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에서 한번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표에서 제가 "블록체인(탈중앙화 네트워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알아서 돌아가는 자율적인 네트워크다"라고 말씀드리니까,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럼 블록체인 회사들은 돈을 어떻게 벌어? 투자금을 어떻게 회수하지?
현금 흐름이 개발한 사람들에게 오는 게 아니고, 사용자들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거라면, 개발한 회사는 돈을 어떻게 버냐는 것이었습니다. 기껏 만들었는데 회사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자산이 아니라면, 그 회사는 어떻게 지속가능하냐는 질문이었죠.
이 부분이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해할 때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가져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아마 인터넷 비즈니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이런 문제를 똑같이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서 거기에 대한 판매액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사업 확장과 매출, 이익은 대부분 선형적으로 비례해서 올라갔죠.
그런데 인터넷 비즈니스는 그전의 기업들과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플랫폼에 사용자를 최대한 모읍니다. 그리고 나서 광고라든지, 프리미엄 기능, 판매자 수수료라든지 이런 것들을 붙여서 수익화를 하죠.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면서 서비스 단위를 제공하는 한계 비용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받지 않고 네트워크의 크기를 키운 다음(Scaling) 이 네트워크가 독점력(Network effect)을 가질 때 쯤이면, 다양한 수익 모델을 적용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죠. 이 방식은 사업 확장과 수익이 선형적으로 비례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 회사들을 봤을 때 투자자들은 좋긴 좋은데, 돈은 못 벌거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전까지는 디지털 광고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구글은 검색 엔진으로 시작해서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이 되었고, 대부분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돈은 광고로 벌죠.
이런 플랫폼 기업들의 등장은 기존의 기업 가치 평가에 상당한 숙제를 던져줬을 겁니다. 인터넷 비즈니스, 플랫폼의 성격을 지닌 기업들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물리적 자산이 아닌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등 어려운 문제가 많아지죠.
블록체인이 가져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그런데 그 문제가 미처 풀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나타났습니다. 블록체인은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더 나아가서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들고 나왔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네트워크는 특정 기업이 소유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코드도 모두 오픈되어있습니다. 개발해놓은 걸 누군가 그대로 베껴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유료화를 하거나 광고를 붙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내기 싫은 사람들이 무료에 광고가 없는 걸 똑같이 베껴서 만들테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버냐? 제가 발표를 들으신 VC의 심사역님은 바로 이 질문을 했던 것이죠.
토큰을 팔아서 돈을 법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블록체인 비즈니스는 '토큰'을 통해 가치를 창출합니다. 미리 일정량의 토큰을 보유한 개발팀은 토큰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돈을 벌게 됩니다.
모든 블록체인 플랫폼들이 하는 말은 이겁니다.
"토큰의 발행량은 한정되어있다. 따라서 네트워크의 수요가 올라가면, 토큰의 가격이 오르게 된다"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네트워크의 수요와 토큰의 수요를 어떻게 일치시킬 것이며, 토큰의 가격변동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사람들이 토큰을 보유해야할 유인은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등등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이유는 토큰이 가치 창출의 수단인 동시에, 네트워크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기반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강제할 중앙 기관이 없기 때문에, 블록체인은 참여자들이 서로 협력해서 사회적 최적 결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의 역할도 해야합니다. 따라서 참여자들의 전략적 행동과 보상 구조까지 모두 고려해야합니다.
비트코인은 장부를 검증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행동해야만 이득을 보도록 메커니즘을 설계해서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장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절반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장부를 검증하고 기록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태스크에 속합니다. 조금 더 복잡한 비즈니스를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하려면, 훨씬 더 많은 고려사항과 규칙, 보상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블록체인, 탈중앙화 네트워크에는 경제학이 필요하다 - 암호경제학 (Cryptoeconomics)의 시대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핵심, 토큰 이코노미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돌아가도록 하는 모델, 이것을 바로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라고 합니다.
(사실 토큰 모델, 암호경제학 등 다양한 이름이 있고, 아직 널리 합의된 정의도 없습니다만 일단은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토큰 이코노미의 가장 큰 숙제는 이런 겁니다.
- 네트워크가 자율적으로 운영되면서, 참여자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 (Value Creation)
- 동시에 토큰의 가치를 네트워크의 가치와 연동 (Value Capture)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발짝 더 들어가면, '누가' 창출한 가치를 가져가느냐도 중요합니다. 기여한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보상을 해주는가? 분배 메커니즘은 어떻게 되는가?에 관한 문제죠. 이것도 무지 어려운 문제인데, 일단 잠깐 미뤄두도록 하겠습니다. )
토큰 이코노미의 중요성
토큰 이코노미 설계는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핵심입니다. 같은 플랫폼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록체인이라도, 어떻게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특성과 방향을 갖게 됩니다.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해보고자 하는 분들, ICO를 하려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이 토큰 이코노미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사업이 실현가능(Feasible)한 것과 지속 가능(Sustainable)한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블록체인 기술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Feasibility에 많은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블록체인 위에서 Sustainable한 토큰 이코노미를 만드는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또한 암호화폐 투자에 관심있으신 분들, 암호화폐의 가치 평가에 관심있으신 분들도 토큰 이코노미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토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따라서 Valuation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토큰은 기존의 어떤 자산과도 다른 새로운 자산군(Asset Class)입니다. 화폐같기도 하고, 주식같기도 하고, 상품권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토큰마다 굉장히 다른 옵션을 가지고 있죠. 파생상품보다 더 복잡한 새로운 금융 자산이 등장했고, 토큰 이코노미의 전체 구조를 알지 못하고서는 가치 평가가 불가능합니다.
토큰 이코노미는 굉장히 초기 단계이고, 아직 분류나 표준화가 많이 부족한 단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렇다할 성공 사례도 없습니다. 대부분은 이론적 시도에 가깝죠. 이론적으는 가능해도 실제 현실에서 토큰 모델이 제대로 워킹할까는 상당히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스팀잇도 처음에 설계한 모델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달러를 유지하도록 되어있는 스팀 달러의 가치가 1달러가 아닌 것을 들 수 있죠.
토큰 모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사물의 운동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늘상 틀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토큰 이코노미 모델을 설계하려는 시도는 매우 중요해보입니다. 토큰에는 거의 제한없이 다양한 조건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는 상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델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많이 이뤄지고 있구요.
소프트웨어의 장점은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모델들을 시도하고 실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계속 될 겁니다. 이런 시행착오들이 사회적으로 축적되면, 조금씩 표준이 등장하겠죠. 어떤 것들이 메인으로 자리잡을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되는데요.
토큰 이코노미의 중요성을 깨달은 똑똑한 전문가 분들은 이미 새로운 토큰 이코노미 모델을 만들거나, 나와있는 모델들을 이론화하는 작업들을 조금씩 내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이분들의 힘을 빌어 다양한 토큰 이코노미 모델들을 공부하고 하나씩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토큰 이코노미 모델을 가진 프로젝트도 같이 분석해보겠습니다.
<토큰 이코노미의 주요 주제들>
- 가치 저장 토큰 (Store of value)
- 증권 토큰 (Security token)
- 결제 수단 토큰 (Means of Exchange)
- 사업자 면허 토큰 (Work token)
- 소각 토큰 (BME token)
- 할인 토큰 (Discount token)
- 큐레이션 토큰 (TCR token)
-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케블리 독자님들께서도 토큰 이코노미 관련 좋은 자료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아신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 힘을 합치면 더 많은 것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흥미롭네요~감사
토큰 이코노미라....굉장히 흥미로운 개념이네요
맥을 짚어주는 글 잘 봤습니다 :)
지속가능한 토큰이코노미가 가능해야 dapp 생태계가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요. 정보를 얻기가 힘들더라구요. 앞으로 다양한 모델을 소개시켜주신다하니 기대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 많이 생각하는 부분인데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정말 흥미로운 글을 써주시던 송범근님의 글이네요. 개인적으로 기대가 큽니다. 일반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잘 풀어내는 능력을 가지셨는데, 스팀잇에서도 큰 인기를 끄실 것 같습니다! 화이팅!
좋은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지속 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