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엄마는 성북구로 이사온 후 사월 초파일마다 동네의 절을 찾는다. 초파일 즈음에는 하늘이 항상 유난히 맑다. 덕분에 절마다 나부끼는 색색깔의 연등이 더 선명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절 가는 길에 사람 사는 풍경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안암동에 자리 잡은 절도, 안암동 바로 옆인 보문동에 위치한 절도 주거지역에 딱 붙어 있다. 손을 잡고 절과 절 사이를 오가며 동네 풍경을 눈에 담는 건 나와 엄마가 추억을 만드는 방식 중 하나다.
우리가 떠나는 동네 사찰여행의 첫 번째 장소는 고려대학교 쪽에 자리잡은 ‘개운사’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했던 무학대사가 1369년에 지은 절이다. 고려대학고 안암병원을 지나면 커다란 나무기둥으로 된 절 입구가 나타나는데, 입구 너머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면 대웅전이 자리잡은 사찰의 중심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가탄신일에 개운사에 오면 이 공간에 1879년 제작된 커다란 괘불도가 놓인다. 동네 불자들은 이 괘불도 앞에서 정성스레 절을 한다.
두 번째 목적지는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개운사 뒷편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보타사 대웅전 뒷편에는 바위 전면에 조각된, 후덕한 모습의 마애보살 좌상이 있다. 높이 5m, 폭 4.3m. 커다란 몸집에 눈이 길게 찟어진 마애불을 볼 때마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어 기묘한 느낌이 든다. 우리 모녀는 석가탄신일에 보타사에 오면 마애불까지 보고 난 후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동네 불교 신도분들과 어우러져 절 옆의 풀섶에 앉아 공짜 밥을 먹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은 ‘보문사’다. 아파트에 둘러쌓인 이 절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 본산이다. 우리가 찾아간 세 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년도(1155년)도 오래됐다. 이곳에는 경주 석굴암의 모습을 본딴 석굴암과 높이 솟은 9층 석탑이 있다. 9층 석탑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안치됐다고 하는데, 정작 찾아가 탑돌이할 때는 몰랐다.
탑돌이하는 곳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스님들의 참선을 위한 명상길이 있다. 아파트에 둘러쌓인 보문사의 모습만 보고 들어왔는데 생각도 못한 고즈넉함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관심 있는 곳을 기웃거리거나 평소엔 회사에 가느라 가보지 못한 동네 절로 발걸음을 옮기는 식의 일들. 나는 인생이 허락하는 한 이런 식으로 소중한 사람들과 별거 아닌 일을 잔뜩 하는 게 좋다. 그러고 놀기에 동네만한 공간이 없다.
사진만 봐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이네요.
동네에 이런 공간이 가까이 있서서 참 좋더라고요. 충분히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다들 있어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