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언저리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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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 헤매고 있을 때
나의 날개가 잘렸다.
겁에 질려 되돌아가려 했을 때
나의 발목이 잘렸다.

그런데 내가 어딜 가던 중이었는지.
내가 가려던 곳이 있었던가.
통증에 몸부림치며 떨어진 이곳은
매서운 바람이 없어 썩 나쁘진 않다.

타들어가는 햇빛에 몸을 살짝 비틀면
지나가는 어미새들에 힘껏 움츠리면
난 날지도 기지도 않은 채
포근한 이 흙더미에서 만족하며 살아가겠다.

차가운 비가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분다.
내 몸을 적시고 불쾌하게 만드는 이 비가 싫다.
날지도 못하는 날 함부로 날려보내는 이 바람이 싫다.
난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는다.

온전치 못한 내 육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래. 이것이 나의 참모습이다.
비록 몸은 상처로 가득하지만 나의 영혼은 자유로이 날길 원한다.
날 더 저 멀리 날려보내다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
이 곳은 어디일까.
날 움직여준 그들은 대체 어디있는지 찾고 싶다.
적막이 가득한 이 곳은 잠깐동안 느낀 희열을 공포로 만든다.

내게 온전히 남은 두 팔로 움직이자.
포근한 흙더미가 날 유혹한다.
지친 나의 육신이 날더러 쉬라 한다.
하지만 이대로 날 잊을 수 없다.
찾아야 한다.

바람에 나무들이 춤을 추며 나뭇잎들이 흩뿌린다.
빗물을 머금은 풀잎들이 스치며 노래한다.
상쾌한 공기로 가득한 이 언덕
나의 친구들이 내게로 온다.
이곳이다.

"뮤지컬 - 맨 오브 라만차를 본 후"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뮤지컬인 맨오브라만차는 사랑, 용기, 희망, 이상, 도전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오만석님의 연기는 돈키호테의 역할과 매우 잘 어울려서 감동에 감동을 더했는데요

처음 본 배우 최수진님의 목소리는 이상을 내려놓은 알돈자라는 인물을 너무 잘 보여주셔서

무대 막을 내린 후 울었습니다.

하루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허드렛일을 하거나 남자에게 몸을 팔던 알돈자는

노망난 기사 돈키호테에게서 둘시네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작 중에 기사라는 존재는 수백년 전에나 있었던 직업인데요.

알돈자는 그래서 돈키호테를 미친놈 취급합니다.

하지만 그의 미친 행동은 무례하지 않고 정중했습니다.

숱한 남성들로부터 상처입은 알돈자를 숙녀로서 대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내린 여인 둘시네아'

알돈자를 둘시네아라며, 기사로서 지켜야 할 공주라 말하는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에게 덤벼들다가

노인의 몸인지라 크게 다칩니다.

귀족인 돈키호테는 가문으로 호송되어

저택에서 깨어나게 되는데요.

기사 놀이를 했고, 한 여성을 지켰던 그간의 일들을

그저 꿈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알돈자는 그런 그에게 찾아와

그것이 꿈이 아니라

당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해주고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케 해준 당신을 다시 알려달라고 합니다.

돈키호테는 알돈자의 절규에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기사의 행진가를 목이 터질듯 부르고는

숨을 거둡니다.

알돈자는 시궁창과 같은 현실에서 자신을 일깨워준 돈키호테에게,

이상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돈키호테에게

심장이 터질 듯 외칠 때 그 애타는 장면을 배우 최수진님께서 너무 감동적으로 보여주셔서

앞으로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알돈자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시로 담고 싶은데 머릿속 이미지가 자꾸 끊겨서 미루던 중에

따스한 봄인지라 나비가 날라다니더라고요.

극 중에 왈패색히들이 알돈자를 희롱하며

새라고 하더라고요.

그 나약한 새의 옷을 찢는 모습에 너무 짜증났는데

그 장면도 많이 순화된 장면이라는...

아무튼 그래서 알돈자를 여린 나비에 담아

상처를 받고선 처음엔 현실에 안주하지만

우연치 않게 바람을 만나 이상을 찾아가고

이상의 언저리에서 절규하다가

바람으로 인해 이상을 찾은 많은 이들이

노래하고 있는 언덕에 도달하는 시를 쓰게 되었네요.

극 중에서 돈키호테는 극중의 극, 액자식구성 속의 인물인데요.

그 돈키호테를 이야기하는 세르반테스는

종교심판으로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돈키호테의 이야기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이상이 무엇이 되었든 죄수들 뿐만 아니라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읽는, 보는, 듣는 관객들에게도 전달이 된 것 같네요.

뮤지컬이 끝나고 전체 기립박수....

배우들도 감동....

좋은 뮤지컬을 보여준 여친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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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저는 수채화그려드리고 서평도 써요
@raah 오셔서 맘에드시면 팔로 후 댓글 남기세요
다시 뵐께요^^

네 자주 놀러갈게요 서평쓰는 사람 멋진 사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likersh7님^^

와~ 여친님 정말 천사신가 보네요ㅎㅎ!!
잘보고 가요~~ Mr. hts

워니님이야말로 천사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