, 쉽게 읽고 느낀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오래가는 향기는 고통 속에 피워낸 향기이며, 자랑스레 드러낼 수 있는 상처는 적극적으로 싸운 선한 싸움에서 얻은 흉터일 것이다.

 독서는 고귀한 '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 고전을 읽는 것은, 고귀한 '고통'이라는 말을 맘대로 덧붙여본다.

월든

 대학 1학년 때 몇 달을 끙끙대며 기숙사 침대 위에서,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세기에 살았던 한 선각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북소리를 찾아 그대로 행동했던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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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은 특별한 지성을 소유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사회 속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월든 호숫가에서 원시적인 삶을 살면서, 문명에 대해, 자연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을 읽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던 것은, 어렵거나 난해해서가 아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내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백 미터도 안 되는 중심가 거리를 지날 때,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끄는 호객꾼이 2미터마다 한 명씩 있다면, 그 길이 아무리 짧아도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짧은 거리였지만 누구도 그 길을 평탄했노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월든」을 다 읽고 나서 난 자문해 보았다. 누구나가 사회로부터,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난 이 모든 인정과 기대를 물리치고 내게 들리는 북소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내 북소리라면 소로우처럼 그 정신이 원하는 길을 따라 월든 호숫가에라도 집을 지어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한낱 장신구쯤으로 여길 수 있을까.

 다른 이와 구별된 '나만의 북소리'를 따라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바램을 이룰만한 용기가 내 안에 없음을 난 발견하게 된다. 어떤 위대한 일을 시도한다거나, 다른 이들이 쫓는 똑같은 모양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나를 향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인정을 바라지 않는 그 일조차도 아직 연약한 내 정신은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난 이따금씩 그 책이 주었던 정신적 괴로움과 충격을 생각한다. 내 삶이 치열함을 잃어버리고, 그저 시간과 공간과 다수의 사람들이 흐르는 방향으로 휩쓸려가는 시간에, 난 소로우를 생각하고, 월든 호숫가를 생각한다.

 고전 읽기의 괴로움이 주는 삶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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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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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전 무협지인 구운몽을 추천합니다 ㅋㅋ

그,, 옛 시대 활극이자 판타지가 가미된 바로 그 책 말이죠?ㅎㅎ

무협지의 정석이죠ㅋㅋㅋ 주인공 킹왕짱ㅎㅎ

주인공이 엘프들과 염문을 뿌리다가 현실로 돌아온.. 진정한 판타지 스타죠, 킹왕짱ㅋㅋ

@kyslmate 님은 글을 참 잘쓰세요. 멋있어요. <월든>은 읽어야지 하다 못읽었는데 한국가면 다시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칭찬 감사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월든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책이었어요ㅎ 담에 봄마당님 감상평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탄하고 갑니다.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좋은 책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한권을 여러번 읽는경우도 많은것 같습니다. 특히 노자,장자는 10번 넘게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새롭게 읽혀지더라구요...
그리고 각각의 저자들이 보는 다른 관점의 노자,장자 주해본도 꽤나 달라서 읽는재미가 있다보니 끝이 없네요ㅋㅋㅋ

노자, 장자를 그렇게 많이 읽으셨다니 대단하시네요! 득도하신 거 아닌가요?^^ 많은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고추참치님처럼 같은 책을 재독하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인 것 같습니다. 특히 고전은요! 그런 내공이 있으시니 법을 그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시는 것 같네요ㅎ

책을 즐겨 읽지 않지만 그러기에 @kyslmate님을 팔로우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ㅎ 제이탑님의 독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참 짜임새있는 소개였습니다!

오후님, 감사합니다. ^^ 오후..어감이 참 좋습니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잘난척과 자랑을 할 수 있어서죠. ㅎㅎ 유명한 고전들 막상 읽은 사람 찾기가 힘듭니다. 읽은 뒤의 감명과 뿌듯함도 상당하겠지만 지적허세에 대한 욕망을 이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그랬거든요^^;; 가끔은 책읽기도 남에게 뒤쳐지기 싫어했던 어린날을 생각해봅니다.

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은 책이다." 라고 쓰기도 했지요.
지적허세나 자랑을 위해 읽기 시작해도, 읽고 나면 그런 마음이 조금은 달라져 있을 수 있는 책이 바로 고전인 거 같아요. 진솔한 생각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전은 인테리어용...아니었나요..??ㅋㅋㅋㅋ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미문학 시간에 배운 작품을 여기서 보니 참 반갑네요ㅋㅋㅋ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인테리어 및 목침으로도 사용되지요ㅋㅋ
교양과목으로 배우셨군요~~ 그렇게 접한 작품엔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책이 그렇다니 안타깝네요ㅋ

고전과 철학은 읽기가 참 힘들어요.
칸트의 3대비판서를 완독하는데, 세 달이 넘게 걸렸답니다 ^^;
오랜만에 고전 한 권 읽어봐야겠네요.

와우~ 그 책은 완독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전 순수이성비판으로 시작하려다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ㅎ;;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필 "투명드래곤"을 추천합니다 ㅋ!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인가요?ㅎ 마법계의 고전같은데요ㅋ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ㅎㅎ
많이 와서 읽고 갈게요!! 팔로우하고 갑니다ㅎㅎ

감사합니다ㅎ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19세기 문학 참 좋아합니다. 다만 그 시대 글쓰기 방식으로 지금 쓰면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곧잘 합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풀어가는 방식의 문제랄까요. 충격적인 도입부, 끊이지 않는 서스펜스, 사족을 배제하고 본론으로만 끌어가는 현대 문학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오늘 식탁에 올라온 음식까지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 방식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서스펜스 중간에 힐링 포인트를 만난 것과 다름없겠지만요 😂

동의합니다ㅎ 고전이나 옛 문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죠. 그래서 형식적인 측면에선 현대의, 최신의 감각을 익히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하지요.
다만 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사유와 인간을 탐구하는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스무살때 읽었던 19세기 문학중에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고 느꼈던 감동, 그 진한 독서 체험이 그 후로도 계속 큰 영향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19세기를 들으니 반갑네요. 제인에어가 떠올라서 기분이 갑자기 좋아집니다.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ㅎㅎ

그래서 제 책장의 9할이 19세기 후반-20세기 중반에 치중돼 있나 봅니다. 여담이지만 수집욕을 일으키는 새로운 판본이 나오는 것도 고전이 주는 즐거움 같습니다. 펭귄의 양장본 시리즈처럼요😅

19세기 소설 애호가시군요ㅎㅎ 저도 특정한 작가의 책은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 컬랙션으로 모으기도 합니다. 읽는 즐거움뿐 아니라 소유하는 즐거움에도 공감합니다^^

월든!! 읽어보겠다고 들여놓은게 제작년인데...
수십페이지 보다가 안읽혀서 때가 아닌것 같아 짱박아둔게 생각났네요! "시민의 불복종"도 들여놨었는데 어디있더라.. ㅡㅡa
시간이 좀 흘렀으니 다시 펴봐야겠네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로 홀연히 가셔서 지내시는 ryuie님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저자가 쓴 책이니 님에게 감화를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ㅎ

그저 편리한 것만 추구하게되면
결국 남는 건 없겠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잘 보고 가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나의 안락을 벗어던질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ㅎ 감사합니다^^

당장 월든이 읽고싶어지는 포스팅입니다. 괴롭힘이 고전을 만든다는 생각이 참 신선하면서도 공감이 갑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괴로움을 당하면서 고전의 책장을 넘길 용기가 조금 생기셨길 바랍니다^^

실증을 강조하는 사람이라 자연스레 고전과 멀어집니다. 반야심경만 보아도 고전에는 고전의 멋이 있는데 말이지요.

실증적인 시각의 빈 공간을 고전이 채워주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 좋은 생각 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칭찬과 인정을 한낱 장신구 쯤으로 알고 자신의 북소리에 맞춰 당당히 걸어가라!.....와!

이렇게 하지 못하니까, 이 말은 대단해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요.ㅎ

중문가 수업들을때, 중국고전문학이 그렇게 재밌던데, 포스팅을 보고 지금생각해보니 쉽게 읽히는 현대문학보다 한글자한글자 허투루 볼수없고, 그에 함축된의미를 파헤치는 맛에 좋아했던 것 같네요 ㅎㅎ

네 바로 고전은 그런 맛을 느낄 수 있죠.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려도 읽히는 이유가 있죠^^

무척이나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러시아의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정말 오만 인상을 썼던 것이 기억납니다.
도대체 이갸기의 전개가 왜이리도 길게 늘어지는 것인지.
왜 다시 과거를 또 회상하는 것인지

고전 장편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보았던 책들도 많았는데
유독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속으로 '역시 내게는 고전이 맞지않아'라는 생각을 되되였던 기억이..

하긴 요즘은 통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투자기법, 코인의 원리.. 되려 더 읽고 싶지 않았던 책을 꾸역꾸역 읽고 있음에 블럭체인 기술을 읽는 것도 형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시간이 지나 지금의 블럭체인 기술이 당연시 되는 미래에
지금의 제가 읽고 있는 책들이 블럭체인의 고전이 되어있다면
ky님께서 내놓은 해석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라나요? ㅎㅎ
tip!

오만 인상을 쓰며 읽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책이 기억나는 거죠?ㅋ
지적하신대로 고전들은 이야기 전개 방식이 지금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보다 지금 우리가 읽기에 더 어려운 점도 있지요. 내용의 문제보다 형식의 문제 가까운.
어쨌든 지금 읽으시는 책들이 고전이 된 미래엔 책과 함께 소철님의 투자도 성공하여 고전 투자자의 반열에 오르셨겠군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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