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려가 없었던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추억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사람이다.
상대의 탓을 하고 싶진 않다. 탓을 할 수가 없기도 하고.
어쩌면 나 역시도 배려를 바랬던 걸지도. 상대의 사랑은 1월 15일에 끝이 났지만, 당시의 나는 최고조라 생각했던 사랑이 최고조를 뛰어넘고 있었으니까. 상대의 부재, 뭐랄까 소멸, 멸종 같은. 그런 마음은 처음이었다. 그 부재를 메꿀 시간을 이해받기를 바랬다, 최근까지도.
구멍난 가슴이 뭔지 당시에야 알았다. 다신 느끼고 싶지 않은 당시의 기억이다. 간지럽고, 찌릿하고 그런 수준이 아니다. 두들겨 맞은 기분도 아니고. 오토바이가 내 다리를 찢어버릴 때의 느낌도 아니다. 설명하지 못하겠다. 상상의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직도.
시간은 다행히 정말 약이다. 하지만 아직도 여름 냄새가 문득 코를 스치면 경리단의 루덴스가, 요즘처럼 비가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할 땐 축축한데도 불쾌하지 않았던 뚝섬의 한강이 떠오른다. 추억할 수 없음에 추억하는 것이 더욱 값지고 귀하고 소중히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