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그야말로 ‘엽기적’인 사내 갑질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듣기 싫은 말을 했다고 퇴사자를 사무실로 불러 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촬영해서 기념품으로 남긴다는 발상부터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다. 살아있는 닭을 석궁으로 쏘고 일본도로 자르도록 직원에게 강요하는 ‘공포의 워크숍’까지 있었다고 한다. 직원에게 원색으로 머리를 염색할 것을 강요하거나 강제로 술을 먹이고, 화장실에 갈 때 벌금을 내게 하는 등의 갑질은 차라리 별 것 아닌 일로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이다. 영상이 아니었으면 믿을 수 없는 갑질 왕국의 실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양진호 회장은 웹하드디스크 업체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 소유주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유통함과 동시에 이를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사로 부당이득을 챙겨 천억원대의 자산을 축재한 것으로 지탄받고 있다.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IT노조는 이 끓어오르는 분노의 가운데에서 IT 업계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가 이 사태의 배경에 짙게 깔려 있음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IT업계의 가혹한 노동환경과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풍토,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인식 등 IT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양진호 회장의 갑질이 이토록 극단으로 치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쪽으로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유통하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디지털 장의사로서 고액을 받고 성범죄 피해자의 영상을 삭제하는 반사회적인 경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IT 노동자의 권리 보장만이 제2, 제3의 양진호가 나오는 비극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IT업계에는 양진호의 갑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IT노동자들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 안에서 늘 최약자로서, 과중한 노동에 노출된 채 제대로 된 경제적 보상은 물론 기본적인 노동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무리한 개발 요구와 개발 일정은 물론 고용불안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갑질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는 부당한 지시나 비인격적 대우, 심지어 폭행이 일어나도 이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양진호 회장의 사례는 증언하고 있다.
“소송을 걸더라도 약자인 내가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양 회장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해코지를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송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공개된 영상 속 폭행 피해자의 말이다. 같은 회사에서 상추를 제대로 못씻는다고 해고당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회사,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IT업계의 문제로 바라보고 재발방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재발방지책은 IT노동자가 있는 모든 곳에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노동조합을 보장하는 것이다. IT노조는 IT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으로서, 일상적으로 갑질에 시달리는 모든 IT노동자에 힘이 되기 위해 늘 눈과 귀를 밝히고 손을 내밀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힘을 모으면 갑질은 중단될 수 있다.
아울러 IT업계 프리랜서 노동자들도 당당하게 노동조합을 할 수 있도록 노조법을 개정하고 ILO 핵심협약 비준에 서둘러 나설 것을 정부와 국회에 강력하게 요구한다.
2018년 10월 31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