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으악 너무 싫어! 꺄아아악!”
“그럼 만약 같이 살다가 바퀴벌레가 나오면 어떻게 할건데? 혼자 도망갈거야?”
“아니! 절대 그럴수는 없지. ... '너를 먼저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에야' 내가 도망갈테니 걱정 마.”
“... 어쨌든 바퀴벌레는 그대로 집 안에 있는 거잖아.”
지난 기억 중 한 페이지를 떠올리며 여자는 새삼 실망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실망이라기보단 깨달음이라고 해야겠다.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때야 관계가 좋을 때이니 예민하게 걸러야 할 촉수를 세우지 못했다. 남산길을 내려오다가 만난, 근처 식당가를 빠르게 훑고 가던 바퀴벌레 한 마리가 실은 정말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었던 것이다.
혹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게 바퀴벌레를 극혐한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남자라고 바퀴벌레를 턱턱 손으로 잡아야 한다는 법이 어디있나. 싫어할 수 있다. 여자보다 무서워할 수도 있다. 이건 아무런 태클 걸 생각이 없다. 그냥 다양한 기호와 취향의 개인이 있듯이 지극히 사적인 성향의 영역이지 남녀로 구분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뒤늦게 이 일화가 생각난 여자에게 머릿속 전구가 켜진 건 ‘문제해결방식’에 대한 차이였다. 윗 이야기에서 남자와 여자의 문제해결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는가? 저 이야기 속 남자는 문제(바퀴벌레)가 생기면 회피하는 사람이고, 여자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여자의 마지막 대사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이 드러난다. 그럼 언제든 문제는 예고없이 어느 순간에든 들이닥쳐서 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여자는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지금 당장 눈앞의 바퀴벌레를 피하고 안 피하고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서다.
남자는 아마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그 '씨름하는 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취약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여자는 이 스트레스를 감수하고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인 반면에, 남자는 그 스트레스 자체에 대한 방어벽이 낮아서 일단 이걸 회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그냥 그게 상책이 되는 사람인 거다.
이 둘이 어쨌든 연인이 되었다는 건 불타오르도록 잘 맞는 부분이 있고,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공유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애정 문제와 별개로 문제해결방식에서는 둘은 근본적으로 너무 다르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유토피아적 상황이 지속되기야 한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다루는 과정을 두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사랑이 식고 안 식고를 떠나서 사이가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 경우엔 남자가 문제가 생겨서 피할 때마다 여자는 그냥 기다려줘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자가 문제 해결을 해주려고 나서거나, 빨리 해결하라고 재촉하거나 징징대거나 하는 등의 행동이 마이너스다. 남자의 피로감을 높일뿐더러 여자가 남자에 '의존하고 있다. 목매단다. 너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자기 가치를 스스로 낮추기 때문이다. 피로감에 더해서 남자의 근자감만 쓸데없이 높여줄 우려가 있다. 여자는 그저 관계를 지키고픈 마음에서 하는 행동이지만 그것이 남자의 과한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굳이 그렇게 커지지 않아도 될 격차, 역학관계를 강화해버린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답은 '적당히 챙겨주되 어느 정도만 하고 발을 빼라'는 것이다. 그냥 그 문제적 상황과 그 속에 휩싸인 남자에 대해 차라리 신경을 끄라는 조언이다. 내가 남자를 통제하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보단 그냥 놔줘버리고, 그의 진가를 시험해 보는 편이 낫다. 압박감에 도망을 가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자발적으로 돌아올 만한 양식과 용기 정도는 있어야 장기적인 파트너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여자 역시 평소에 좀 더 '남자가 기댈 수 있는 모성'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 피하려들기에 앞서 남자가 상담을 해 오는 금상첨화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특히 바퀴벌레를 무서워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보통은 남자들이 일부러라도 강한척하려고 저런 말 안함) 성향이라면 의외로 남자의 자존심 같은 거 내려놓고 여자한테 기댈 수도 있다. 물론 예측일 뿐이지 실제론 안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 '무능력'으로 간주되는 우리 사회의 남성성의 한계)
하지만 이 사례에서 진짜 얘기하고 싶은 건 저 둘의 문제해결방식의 차이에 대한 고찰이다. 그 얘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to be continued..!
잘 읽었습니다. ^^ 근데 남자란 단어와 여자란 단어를 바꿔서 쭉 읽어도 무리 없는 글이 되지 않는가해서.... 저는 반대 경우를 많이 겪었거든요. ㅋㅋㅋㅋㅋㅋ 원래 남자들이 회피신공을 자주 쓰나요? (정말 몰라서 ^,^)
네 ㅋㅋ 바꿔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 일단은 해결방식 차이가 뚜렷한 '연인'의 예시를 든것 뿐이에요, 남자나 여자라기보단 ㅎㅎ
근데 회피신공은 남자들이 대체로 더 많이 쓰긴합디다 주변사례를 보더라도요. 여자는 그럴때 계속 뭔 문제있냐고 끝까지 답을 듣고싶고 남자는 일단 귀찮고 피곤하고 여자한테 강해보이고싶기만 한데 약해보이거나 할까봐 혹은 부담주기싫어서 얘기안하고 동굴로 숨는거죠ㅜ
아 그렇군요... 그럴수도있겠네요..... 남자들이 많이들 잘못을 하니까 튀는 경우가 많을지도.. ㅋㅋㅋ
잘못을 하더라도 용기있게 입장해명이라도 하면 용서라도 해주죠.. 그냥 냅다 튀어버리기만 반복한다면 참 여자로서도 답답하다는....ㅋㅋ
잘못을 하더라도 잘못한건 잘못했다 말이라도 하면 용서라도 해주죠. 그냥 아몰라 해버리는 걸 반복하면 남자로서도 답답하다는... ㅋㅋㅋㅋㅋㅋ
(트집이나 싸움을 유도하는 답글이 아님.. ㅋㅋㅋㅋ)
그니까요. 여자든 남자든 잘못한사람이 그걸 말로 설명해서 상대가 납득이 되게 해줄 노력 정도는 사귀는 사이면 해줘야되는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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