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관한 생각들 (6) - 조소앙과 유진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in #kr7 years ago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31일에 개원했고, 제헌헌법은 잘 알려졌듯이 제헌절인 7월 17일에 공포되었습니다. 불과 50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처럼 헌법 제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던 것은 흔히 '대한민국 헌법의 아버지'로 꼽는 유진오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유진오는 경성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경성제국대학 최초로 조선인 법학교수로 추천받기도 했던 수재였습니다. 제헌국회가 개원할 당시에는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법과대 교수이기도 했구요. 당시 그는 조선인으로서 유일하게 공법학 교수였다고 하는데, 따라서 헌법 제정 과정 전반에 유진오의 손길이 닿아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유진오는 훗날 [헌법기초 회고록]이라는 책을 써서, 헌법 제정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제헌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는지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정 이상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회고록을 꼭 남겨서, 개인의 입장에서 당시의 역사를 기록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식적인 기록에서 추론하기 힘든 구체적인 내용들을 훗날의 사람들이 확인하고 연구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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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가 직접 쓴 제헌헌법 초안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 유진오 역시 맨땅에서 그냥 시작한건 아닙니다. 유진오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1941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했던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참고하여 제헌헌법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기초한 사람은 누구냐, 하면 바로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흔히 '삼균주의'를 주창했다고 알려져 있는 조소앙 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조소앙의 이름이 잠깐 등장했습니다. 바로 [대동단결선언]에 참여한 인사로 조소앙을 언급했는데요, 사실 조소앙은 [대동단결선언]에 단순히 이름만 올린게 아니라 선언문 초안을 직접 쓴 사람이 조소앙입니다. 그뿐 아니라 조소앙은 역시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도 깊게 관여했습니다. 이처럼 임시정부에서 이론가 역할을 맡았던 것이 바로 조소앙인데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했을 때, 그 민주공화국이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만들어지고 구체화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조소앙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아버지'가 유진오라면, 조소앙은 '대한민국 헌법의 할아버지' 정도는 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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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근현대사 시간에 조소앙에 대해 배울 때, 조소앙은 삼균주의, 삼균주의는 쑨원의 삼민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정도로 간략하게 배우고 넘어갑니다. 사실 영향이 없지 않을 수 없지요. 당시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의 후원에 의해 유지되었기 때문에, 임시정부에 대한 국민당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고 합니다. 특히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단체들에도 사회주의의 사상적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당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지도 이념인 쑨원의 삼민주의와 국민당의 강령인 건국대강을 임시정부에서 채택할 것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삼균주의는 삼민주의의 사상적 영향력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임시정부의 건국 강령을 보면 오히려 국민당의 그것보다 더욱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회각층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가짐을 고르게 하여"라는 표현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바로 교육과 정치, 경제에 있어서의 평등을 강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이 방안으로서 "보통선거 제도를 실시"하여 정치적 평등을, 산업의 "국유제도를 채용"하여 경제의 평등을, "공비교육(무상교육)"으로서 교육의 평등을 이루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농공인의 면비의료(무상의료)를 보급"하고, "노공, 유공, 여인의 야간노동과 연령, 지대, 시간의 불합리한 노동을 금지"하는 등 복지와 노동에 있어서도 선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국 강령의 정신은 제헌 헌법에도 어느 정도 이어졌습니다. 오늘 날의 시점에서 봤을 때 제헌 헌법은 의외로 급진적인데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던가, 공공성을 지닌 기업은 국영화 한다거나, 광산과 수산자원 등 천연자원 등은 국유로 하는 등등이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당시 사회주의가 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고, 심지어 자본주의의 최첨단 국가인 영국과 미국도 복지국가나 케인즈주의가 강한 영향력을 가지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러했겠지만...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임시정부 건국 강령의 영향 역시 적지 않았겠죠.

수십년이 지난 지금, 개헌이 화두가 된 이 시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만들고자 했던 나라의 상은 어떠했는지, 또 제헌 당시 새롭게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번 살펴보고 복기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헌법 제정과 수 차례의 헌법 개정 과정의 어두운 모습들을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과연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헌법을 가지고 어떠한 만행(!)들을 펼쳤는지 한번 살펴보는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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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판단의 근거는 남겨둬야 하는데, 귀찮아서 자꾸 까먹고 매번 나중에 다시 고민합니다 orz
이번 개헌에서는 어떤 사람이 저런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일정이 눈앞에 있는 것 치고는 너무 조용한데...

이과라 그런지 10년도 더 전이라 그런지 근현대사는 기억이 없네요...

아무래도 이제 시대가 혼자 다 쓰는 시대가 아니라... 아주 격론이 치열할 것 같긴 합니다.

국민헌법자문위원회 위원 명단이 좀 재밌습니다 ㅎㅎ 한 진보 하시는 분들이 많이 모여있는듯. 사실 중요한건 과연 내용보다도 여론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https://www.constitution.go.kr/main/member

하긴 이제는 혼자 뭐든 하는 시대는 끝났죠..
여론이 세세한 내용을 반영해 형성되기보단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면이 클 것 같은데,
국민헌법 사이트의 댓글들 보면 한숨이 나오더군요 orz

흥미로운 시리즈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