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관한 생각들 (5) - 3.1 운동과 헌법에 대하여

in #kr7 years ago


글을 쓰다보니 3.1절이 조금 지났습니다만, 오늘은 3.1절 특집으로 글을 좀 올려보려고 합니다. 제목은 '개헌에 관한' 것이지만, 사실 개헌 보다는 헌법 그 자체에 대한 글이 되버렸는데요,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 1917년 7월, 신규식, 반은식, 신채호, 조소앙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독립운동가들이 '대동단결선언'이라는 조금 생소한 이름의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 낯선 이름의 선언문은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선언문의 내용부터 좀 볼까요?


(중략) 융희 황제가 삼보(영토, 인민, 주권)를 포기한 경술년(1910) 8월 29일은 즉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그 동안에 한순간도 숨을 멈춘 적이 없음이라.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저 황제권 소멸의 때가 곧 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의 마지막 날은 즉 신한국 최초의 날이니, 무슨 까닭인가. 우리 대한은 무시 이래로 한인의 한이오 비한인의 한이 아니라. 한인 사이의 주권을 주고받는 것은 역사상 불문법의 국헌이오. 비한인에게 주권 양여는 근본적 무효요, 한국의 한민성이 절대 불허하는 바이라. 고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즉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니, 우리 동지는 당연히 삼보를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또 대통을 상속할 의무가 있도다. (하략)


선언문에서는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된 1910년 8월 29일을 기준으로, 융희 황제(순종)이 군주로서 삼보(영토와 인민, 주권)를 포기한 셈이니 자동적으로 삼보는 한국 국민들에게 계승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독립운동이 보통 복벽주의(왕정복고)에 기반한 운동이었다면, 대동단결선언은 문서 상으로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최초로 군주국가가 아니라,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국가로의 독립을 주장하는 선언문이었습니다.


 이 대동단결선언문은 강령 부분이 따로 있는데, 이 강령에서 "해외 각지에 현존한 단체의 대소은현(大小隱顯)을 막론하고 규합 통일하여 유일무이의 최고기관을 조직할 것", "중앙총본부를 상당한 지점에 설치하여 일체한족(一切韓族)을 통치하며 각지 지부로 관할구역을 분명히 정할 것", "대헌(大憲)을 제정하여 민정(民情)에 부합한 법치를 실행할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독립운동 기구를 하나로 규합하여 통일된 기구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된 정부를 구성하며, 헌법을 제정하여 이에 따라 통치를 시행할 것을 주장한 셈이죠.


 대동단결선언이 발표된 2년 후인 1919년 2월, 만주와 도쿄에서 각각 발표된 무오 독립선언이나 2.8 독립선언 모두 "대한민주(大韓民主)의 자유를 선포"한다거나,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의 범을 취하야 신국가를 건설"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에서 독립운동의 방향은 완전히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국가의 건설이 그 대세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달 후 벌어진 3.1운동에서 낭독되어 널리 퍼진 기미 독립 선언서에서도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있기도 하구요.


 이전 글에서 현행 헌법 전문에 3.1 운동을 명시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듯이, 3.1 운동은 단순한 항일 운동의 틀 속에서만 해석되지 않습니다. 전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나면서, 한국의 독립이 민족의 열망임이 확인되고, 또 선언되었음으로 그 결과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시정부가 수립되는데요, 3.1 운동은 새로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어야 함을 정치적으로 선언하고 민중의 뜻을 모은 헌법제정권력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을 넘어서, 독립된 나라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공화국'이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3.1 운동이 아직 한창이던 1919년 4월 23일, 서울에서 만들어진 한성임시정부는 '공화국 만세'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마찬가지로 4월 13일 수립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역시 공화국을 그 국가 형태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한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 헌장'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며, 정치체제를 민주공화제로 함을 명시했습니다. 이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법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제'나 '공화제'라는 표현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를 결합한 '민주공화제'라는 단어는 유럽에서도 1920년이 되어야 처음 등장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임시 헌장에서 '민주공화제'라는 표현을 쓴 것은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일이었다는 것이죠. 이는 외국에서 수입된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공화정'이라는 정치 체제에 대한 이해가 당시 조선에서 상당히 빠르게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이후 서울,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임시정부가 모두 통합되면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헌법을 공포하는데요, 여기서 비록 '민주공화제'라는 표현은 빠지게 되지만 헌법 제1조와 2조에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함"과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재함(있음)"이라 명시하여, 국민주권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3.1운동을 계기로 조선인들은 더이상 스스로를 군주정의 '신민'이 아닌, 공화국의 '시민'으로 재정립하고 이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1운동으로 인해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앞으로 만들어질 국가가 '민주공화제' 국가가 될 것이라 공표했구요.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우리가 3.1절을 기억하고 기념할 때는 항일과 민족의 의미에 더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과 민주공화국으로의 방향성을 확립한 사건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를 통틀어, 1948년의 제헌헌법에서부터 1988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 전문에서 3.1 운동이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명기 되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의 역사는 헌법제정권력으로서 3.1 운동을 통해 태동되었고, 이후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임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제헌의회가 구성되어 첫 헌법을 제정했을 때 전문을 통해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밝힌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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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에 오타가.. ㅎㅎ

대동단결선언문의 관점이나 내용이 후에 크게 인용되지 않았던 것이 조금 의외입니다. 황제의 국권포기가 바로 인민으로의 주권이양이었다는 해석은 여기저기 쓰이기 좋은 내용인 것 같은데요..

아 많이 영향을 끼친 걸로 볼 순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그 선언문에 참여한 인사들이 이후 임시정부 헌장에 꽤 영행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