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가족과 반지하, 지하 가족은 ‘냄새’로 구별된다.
반지하 가족들의 말끔한 복장, 교양있는 말투, 지상가족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한 언변. 하는 일을 통해 누가 갑인지는 알 수 있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지상가족이 넘지 말라고 요구한 ‘선’이 무너진것 역시 겉으로 보기엔 하층민들과 상류층의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위조한 학력과 인터넷에서 주워온 지식 허위 경력을 보고 흠뻑 빠진 지상가족은 반지하가족의 냄새를 맡은 뒤에야 그들을 경계하게 된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서로 가깝게 붙었다는 말이다. 가깝게 붙었으니 무말랭이 악취가 지상가족의 코를 찔렀고 선은 그때 무너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사회구조를 통해 본인들의 삶이 변할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할수가 없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것에 빠지게 되고 허황된 것에 의지하게 된다. 반지하 가족이 재물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여겼던 돌덩이를 끝까지 마지막에야 놓았던 것 처럼.
지상의 떡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반지하가족과 지하가족의 처절한 생존 전쟁을 벌인다. 조금이라도 지상과 가까워지기 위해 ‘칼’과 ‘피’라는 최후의 발악을 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지상으로 올라 오지 못한다.
지하가족의 투쟁의 끝은 죽음이다. 현실에선 여기 밑에도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처절한 칼부림을 보고도 자신들과 다른 냄새가 나는 이유로 눈쌀을 찌푸렸던 이들은 비가와도 가라 앉지 않고 취객의 오줌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계속해서 영위한다.
‘계획’없이 살 수 밖에 없고 그저 허황된 꿈에 살 수 밖에 없던 반지하가족이 마침내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을때 그는 자신이 안고있던 돌을 내려놓았다. 물론 지상가족의 집을 구매 하겠다는 그 얼토당토 없는 계획은 결국 상상속에서나 이루어진다. 잘못된 믿음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뀌어도 개인이 가난을 벗어나는건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상가족의 기생충이 되기 원하는 하층민들. 지상가족은 하층민들 없이 쇼핑을 할 수 없고 요리도 할 수 없고 자식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으며 차도 운전 할 수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하 반지하가 없다면 그들이 넘지 말라고 요구하는 선 역시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들은 더 이상 지상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진짜 기생충은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