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헌법은 제헌헌법에서부터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의 요소가 혼합된, 상당히 특이한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왜곡은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헌법 초안을 기초한 유진오와 제헌국회의 다수파였던 한민당은 내각책임제를, 유력 정치 지도자였던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각기 주장했기 때문에 생긴 혼란이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은 무려 아홉 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의 역사를 가지게 되지만, 개헌의 내용은 대부분 대통령 선출 방법과 임기, 권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3차 개헌을 통해서 내각제에 기반한 헌법이 등장하지만 5.16 쿠데타와 1962년의 5차 개헌을 통해서 다시 대통령제로 회귀합니다. 이후 한국에서는 계속 강력한 대통령 권력이 계속해서 유지됩니다. 이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힘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독재자들에게도, 독재를 갈아엎으려는 민주화 세력에게도 마치 '절대반지'처럼 기능했습니다. 간혹 내각제를 시행하자는 논의가 정계에 솟아난 적이 있었지만, 이 역시 대부분 정치 권력의 향방을 둘러싼 당리당략적 시도였을 분, 한국 정치를 더욱 민주적으로 디자인하고자 하는 진지한 논의였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한국의 대표 정치학자로 꼽히는 최장집 교수는 이처럼 정치제도에 대한 토론이 부족했던 과거에 대하여 "결과적으로 제도에 대한 파당적 이해관계를 넘어, 특정의 제도, 특정의 경쟁 규칙이 사회와 시민의 이익과 요구를 얼마나 잘 대표할 수 있는지,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편적 기준에 대한 고려나 관심은 우리의 전통 속에 자리잡지 못했다"고 비판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저는 개헌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이 어찌보면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정치제도와 권력구조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대통령의 권력이 '만능 키'처럼 여겨져 왔던 인식에서 한 발짝 벗어나,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정치제도와 정부 형태가 시민들의 이익과 요구를 잘 대표할 수 있을지 제로에서부터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개헌 논의에 있어서 정당별 지형도를 그려보자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꾸고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국회와 지방정부로 분산시키겠다는 것이 당론입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로 전환, 예산 편성권과 감사권, 인사권을 국회로 이관하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지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분권형 대통령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원집정부제를 모델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2야당인 바른미래당은 기본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역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민주평화당은 여당의 4년 중임제에 동의하는 모양새고, 정의당의 경우 기본적으로 대통령 권한 분산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그럼, 이러한 지형을 참고하여 국가의 권력 구조와 정부 형태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러프하게 정리했을 때, 한 나라의 정부 형태는 크게 대통령중심제, 내각책임제, 그리고 두 제도를 결합한 이원집정부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통령중심제의 경우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정 전반을 책임지며, 의회는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대통령제의 경우, 보통 정해진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임기 내에 정부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강력한 개혁이 가능한 특징이 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에 따라 퇴보 역시 강력할 수 있습니다 (...)
단점이라면 역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이 양날의 검처럼 작용된다는 것이겠죠.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은 자칫 독재로 이어지기 쉬우며,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이기 때문에 정당 간의 협조나 온건한 경쟁 대신 갈등과 반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의견이 사장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표 차이가 많건 적건 간에, 당선된 대통령의 권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대표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대통령중심제는 민주주의를 다수결 힘싸움으로 오해하도록 만들기에 딱 좋은 제도입니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중심제는 정당 정치의 발전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정당은 정치 이념이나 정책을 공유하는 조직이라기 보다는 유력한 대선 후보를 매개로 한 선거동맹에 가까워집니다.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이나,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색깔이 맞지 않는 두 정치인을 끌어들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좋게 말하면 정치가 역동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정당이 매번 이합집산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이 제 색깔을 가지고 오랜 기간 당원 조직과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려워지는 셈이죠.
노태우는 향후를 보장 받고 싶었고,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김종필은 내각제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벌어졌던 이합집산, 3당 합당
또, 대통령 개인이 정당보다 우위에 서기 때문에,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 보다도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느냐가 나라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당이 되기 보다는, 유력한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계파가 구성되고 그 계파의 의지가 정당을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지금의 대통령단임제에서는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제의 장점이 보장된 임기 내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인데, 단임제 하에서는 이 지도력이 끝까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국가 정책 보다는 단기적인 치적 쌓기에 몰입할 가능성이 큽니다. (4대 강이라던가...)
내각책임제의 경우,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역할을 맡고 행정부의 수반은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됩니다.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는 국가원수의 역할을 보통 왕이 맡습니다만, 한국의 상황을 기준으로 서술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외교와 국정 조정을 맡고, 정부의 구성과 운영은 총리가 맡는 분권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중심제와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기 때문에 행정부 수반인 총리의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언제든 의회에 의해 행정부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총리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회는 시민들의 여론에 민감해지고 총리에게 언제든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역으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만큼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면 정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에서 내각책임제가 실시되었던 장면 정권 시기는 4.19 혁명 직후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내각제는 정부 운영이 불안정하다는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내각책임제의 특징 중 하나는, 승자독식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한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 이상의 의석을 얻지 못할 경우, 총리를 뽑기 위하여 정당 간 연합에 의해 정부가 구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연립정부라고 하는데요, 정당 간의 협상을 통해서 국정이 운영되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에 비하여 더 많은 유권자들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당 간 연합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무조건 발목 잡기 식의 정치가 아니라 의제에 따라 정당 간 협상과 타협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편입니다. 대통령중심제처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어렵지만, 연립정당 간에 큰 이견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빠른 입법이 가능합니다. 연립정권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원내 다수당임을 의미하니까요.
정당 정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내각책임제가 대통령중심제 보다 큰 이점이 있습니다. 대통령중심제가 보통 대통령 후보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진다면, 내각책임제에서는 정당에서 총리 후보를 지명하기 때문에 정당이 인물보다 우위에 서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정당이 제 색깔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내각책임제의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먼저, 대통령중심제처럼 여소야대 구도가 펼쳐질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에 대한 야당의 견제가 어렵습니다. 내각책임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서 양원제를 채택한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상원과 하원을 분리시키고, 그 구성 방식을 달리하여 상원이 하원에 대한 견제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대표하는 정당들이 많아진다는 장점은 역으로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군소정당이 난립할 경우,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연정이 어려워져 정부 구성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령 연립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정치적 갈등으로 연립이 깨지면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정치적 혼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가 각기 장단점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실, 어느 제도가 더 우위에 서있느냐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현재 한국 사회에 걸맞는 정치적 제도가 무엇이냐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특히 한국은 '직선제 = 민주화'라는 정치적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고, 수십년 간 대통령중심제가 이어져 온 나라이기 때문에 대통령중심제를 폐기하고 내각책임제로 전환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조건에 있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야당이 내각책임제를 주장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요.
자, 그렇다면 이원집정부제는 과연 뭘까요? 사실 우리에게 좀 생소한 이원집정부제야 말로 현재 개헌을 둘러싼 논의의 '키 포인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원집정부제는 과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나타난 혼합형 정부형태에서 기원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집행부가 선출된 대통령과 내각의 두 기구로 구성되며, 대통령과 내각이 행정에 대한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형태를 말합니다. 정치적 안정기에는 내각책임제 형식으로 총리가 고유한 권한을 행사하며 정부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그러나 국가 위기 시에는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가지고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보통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그외 행정부처에 대한 권한은 총리에게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가 이런 형태의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치학자 뒤베르제가 이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표현했습니다. 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무엇인지 생기는 개념의 혼란은 이런 연유 때문인데요. 뒤베르제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형 제도 장치라기 보다는, 의회의 다수파가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국면을 교대하는 정부 형태"라고 정의됩니다. 두 요소를 섞어놨다기 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통령중심제의 특징과 내각책임제의 특징이 교대로 등장한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원집정부제에서는 만약 대통령도 A당 후보가 선출되고, 총리도 A당에서 내게 된다면 대통령중심제가 가지는 특징이 거의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A당인데 의회 다수파는 B당이 점하게 된다면 내각책임제의 특징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통 동거정부라는 용어로 표현하곤 하죠.
얼핏 보면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절묘한 절충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장단점이 모두 나타날 수 있는 위험한 방향이 될 수도 있죠. 극단적인 경우,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는 러시아처럼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가며 개인이 권력을 장악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한 분배를 적절하게 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은 제헌헌법 때부터 국무총리직을 두고 있었지만,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국무총리가 실권을 가져본 적은 극히 드뭅니다. 헌법에 규정된 국무총리의 역할과 권한은 국무위원 제청권, 해임건의권, 행정각부 통활권 등이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과 그 권한이 중복되는 가운데, 총리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유명무실할 따름이었습니다. 과거 '책임 총리'라는 표현으로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사례가 있었으나,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서 가능했던 것이지 국무총리가 독립적인 역할을 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한국 정치의 역사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에 대한 해법이 쉽게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한국의 정치 현실에 맞는, 그리고 정치 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제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개헌 논의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가능한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4년 중임제는 지금보다 대통령이 민의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장기적인 정책을 꾸려나가기에 적합한 방향입니다.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총리가 협력하여 국정을 운영한 정치적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는 대권과 당권이 분리되어 협력했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국회 모두 동일한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2인의 최고 지도자가 상호 협력과 견제의 관계를 맺기 보다는, 강한 갈등 관계를 빚거나 일방적으로 종속 관계가 될 우려가 큽니다. 기존의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국무총리의 권한을 확대하는 정치적 실험과,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 풍토와 경험이 선행되어야,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이행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하되, 더 나은 대통령제가 될 수 있도록 임기와 방식을 손보는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분산은 굳이 정부를 이원화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는 것으로도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사법부에 강하게 권한을 행사하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사법부가 독립적인 법관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견제할 수 있습니다.
유권자의 표가 광범위하게 반영되지 않고 승자독식하는 구조의 문제는, 결선 투표제 도입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결선 투표제를 도입한다면, 적어도 과반 이상의 유권자가 선택하지 않은 대통령이 당선되는 사태(87년 대선에서 노태우는 겨우 36.6%의 득표 만으로 당선되었죠)는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를 강화함으로써, 정당 정치의 발전 가능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 제도 하에서 정당보다 인물이 우선하는 풍토를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는 제도적 변화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정치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적 정당정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기형적 정치 현실은 근본적으로 오랜 권위주의 독재 시절 누적되었던 시민 사회에 대한 억압에서 기인합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억압과 통제는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여전히 한국 사회를 규율하는 원리로 작동했습니다.
정말 제도적 변화가 절실한 곳은,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익히고 실천할 수 있는 일상의 영역에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한 현 상황에서, 학교에서부터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가르치고 학생자치를 통해 민주적 경험을 쌓도록 변화해야 합니다. 또, 직장에서부터 노동권을 지키고 노동조합과 같은 시민적 결사를 통한 활동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청소년 시절 부터 정치를 경험하고 정당에 가입하여 자신의 이념에 따라 당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되어야, 정당 정치의 문화가 꽃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야 할 사회적 기반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한국의 정치 문화가 바뀌고 정당 정치의 실질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개헌의 핫 이슈인 권력 구조에 대해 길게 글을 썼지만, 저는 권력 구조에 개헌의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민주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 이원집정부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치의 영역에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장을 여는 것이 포인트가 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헌은 선언적 차원에서 '민주공화국'을 반복하는게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부터 정치의 장을 열 수 있는 헌법적 근거들을 마련하는 개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부족한 교양을 채워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회와 시민의 이익과 요구를 얼마나 잘 대표할 수 있는지,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편적 기준에 대한 고려나 관심은 우리의 전통 속에 자리잡지 못했다”는 말이 저는 참 와 닿습니다. 결국 의원내각제냐 대통령 중임제냐 하는 논의도 큰 의미가 있긴 하지만 특히 부각되는 이유는 기득권의 밥그릇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저 처럼 관련 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경로가 열리는 것,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민의 정치참여는 장기적인 과제라 어렵네요... 당장의 헌법 개정을 시작으로 구조/제도적 개선이 중앙정부의 최상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권 확대(중앙 정부 역할 축소), 사법구조개혁(특히 인사권 분리/견제적인 역할 확대)등 더 낮은 단위 까지 논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헌법 개정 논의 중 중요한 축이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입니다. 말뿐인 지방분권이 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풀뿌리에서부터 시민 참여가 가능한 지방분권이 되어야 할텐데요, 이에 관해서는 조만간 따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구조 개혁과 관련해서는 얼마 전에 간략하게나마 쟁점들에 대해 정리해서 글을 올린 바 있으니 이 글도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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