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곳에서 별안간 맞닥뜨려버린,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에 적잖이 당황스런 오후 한시 사십분.
당신이 사라졌다.
나는 평소처럼 예약된 시간에 당신과 늘 만나던 당신의 공간에 찾아갔다. 그저 지난 7개월의 매일과 다를게 없었다.
불과 하루전 약속했던 오늘 이 시간, 나는 여기 있는데 당신은 없다. 데스크 직원이 따로 나를 부르더니 당신이 피치 못할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엔 담담하게 이 곳도 일종의 직장이니까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시의 시간이 흐르니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의 그간의 관계가 있는데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 정도는 미리 말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어쩌면 당신은 나를 순수하게 환자와 주치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로 여겼을 수도 있다. 나만 우리의 관계를 과장되게 기록했을까.
그러다 문득, 내가 괜한 반항심에 일언반구도 없이 두 달간 당신을 찾지 않았을 때 당신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단순한 환자와 의사라는 명사적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당신을 처음 만난건 내가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때,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 당신이 커피를 한 잔 사러 온 날이다 . 주문한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불쑥 “저 위층 병원에서 왔어요”라고 말하길래 자주 왕래하면서 지내자고 인사를 주고 받았었다. 작은 체구에 내 또래 혹은 나보다도 조금 어려보였기에(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도 그랬다) 사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일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주 후 내가 몸이 심각하게 나빠져서 병원을 찾았던 12월의 어느날, 진료실 의사 명패 뒤에 앉아있는 당신을 마주하고는 겉으로 내색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놀라던 순간이 기억난다.
우리 둘 다 일하면서 또래 친구를 만나기 힘든 환경이었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진료 후 내 뒤에 진료 대기 환자가 없으면 진료실에서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내려오던 날도 늘어났다.
주된 대화 주제는 극명하게 상반된 서로의 인생과 생활 습관에 대한 비교와 비난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당신의 지루할만큼의 반듯한 생활패턴과 부모님 말씀 한번 어기지 않은 모범생같은 당신의 삶엔 대체 무슨 낙이 있냐는 공격을 퍼부었고, 당신은 내 사회적 범주를 초월한 생활패턴과 어디에도 얽메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삶에 혀를 내둘렀다. 각자의 직업적 관점으로 바라본 인간이 지켜야할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에 관한 논쟁으로 일주일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이나 유년기 시절 등의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의 범주도 깊어졌다. 하지만 당신과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난적은 없었다. 우리는 진료실 안에서만 특별한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병원을 나서기 전, 열린 문틈으로 보이던 아직 정리되지 못한 당신의 짐을 보며, 정말 당신이 다급하게 그만두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신감은 사라지고, 걱정과 걱정과 상실감, 슬픔이 밀려왔다. 무슨일이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조차 없다. 나는 당신의 연락처를 알지 못한다. 오늘까지 알려고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곳에 없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 감정을 나도 설명하기 힘들다. 연인과 헤어진 슬픔도, 가까운 사람을 잃은 공허도, 오랜 친구가 떠나간 그리움도 아닌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어딘가에 있다.
그 중에 가장 충격적인건, 내가 당신의 빈자리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단순히 의사와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내가 내일부터 마주해야 할 타인이 채운 당신의 진료실을 만나는게 가장 두렵다.
그건 아마도 내가 당신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고 한들, 우리는 아직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삶이라는 것이 형성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의사를 ‘의사’로만 대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매일 만나는 약사, 간호사, 식당 종업원, 청소부, 편의점 계산원을 사람이 아닌 그저 명사적인 의미의 도구로써 소비하고 있는건 아닐까.
당신의 부재가 이렇게도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명사적 도구로 형성된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으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일거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사회라는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저녁시간 퇴근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앉아있던 4층 창문가를 올려다 봤다. 평소와 다름이 없는 창문인데 평소와 같지 않다. 이제 당신이 있을리 없는데, 아직도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