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무시당하고 존재감이 없는 학생.
가족모임에서는 늘 걱정거리.
영화 위플래시의 주인공 네이먼 엔드류의 이야기 입니다. 음대 드럼전공 신입생 엔드류.
그가 손에 피가 나도록 드럼을 두드렸던 이유.
‘인정’ 받기 위해서.
그래서 엔드류가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병원보다 연주회를 먼저 갔던 것 역시 학교 최고의 실력자 또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레처 교수의 인정을 받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나 인정은 커녕 멈추지 않았던 플레처의 폭언. 끝내 엔드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비윤리적 행태를 고발했고 플레처교수는 학교에서 잘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재즈 바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플레처는 엔드류에게 재즈바 합주단원들과 연주회를 하는데 실력있는 드럼 연주자 한 명이 필요하니 함께 해달라고 말합니다. 엔드류는 승낙 했지만 사실 그건 자신을 해고당하게 만든 제자를 향한 복수 였습니다.
연주회 당일, 원래 하기로 한 연주가 아닌 갑자기 다른 곡을 지휘하는 플레처. 엔드류를 망신시키기 위해 만든 자리. 그러나 그곳에서 엔드류는 자신이 여태껏 연습해왔던 곡을 완벽하게 연주 했고 플레처 교수 역시 네이먼의 연주 솜씨를 보고 그 박자에 맞춰 지휘를 하게 됩니다.
재즈바에서 플레처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야 난 한계를 넘는 걸 보고 싶었어.
플레처의 폭언 폭행들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가 제자들을 포옹하기 보다 비난했던 이유는 바로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늘 구박 받았던 엔드류가 끝내 완벽하게 그 곡을 연주했을때 플레처는 마치 인정한다는 듯이 지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먼이 한계를 뛰어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드는 씁쓸함.
네이먼이 인정받기 위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달려왔던 그 고달픈 과정에서 잃어야 했던 것들.
그는 플레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손에 피를 흘려야 했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애인과 헤어져야 했으며 플레처가 말하는 최고가 되기 위해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피 한 방울 닦지 않고 연주회장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져버린, 아니 어찌보면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과 건강. 그래서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는 ‘청춘’을 잃은것이 아니던가? 혹사의 노력. 다행히도 그 결과는 그러니까 끝내 엔드류가 받은 것은 ‘인정’일 수 있겠으나 정녕 그는 인정 받기 위해 그의 청춘을 바쳐야 했는가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기시감.
우리네 사회의 청춘들의 삶.
우리 사회가 오늘날 청춘들에게 대하는 방식과 매우 일치하는 것 같은 이 데자뷰는 그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계를 뛰어 넘으라고 말하면서 너가 인정받지 못하는 건 단순히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 하고 지금 청춘으로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마저 포기하길 요구 하는 사회. 오죽했으면 ‘N포세대’라는 말이 나왔을까.
결혼은 커녕 연애할 여유도 없는 청년들, 한 끼 제대로 된 식사가 부담되어 편의점이나 컵밥으로 대체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지금보다 더 희생을 강요하고 노력을 입에 담으며 냉혹한 경쟁을 부추기는 플레처라는 이름의 사회.
왜곡된 성과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아픈 청춘의 사회. 네이먼이 그 어려운 곡을 완주했어도 설령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하더라도 마음이 씁쓸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whiplash
위플래시, 엔드류가 완주한 곡명입니다만 그 원래 뜻은 채찍질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지금 이 시간에도
손에 피가나도록 드럼 스틱을 놓지 않는 이 시대의 엔드류들에게,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힘겹게 한 발을 내미는 청춘들에게 아직 부족하다”는 말 대신 “수고했다고 너는 잘 하고 있다”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내는 사회가 오길 바라며
영화 위플레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사진은 네이버 영화 위플래쉬 포토 카테고리가 출처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