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John Law)를 통해 보는 암호화폐의 가능성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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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it History


보통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생각할 때, 기술혁명을 바탕으로 탄생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술을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죠.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암호화폐를 있게 만든 블록체인의 나머지 반쪽은 기술혁명이 아닌 인문혁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이 ‘비잔틴 장군들의 딜레마’를 해결한 모습이라든지, 탈중앙화라는 철학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앞으로 암호화폐 시장에서 인문학적인 고민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각 코인들이 겪고 있는 확장성, 작업증명방식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기술적 가치에 더불어 인문학적 가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럴 땐 암호화폐의 등장 이전에 공동체의 경제적 측면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고자 했던 역사적 사례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인문학적 영감을 얻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Keepit History에서는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을 통해 암호화폐의 인문학적 루트를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존 로(John Law)의 실험, 명목화폐(Fiat)를 만들어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오늘날 재화를 구입하는 수단은 법정화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법정화폐는 이전의 물물교환이나 금, 은을 통한 귀금속 거래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실질적인 소재가치는 없지만 ‘국가의 신용’이라는 명목가치 아래에서 다른 물건을 거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학자들은 그런 화폐경제의 흐름을 구분하기 위해 실질적 가치와 명목가치가 결합된 이전의 거래수단을 실물화폐라 부르고, 이후 두 가치가 분리되어 있는 종이화폐를 명목화폐라고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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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의 모습
image from: https://ca.wikipedia.org/wiki/John_Law

그렇다면 오늘날의 이 명목화폐 개념은 실질적으로 누가 처음 고안해 낸 것일까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존 로는 오늘날로 치면 아웃사이더 기질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한 여자를 두고 벌인 결투에서 상대를 죽이는 바람에 살인죄가 붙여져 방랑생활을 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착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없는 여러 신선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특히 네덜란드와 프랑스 일대에서 은행업 종사를 전전하며 동인도회사의 성공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는 등의 경험은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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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 회사의 모습
image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ast_India_Company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란, 중앙은행과 무역회사를 결합하여 새로운 국부를 창출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무역회사를 밀어주는 과정이 통상적 금, 은을 통한 거래가 아닌 화폐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귀금속 거래를 넘어, ‘국가의 신용’을 이용해 무제한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존 로의 아이디어는 평소 같았으면 위험성을 이유로 국가에게 허락받기 힘든 목표였겠지만, 때마침 재정적으로 큰 위기에 처해있는 프랑스가 있었기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루이 14세의 시대가 끝나고, 어린 나이에 즉위한 루이 15세를 대신해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가 섭정을 시작하던 무렵이었습니다. 문제는 절대왕정 아래에서 진행된 사치자금과 전쟁비용으로 인해 루이 14세 말기 무렵부터 프랑스는 고질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필리프 2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결국 존 로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금, 은을 통한 자금확보가 아닌 국가가 발행하는 ‘종이화폐’로 자금을 조달받기로 말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법정통화를 쓰지 말고 암호화폐를 사용하자는 요청을 국가가 받아들이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더 충격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명목화폐의 개념 자체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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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큰 회사의 규모를 나타낸 그래프(미시시피 회사는 두 번째에 위치)
image from: https://goo.gl/GjrXTs

그렇게 진행된 그의 실험은 초창기에 대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습니다. 국가가 보장하는 은행에서 찍어낸 ‘화폐’와 프랑스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설립된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발행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지나친 관심으로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고, 존 로 본인도 통화량 조절이나 국가의 개입 정도 조절 등에 실패하여 미시시피 회사는 결국 붕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안해낸 명목화폐의 개념은 이후 널리 사용되어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현대에는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로 금태환이 무너지면서 명목화폐 개념이 이 세상에 완전히 뿌리박게 됩니다. 기업가의 혁신을 강조한 유명한 경제학자 슘페터조차 미시시피 거품사건과는 별개로 명목화폐에 대한 그의 업적을 두고 ‘통화이론의 선구자’라고 평가했을 정도였죠.

이렇듯 존 로의 사례에서 우리가 인문학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화폐의 본질에 대한 속성입니다. 흔히 화폐의 네 가지 속성에는 휴대성, 내구성, 분할성, 동질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화폐란 휴대하기 편리하고 시간이 지나도 훼손되지 않아야하며, 잔돈을 쪼갤 수 있어야함과 동시에 나의 돈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가치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문명초기의 물물교환 시대에는 취약한 신용 아래에서 이 네 가지 속성이 모두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물교환을 극복하고 실물화폐의 새로운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금속화폐였습니다. 금속화폐는 다른 물건보다 가지고 다니기 쉬우면서 튼튼하며 녹여서 쪼개는 것이 가능했고 금, 은의 희소성 덕분에 동질성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금속화폐도 명목화폐의 등장으로 화폐의 개념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명목화폐가 거래수단의 주류로 발돋움하게 된 이유는 ‘동질성’에서의 승리 때문이었습니다. 애초에 존 로의 제안에 프랑스 관료들이 의문을 품은 점은 동질성 문제였습니다. 휴대성, 내구성, 분할성은 누가 보아도 명목화폐가 금속화폐보다 비슷하거나 더 뛰어나지만, 이것이 과연 금속에 비해 동질성을 보장하느냐에 의문부호를 달았던 것이죠.

그런데 마침 시대는 신대륙에서 대량 유입된 금, 은으로 금속화폐의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프랑스의 국가적 위기라는 난제를 함께 안고 있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실험이 강행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국가의 신용을 통한 종이화폐의 ‘실질가치 제거’는 장기적으로 동질성 문제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시간이 증명하며 현대의 거래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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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https://goo.gl/3frLex

그러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명목화폐인 법정통화는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제 법정통화에서 보이는 단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제체제가 발전함에 따라 시스템이 견고해졌다고는 하지만, 발행의 주체가 사람인 이상 여전히 유동적인 통화량의 조절이 힘들고 정치적 변수에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법정화폐의 이러한 단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동질성 문제에 적신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점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암호화폐는 현재 법정통화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량은 만들어질 때부터 정해진 수량을 정확히 지킬 수 있으며,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P2P로 공개되는 블록체인의 특성상 정치적인 변수에도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화폐의 형태도 사실상 데이터를 모아놓은 뭉치를 코인으로 조각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실물에 비해 공간의 제약이 없는 획기적인 전송속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암호화폐도 이제 단 하나의 의문점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실물이 아닌 데이터를 이용한 거래가 동질성 문제를 확보할 수 있냐는 것이죠. 실제로 이 부분은 많은 대중들이 암호화폐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점이며, 아직 암호화폐 스스로도 여러 실험을 진행 중에 있는 미완의 단계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금속화폐가 동질성 개념을 상실한 상태에서 나머지 속성이 모두 우수한 명목화폐가 탄생했듯, 암호화폐도 앞으로 거래수단의 마지막 한 걸음만을 남겨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 단계의 과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존 로의 실험처럼 시장의 과열로 큰 진통을 한 차례 겪고 난 후에 세상에 나올 수도 있으며, 어쩌면 완전한 탈중앙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암호화폐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써 확실한 비전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속화폐에서 종이화폐로의 전환이 실질가치를 분리하고도 더 효율적인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암호화폐 역시 실물을 분리해야 오히려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이미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이 가치를 전제로 국가와 결합한 부분적 탈중앙화나 개인 간의 완전한 탈중앙화 암호화폐 발행 등 여러 실험이 태동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존 로의 실험만큼이나, 앞으로 암호화폐에서의 실험 중 어떤 것이 시장에서 선택받게 될지 기대가 되는 바입니다.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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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투자 수단으로서 암호화폐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다같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잘봤어요^^ 근데 어려움어려음 보다보면 이해되겟죠 ㅋㅋㅋ

도대체 이런 수준의 글을 어떻게 쓰시나요?? 부럽 부럽 인생의 숙제중하나가 글쓰기 입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암호화폐가 원래는 휴대성 / 내구성 / 분할성 면에서는 명목화폐보다 우수해야겠지만, 명목화폐도 현대사회에서는 신용카드, (XX페이와 같은) 결제모듈 덕분에 우수해 졌습니다. '동질성'면에서의 다툼(?)이 가장 이슈인 것은 이것이 화폐 존재의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결제모듈 발달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맞습니다. 법정통화의 경우에도 디지털화가 많이 이루어져서 휴대성, 내구성, 분할성이 크게 개선됐죠. 하지만 결국엔 종이화폐라는 실물이 있어야만 기능한다는 점에서 암호화폐와 큰 차이가 오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동질성 이슈가 더 부각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잔틴 장군들의 딜레마’는 양갈래 님께서 쓰신 글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위촉오 삼국지 이야기가 나오는 ㅎㅎ

너무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