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2020년 2월 9일 국민당 창당 발기인대회 강연 내용입니다.
질의응답 내용은 혹여 시간이 나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괄호 안은 전부 제가 붙인 설명입니다.
사회자 김수민 의원)
요즘 제일 핫한 분을 모셔 볼까 합니다.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위해서 오로지 합리적 사실 기준을 두고 쓴소리 바른소리 해 주시는 분입니다. 저도 꼭 뵙고 싶었는데요, 진중권 교수님의 강연을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장)
진중권 전 교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반가운가봐 ㅎㅎ 나만 반가운가봐요 ㅎㅎ
여러분들 부럽네요. 좋아하는 정당이 있어서. 저는 이제 좋아하는 정당이 없어졌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데, 정당이 이사를 갔어 옆으로. 그래 가지고 더 이상 제가 (지지할 정당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흔히 뭐 제 별명이 모두까기라 그러더라고요. 근데 이게 좀 이상한 게 저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이게 정상이고 모두까기 안 하는 게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한국 사회가 워낙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보니까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거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순간에는 진영에 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나는 진영에 동원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진영들을 심판하는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이게 제 생각이고요, 건전한 시민의, 시민사회의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요즘 뭐 노이즈를 좀 일으키고 있는데요, 원래 원해서 했던건 아니고 저도 불려 나왔습니다. 3년 전에 제가 논객 은퇴 하고 스스로 붕대 감고 미라가 됐는데 저들이 불러 내더라고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사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 여기에 관심 있고요. 그것을 위해서 제가 지금 글질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누구를 저격하고 비판하고, 이게 핵심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요. ㅎㅎ
그래서 논객의 임무로써 저는 지금 뭐 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프로파간다 머신을 마비시키는 거. 예컨데 있죠 뭐 선동하는 사람들. 거기에 이제 주력을 하고 있지만, 제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파괴적인 측면보다도 생산적인 측면들 또는 건설적인 측면에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 한국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그 문제점들을. 그다음에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제가 던지는 그 메시지에 좀 주목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언론들은 대개 인제 깐다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프레임 짓는 걸 좋아하죠. 그래야 또 조회수도 오르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금 논객의 임무는 잠수함의 토끼입니다. 남들은 느끼지 못할 때 산소 부족을 느껴요.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 저 사람들은 제가 몸부림치는 걸 보고 '저놈 또 지랄하네' 이러겠죠.
근데 그게 아니라 이 사회에 어떤 부정적 상태를 제가 지적을 하고 있는 거고요. 그것을 다시 바로 잡아야 된다라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뭐 대책은 별거없습니다. 무너진 정의, 다시 세워야 된다.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이제 나왔습니다.
기억 나실겁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근데 여러분. 저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 정말 이 말을 믿었어요. ㅎㅎ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기회의 평등은 '아빠 찬스'가 되었습니다. 과정의 공정은 문서위조가 됐습니다. 결과의 정의는 부정입학이 됐습니다.
사실 조국사태는 저한테 트라우마였어요. 내가 믿었던 사람들, 그리고 내가 믿었던 가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 만난 무서워요. 어떻게 변했을까. 며칠 전에도 동창들 만났습니다.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하나가 문빠 좀비더라고요. 덤벼요. 옛날에 운동해 가지고 구속까지 됐던, 데모해서 구속까지 됐던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변해 가는 걸 보고 정말 이 사회가 무서워졌습니다.
저를 슬프게 했던 말이 있었는데 조국 전 장관이 청문회 나와 가지고 '나는 사회주의자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생각이 계속 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제가..
(울컥했는지 말문 막힘)
(박수)
요즘은 나이가 드니까요, 화가 나면 눈물이 나요. 인터내셔널가 듣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그러더라고요. 하나의 세계가 나한테 인제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원래 사회주의는 기회의 평등만이 아닙니다. 결과의 평등까지도 얘기하는 아주 강력한 평등주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 놓고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할 수가 있는가, 이것은 내가 갖고 있었던 이념에 대한 모독이다. 저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뭡니까. (법무부가) 영어로 Ministry of Justice죠. Justice가 무슨 뜻입니까. 정의란 뜻입니다. 바로 정의부가 법무부입니다.
그런데 그 법무부 장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요 이 정부가. 이것은 뭡니까. 자기모순이 아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거죠.
물론 정치인들 다 썩은 거 저도 압니다. 많이 썩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써 봐야 된다고 저도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정치인들 어느정도 거짓말 하는거 용인합니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자기 얘기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유권자들을 대변해야 되기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 정치인들이 말을 바꾸는 거 어느 정도 허용합니다
문제는 뭐냐면 이런거죠. 과거엔 진보든 보수든 잘못을 했으면 일단 머리 숙여 사과부터 했습니다. 기억나시죠. 이 사람들 적어도 진보든 보수든 이정의의 기준, 윤리의 기준, 도덕의 기준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못 미치는 자신을 탓했죠. 아니, 탓하진 않아도 적어도 탓하는 척은 했죠.
이 정권 들어와서 어떤 일이 생겼느냐, 잘못을 합니다. 잘못만 하는 게 아니예요. 기준 자체를 바꿔 버려요. 정의의 기준 자체를, 도덕의 기준 자체를, 법의 기준 자체를 바꿔서 자기들이 잘못 안한 상태로 만들어 버려요. 이게 지금 저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사회의 로고스와 에토스가 무너집니다. logos는 이성이죠, ethos는 윤리입니다. 정치라는게 서민들을 갖다가 더 이성적인 존재로, 더 윤리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되는데, 오히려 그 정치가 사람이 이성이 없는 좀비로 만들어 버리고요, 윤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깡패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쵸. 사실을 부정하다 보니까 논리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논리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른바 제가 post-truth 현상, 진리 이후의 현상이라는 거죠. 이른바 거짓말들을 저네들은 뭐라고 그러냐, 대안적 사실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거짓말이 사실이 됩니다. 결국은 진위의 기준 자체를 무너뜨린 겁니다. 뭐가 사실이고, 사실 자체를 인정을 안 하잖아요 그쵸.
두 번째는 명백한 범죄인데 그게 범죄가 아니래요. 윤리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이거는 이거는 post-ethic 현상이예요. 윤리 이후의 현상입니다. 이게 이 정권 들어와서 우리가 목격하는 현상입니다.
이제는 윤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선악의 기준 자체가 헷갈려요 이제는. 아니 문서 위조한게 잘한 겁니까. 이제 그걸 논증을 해야 돼. 그게 왜 잘못인지를 논증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2 더하기 2는 4다 라는 걸 논증하기 시작하면 소통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논리와 윤리의 세계가 우리가 공리라고 얘기할 수 있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공유하고, 공유하는 그 기준, 그 기준 자체를 그들이 무너뜨려버렸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예요. 자기들만 거기서 타락하고 끝나면 저는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을 프로파간다 머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도덕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만난 친구도 그럽디다. '아 그거 나도 했다. 우리 아들 들어갈 때 서류 조작 나도 했다.' 이게 잘한 겁니까. 용인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문서조작을 하게 된다면, 입시는 뭐하러 봅니까. 그냥 아빠 직업 보고 뽑으면 되잖아요.
(박수)
불법과 편법과 부도덕이 새로운 정의가 돼버렸어요 이 사회에서는.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선악의 피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진위의 피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이예요. 그리고 우리들은 범인들이죠.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옛날에 운동권에 두 주류가 뭐였습니까. 이른바 PD와 NL이었잖아요. 저는 이제 PD 쪽에 속했습니다. 아마 조국씨도 그랬을 거예요. 이분이 자기를 뭐라고 불렀죠 아까. 사회주의자라고 그랬잖아요. 아직 그 짓을 하면서 자기가 사회주의자라고 생각을 해요. 이 허위 의식. 실제로 저는 그럴 거라고 믿어요.
두 번째는 뭐냐면, 얼마 전에 그 종로에 전세집까지 얻었다가 도망간 분 (임종석)있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근데 그분이 뭐라고 얘기 했습니까. 그 일 그만두고 자기는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대. 아직도 자기가 통일 운동가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분들은 아직도 자기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들 아직도 개혁가고요, 아직도 혁명가고요, 아직도 운동가고요, 그래서 아직도 순결한 거예요. 그런 순결한 내가 잘못 할 수가 없는 거죠. 잘못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도덕의 기준이 잘못된거예요. 도덕의 기준을 바꿔야 되는 겁니다.
내 자신을 지키는 게 바로 개혁을 시키는 거고, 혁명을 지키는 거고요, 운동을 지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돈키호테 현상이죠.
돈키호테는 자기가 쓴 소설과 현실을 구별 못 하잖아요. 현실의 돈키호테는 아주 비루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자신은 뭐예요. 정의의 기사죠, 그들이 그렇습니다.
거기서 끝나면 돼요. 괜찮습니다. 돈키호테 하나 정도 있는 거 나쁘지 않아요. 우리 구경 하면 되잖아요.
문제는 이 사람이 돈키호테가 모든 사람들을 다 산초 판자로 만든다라는 겁니다. 이 주관적 착란이 프로파간다 머신을 통해 가지고 그 다음에 어용지식인과 어용언론과 수많은 어용들이 있죠. 어용들 협력을 통해 가지고 대중의 의식에 주입돼서 대중들의 세계 자체를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몽땅 다 서초동에 가가지고 사랑해요 정경심.
부도덕이 도덕이 되고요, 불의가 정의가 되고, 불법이 합법이 되는 이런 가치전도현상. 이건 인문학자인 저로서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건 인문학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거고,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입시부정은 당연히 정의를 무너뜨린 행위죠. 사모펀드니 이런건 뭡니까, 불법이잖아요. 차명투자는 편법이잖아요. 한마디로 법을 무시하는 거고, 법을 무너뜨린 행위 아닙니까. 그걸 갖다가 법무부 장관, 그 가족이 한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법무부장관이 될 수가 있어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옛날에 이런 일 있었습니까. 어떤 정권에서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한번이라도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요.
옛날에 1990몇년이죠 7년인가 장상 총리가 뭐때문에 낙마했어요. 딱 하납니다. 부정편입, 편입이 아니라 뭐죠. 위장전입. 그때 우리 사회의 기준이 그거였거든요.
지금은 가족 혐의가 20개고요, 본인 혐의가 11개가 되고, 그런데도 법무부 장관 해야 된대요. 그거는 우리 사회가 윤리적으로 에토스의 관점에서 진화한겁니까 진보한겁니까.
우리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어떻게 생각하냐면 사회가 항상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아진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 믿음이 깨져버린 거예요.
자, 강남에 건물 사는 것. 강남에 혁명적으로 건물을 사요. 그 다음에 딸은 의전원, 아들은 법전원. 이게 뭡니까, 아주 전형적인 뭐예요. 강남의 욕망이잖아요. 사회주의자라면서 실제로 이 사람들이 가진 욕망은 자본주의적 욕망이고, 자본주의적 욕망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형태의 속물자본주의와 천민자본주의.
(박수)
저는 이런 사태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제가 진짜 분노했던 건, 서초동에서 그런 얘기를 해요. 정경심 교수의 친구라는 분이 나와 가지고 하는 얘기입니다. 뭐라고 하면은 '여러분, 조국 장관님 그렇게 능력이 없으십니까. 우리 정경심 교수 같은 훌륭한 영문학자를 하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왜 시골대학에 꽂았냐'라는 거죠. 서울에 있는 대학에다가 팍팍 꽂아주시죠. 거기 모인 사람들이 환호합디다. 이게 뭡니까 도대체.
도대체 그 다음에 정경심 교수의 변호인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디 있는지도 모를 대학에 표창장이 왜 쓸모가 있느냐. 아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그 대학에 교수자리를 왜 안내놓습니까 그러면.
그들에게 지방 대학은 수치스러운 거야, 그러나 교수는 괜찮은가 봐요.
민주당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대학 이런 식으로 지방 멸시하고 말이죠, 차별하고, 이게 개혁 정권입니까.
이들에게서 아, 저들이야 말로 정말 철저한 학벌주의자구나 이걸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아주 좋은 경험을 했는데, 제가 지방대학에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솔직히 저는 국회의원들 300명 있어도 그냥 그렇거든요. 내가 이름도 기억 못해요. 아무것도 아니죠. 그래서 저걸 왜하나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 제가 을이 되다 보니까 현장에서는 그 권력이 엄청납니다. 아, 그래서 저렇게들 다 저걸 하려고 하는구나.
제가 정말 보면서 저들의 갑질이라는거 있잖아요. 갑질이란 걸 옆에서 지켜 봤습니다. 그걸 갖다 제가 당했어요. 그전엔 저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저는 그냥 마음에 안 들면 헤어져요. 마음에 안 들면 ??? 입니다. 우리 보지 맙시다, 안봅니다.
그런데 제가 요번에 대학에 속해있고 직장인이고 이러다 보니까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뭡니까 동료들의 밥줄이잖아요. 등등등등. 내가 마음대로 말을 못 하잖아요. 그런 가운데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와, 이 권력이라는 것의 힘을 갖다가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 상태에서 제가 가장 가슴이 아픈 건 뭐냐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편을 드는 거예요. 야마모토 타로(山本太郎) 라는 사람, 일본의 정치인 있죠. 그분도 막 연설하다 울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청중 중에 하나가 '위선자!'라고 외치니까, 이사람이 뭐라고 그랬냐면, 저분이 피해자인데도 가해자 편을 들고 있다 난 그게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 그 말에 너무 공감을 해요.
이게 사실 어디서 나는 현상입니까. 사이비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잖아요. 거짓말을 누군가 하잖아요. 왜 하겠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뭔가 이익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거예요. 부당한 이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누군가 손해를 봐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득을 보는 건 누구고,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겠어요.
그 사람도 내가 볼 때 그들에게 환호하는 그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축에 속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해자를 옹호해요. 조민이라는 학생 때문에 누군가 하나는 떨어졌을 거 아니예요. 자기 자식이 어느 쪽에 속할까요. 남들 제치고 특권층일까요, 그 특권층 때문에 떨어져야 하는 그쪽일까요. 나는 99.9% 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사회를 갖다가 자식한테 물려줄 생각을 하냔 말이예요.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박수)
여당과 야당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기냐 지느냐 문제도 아닙니다. 제발 당리당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단 사회를 배려해야된다. 제발 정치인들. 여야, 진보보수 떠나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회를 책임지는 사람들이에요. 우리한테는 어떤 의미가 있냐면, 이 사회를 더 낫게 만들어서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의무가 있는 겁니다.
(박수)
우리들의 아이들이예요. '내 아이'가 아니라. 그쵸 정치란 거는 공적인 갑니다 그렇죠.
내 아이를 위해서 정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설사 내 아이가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아이를 위해서 정의를 세워야 된다, 이게 보수든 진보든 누구나 지킬 기본적인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안 지킬라면 정치 하면 안 돼요.
(박수)
사회를 배려해야 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회를 하는 것이 유지되면 뭐가 있어야 됩니까. 게임의 규칙 이라는 게 있어야 돼요.
안토니오 이노키 하고요, 무하마드 알리가 말도 안되죠. 같이 경기를 한다 할지라도 링에서는 같은 규칙을 공유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규칙들을 깨요. 그러니까 결국 뭐가 되냐면 내로남불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너희들이 하면 불륜이고. 한 사람이 같은 말을 갔다가 했던 말을 다음에, 다음날에는 또 다른 말을 해요. 그때 그때 그때 기준이 바뀌어버립니다. 이러면 사회 자체가 유지될 수가 없던 없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배려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의 목적은 두개라고 생각을 해요. 사회에 대한 책임감, 그다음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 누가 대신 배려해 주는 거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자기가 배려해야 되는 겁니다
저는 정치를 왜 했느냐.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보면 정치철학적으로 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나는 그 사람 말에 동의를 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이라고 했죠.
거기서 정치적이란 말은 폴리스예요. 폴리스 안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폴리스 밖에는 신들과 동물들이 있어요. 폴리스 안, 다시 말하면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만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분명히 개인주의 사상은 아니죠.
그니까 인간은 정치를 참여하는 그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소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종적인 특성들, 바로 논리라든지 윤리라든지 이런걸 갖출 수 있다, 이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입니다. 저는 거기에 깊이 공감합니다.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하려하고, 정치인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정치에 대해서 많은 발언을 하고 했던 것은 바로 정치가 갖고 있는, 시민사회에 대해서 정치가 갖고 있는 이런 중요한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야 돼요. 로고스입니다. 정치를 통해 가지고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그른가, 어떤게 참인가 거짓인가, 수많은 토론과 논쟁과 대화를 통해 가지고 사람들을 훨씬 더 똑똑한 존재를 만들어 버려야 돼요. 아, 저사람 정치에 참여하더니 완전히 달라졌구나. 정말 스마트해졌네. 이렇게 만드는 것이 정체 목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토스, 윤리적이어야 돼요. 저도 윤리적인 사람 아닙니다. 저도 나쁜 안보는 데서 해요. 담배꽁초도 가끔 버리고 말이죠. 안볼때 신호등 슬슬 위반하고 건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건 나쁘다는 건 알아요.
어쨌든 그렇게 살던 존재가 하다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이거 담배 꽁초 버리면 안 되는구나,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그곳에서도 신호등은 지켜야 되는구나. 그렇게 변해 가는 거 있잖아요. 점점 더 윤리적인 존재를 가는 것.
대화를 통하면 그렇죠. 상대로 비판하게 되고, 상대로 비판할 땐 공약의 부담이란걸 져요. burden of commitment. 내가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나는 지켜야 되는 거예요. 그러는 과정 속에서 남한테 했더니 자기한테 돌아와서 자기를 갖다 좀더, 누구보다도 엄격한 기준을 자신한테 들이대면서 사람을 좀더 윤리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 저는 이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로고스와 에토스를 그들이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그것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슬픕니다. 사람들을 점점 더 열등한 존재를 만들어 버려요. 로고스를 마비시켜 버려요.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윤리의식을 마비시켜 버려요 그들이 저질렀던 모든 부정과 부패와 비리들이 몽땅 다 정상이라고 얘기를 해요.
너희들은 안 그러냐, 우리들도 그런데요. 함께 망가집니다. 한번 보세요. 대중들만 그런 게 아니라 멀쩡하던 지식인들도 다 이상해졌어요. 저는 그게 너무나 가슴아픕니다.
정치인들이 있고요. 정치인들은 항상 대중을 동원하려고 합니다. 대중동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 뭡니까. 혐오, 미움, 증오 그렇죠 상대에 대한. 그래서 선동을 하는 방법입니다. 그걸 막아 주는 게 중간에 담론층입니다. 지식인들이 있어요. 걸러주고 비판해주고. 여기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그들도 바로 통치기구, 지배기구의 한 파트가 돼버렸어요. 그리고 그들과 이익을 공유해요
안도현 씨 뭐라고 그랬습니까.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고 하더니. 연탄재 볼 일도 없을 어떤 강남 사모님을 위해서 강남의 꿈을 무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강남에 아파트 사는 꿈이 왜 죄냐고 묻습니다. 누가 그거 죄라 그랬습니까. 강남 아파트 사는 꿈, 꾸세요. 다만 그 꿈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실현하세요.
(박수)
공지영씨, 모든 판단을 문프께 맡겼댑니다. 뇌를 아웃소싱하셨어요. 이게 정치 입니까. 자기 지지자들 뇌를 아웃소싱해서.
유시민씨, 이분은 그냥 아예 연예계, 개그계로 진출을 하셨더라고요. 증거인멸이 증거보전이다.
또 멀쩡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존경했던 어떤 교수님은 조국 가문을 갖다가 외디푸스에 비교하세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십니다. 하마르티아(hamartia)예요. 하마르티아가 뭐냐면은, 사소한 과실이예요. 사소한 과실이지만 중대한 결과를 낳는 그런 사소한 과실. 그러면서 조국 일가가 외디푸스 가문입니다. 정말 부당하게, 아주 사소한 과실 때문에 부당한 운명 갖는, 그래서 눈물을 흘려버리는.
이런 식으로 인문학이 동원되고 있어요. 그리스의 비극, 그리스의 고전이 이런 맥락에서 악용되고 있습니다.
사회를 배려하고 자신을 배려해야 됩니다. 여러분 어떤 정치,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추구하는 그 정책, 이념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저보다는 제가 볼 때 여러분들이 좀더 보수적이신 것 같애요. ㅎㅎ
하지만은 정파가 다르고 정당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다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가 합의해야 될 것도 있죠. 그 게임이 가능하기 위해선 합의해야 될, 그것은 바로 공정입니다, 정의입니다. 그건 우리가 다시 되살려야 합니다.
(박수)
제가 화나는건 이런 거예요. 저는 믿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데카르트주의자예요. 모든 사람은 타고 날 때부터 이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저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시민은 태어날 때부터 로고스와 에토스의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갖고 태어난 그 천부의 그 능력들을 실현시켜주고 발전시켜 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근데 저들은 다른 거 같애요. 저 사람들은 시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신들의 프로파간다에 의해서 멍청하게 선동당하는 존재로 봅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정치기획에 의해서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봅니다 대중을. 그리고 그 얄팍한 이벤트에 의해서 감동 당하는 그런 존재로 보는 겁니다.
그들은 대중을 믿지 않아요. 그들은 대중의 이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윤리의식을 믿지 않아요. 자기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선동당하고 동원당하고 조작당할 수 있는 그런 존재고, 그들을 그렇게 선동하고 조작하고 동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라고 이렇게 믿습니다.
저는 대중들이 대해서 갖고 있는 이들의 이 의식이 너무 무섭고 너무 끔찍하고 너무 혐오스러워요.
(박수)
더 무서운 것은 그런 상태 속에서 대중들은 자신을 깨어 있다고 믿어요. 이 사람들 잠자면서 '나는 깨어 있어, 나는 깨어있어' 잠꼬대를 해요. 잠꼬대만 하면 괜찮습니다. 가끔가다 잠자는 상태에서 일어나요. 그래서 옆에 사람들한테 덤벼듭니다. 그렇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면서 저보고 엘리트주의자래요. 그들이야말로 엘리트주의자거든요. 대중들에게 그래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영원히 그럴 수 있다라고 믿는 그들이야말로 엘리트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시민한테 로고스, 에토스의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그 로고스와 에토스의 능력을 발휘해서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정당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정당이 자기 기준에서 벗어났을 땐 비판할 수 있는 이런 시민들로 거듭날 수 있는, 그런 능력들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박수)
그래서 에토스와 로고스로 다시 돌아가죠. 에토스와 로고스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 세우는 방법은 뭡니까. 어느 과정에서 세워지죠. 그것은 바로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서 세워지는 겁니다.
사람마다 정의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은 다를거예요. 이게 정의다, 저게 정의다. 바로 그 토론을 통해서, 그 대화를 통해서, 때로는 논쟁을 통해서 따지는 가운데 사람들의 로고스가 발달하는 것이고, 윤리의식이 함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사회에 정의를 세운다는 것은 사회 자체를 배려 하는 것이죠. 동시에 개인을 배려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 사람이 잠시,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순 있어요. 하지만 그리고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 정치 하시죠. 머리 굴리지 마세요. 제가 제일 혐오하는게 돌머리가 잔머리 굴리는 거예요.
(박수)
그들은 아주 교만하거든요. 세상은 그들의 좁은 머리보다 무한히 넓어요. 알겠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잔머리 굴리지 말고, 판단이 어려울 땐 간단합니다. 원칙을 지키세요. 원칙은 왜 존재하느냐. 바로 그럴 때 필요한게 원칙입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가지고 우리가 세운 것이 바로 그 원칙이고, 그것을 누군가 어기려고 할 땐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원칙, 그리고 하나. 최선의 정책은 뭐냐. Best policy is? 뭐예요. Honesty입니다. 여러분 정직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