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단상] 지긋지긋한 '교육'이라는 말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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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 교사를 만났을 때, 묻지도 않았는데 '교육은 이런 것이다' 라고 설파하는 선배보다, 지금 눈 앞에 있는 후배의 행복과 결핍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선배의 교실에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결국 교사는 교육 현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선 그럴 듯한 말을 상대에게 구겨 넣는 것보다 상대가 생각과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내 눈빛과 태도를 정돈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교육이 전부였습니다."
 어떤 교육자가 은퇴식에서 이렇게 소개된다면, 나는 그 말이 숭고하게 들리기보다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질 것이다. 교육은 삶으로부터 나와서 삶을 아우르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었다면 그는 교육적인 말을 해왔을지 몰라도, 몸으로, 삶으로 교육을 하진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발령을 기다리면서, 잠시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을 때, 그 학교의 젊은 교사들끼리 어울려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사소한 얘기들이 오가는 편안한 자리였다. 그 다음 날 40대 초반의 한 남자 중견 교사가 어디서 들었는지, 전날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한 여교사에게 전날 회합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어제 젊은 선생들 모여서 집 사는 얘기나 시시껄렁한 얘기들이나 했다며?" 중견 교사의 말은 다분히 비판적인 어조였다. 나보다 경력이 많던 이십 대 후반의 여교사는 당황한 낯빛으로 큰 잘못이나 지은 것처럼 대답했다. "네, 그러고 보니 그랬네요. 교육적인 얘긴 별로 못하고..." 중견 교사는 짐짓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규 교사들이 뭘 배우겠어."

 그들은 같은 교원 단체에 속해 있었고, 교육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 있으면서,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역시 선생님들의 집 사는 얘기나 시시껄렁한 얘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이다. 난 한동안 별 볼 일 없는 교사처럼 행동했다는 자책에 시달려야 했다. 한편으론 그때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하고 끊임없이 자문했다.

 내가 그 중견 교사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중견 교사의 말과 태도는 약에도 쓸 수도 없는 개똥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젊은 교사들의 모임은 어때야 한다고 '교육'하려는 그 태도야말로 '반교육적'인 것이며, '교육'이라는 말을 단물 빠진 지긋지긋한 말로 전락시키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식사 자리를 교육적 대화로 가득 채우길 원했던 그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어떤 종류의 얘기를 강요받아야 했을까.

 그 옛날 젊은 교사들의 저녁 식사 자리는 한 직장에서 생활하게 된 사람들이 서로를 좀 더 알아가고자 하는 사소하기 그지없는, 그래서 숭고한 시간이었다. 술도 없었고 대단한 '교육'도 없었지만, 식사를 하고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며, 앞으로도 서로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에서 성립되기 쉽지 않는) 관계가 되자고 애쓰는 자리였다. 다른 사람에게, 내게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늘어놓아도 괜찮다,고 허용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보기에 많은 선배 교사들이(또는 한때 교사였던 관리자들이) 후배들에게, '교육적' 이나 '교육이라는 관점'이라는 전제를 깔고 지껄이는 많은 얘기들은 후배들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말고는 자신이 후배들의 우위에 설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방증일지도.

 '교육'이라는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들어 앉은 자는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 교육은 정형화된 구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을 사는 태도나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훌륭한 선생님들은, 글로 기록할 때를 제외하곤 면전에서 '교육'이나 '교육자'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거의 모든 문장의 주어는 '나'였다. 그들은 진솔하게 삶을 나누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하는지, 어떤 눈빛을 건네야 하는지를 몸으로 가르쳤다.

  '교육'이라는 말을 몸소 낡아 빠진 구호로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화가 난다. 아니 측은하다. 나는 나이 먹어도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교육은 삶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지, 교육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아, 교육이라는 말을 넘 많이 써서 입에 단내가 나는 것 같다. 지긋지긋하다. 한동안 떠올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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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ㅎ

이렇게 깊게 생각하시니 참 '교육자'이십니다. ㅎㅎㅎ

당치 않습니다.ㅎ;; 늘 교육에 대해 쓸 때는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이 글에 제 풀파워의 10배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에 감탄했습니다. '그럴 듯한 말을 상대에게 구겨 넣는 것보다 상대가 생각과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내 눈빛과 태도를 정돈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인상 깊게 볼 것이 있었다는 것이 기쁩니다. 작가님 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이 문장 공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ㅎ

가르치려 드는 것? 아마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직업병이란 생각도 듭니다.
같은 교사들끼리 있을 때도 이런 직업병이 발동된다면 참....

ㅎ 다 그런 건 아닌데, 간혹 교육이라는 틀에 갇혀 계신 듯한 분이 있지요.

그저께 새로들어옴 신입사원에게 교육을 해야하는 시간이 주어졌었어요.
업무적인 이야기는 간단히하고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급여를 어떻게 운용할건지, 언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했네요. 아마도 팀장님이 아시면 교육같지 않은 교육을 했다고 한소리 하실 거 같아요 ㅎㅎㅎ

그 신입사원은 팥쥐님과 얘기를 나누며 조금은 긴장의 끈을 늦추었을 것 같네요. 딱딱한 회사에도 인간적인 관심을 나누며 시시껄렁한 얘기가 허용되는 누군가가 있구나, 하고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대화들이 서로에게 숨쉴 공간이 되더라구요.ㅎㅎ 역시, 정많은 선배시군요!

내가 그 중견 교사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중견 교사의 말과 태도는 약에도 쓸 수도 없는 개똥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끄덕끄덕 자기 전 마지막으로 읽기에 흐뭇한 문장입니다. 이리 시원할 수가

시원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꿈나라로~~ㅎㅎ
역시 개똥이 주는 쾌감이 있네요. ㅋ

선생님이 아니지만, 저도 완전 사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만나서 일상 소소한 얘기를 하면 어떻고, 다른얘기를 하면 안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