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 오래된 미래
1963년 세계적으로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이 화제였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사건 하나가 소리 없이 묻히고 말았다. 바로 공해방지법이 제정된 것이다. 한국이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일어나는 공해 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물론 그 시대의 노동법과 마찬가지로, 이 공해방지법도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구색은 갖추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요즘에 와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이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신경을 쓰는듯한 모습이 보이지만,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챙기는 느낌이 강하다.
이에 몇몇 사람들이 뭉쳐서 녹색당을 창당하는데, 이때가 2012년이다. 대한민국에서 환경이라는 가치를 크게 강조한 정당은 사실상 이 녹색당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녹색사민당 등등 녹색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정당들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환경친화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본격적인 녹색을 추구하는 녹색당의 창당은 좀 늦은 감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동맹 90/녹색당이 이미 내각에 참가한 적이 있었고, 2001년에는 녹색당들의 국제 모임인 글로벌 그린스가 창립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녹색당은 늦게 창당되었지만, 가장 오래된 좋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바탕으로 성립된 정당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고, 또한 호소력 짙은 것이었다. 또한, 개발의 논리에 아직도 열광하고 있는 한국에서, 우리가 원래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를 지적한 부분은 용기 있고, 의미 깊었다. 녹색당의 모든 지향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정당이 우리가 어떤 미래를 추구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미래를 그때가 아니라 지금 실현 시키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름처럼 환경정책만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건 매우 심각한 오해다. 녹색당의 바람은 모든 곳을 향한다. 그리고 더 낮은 곳으로 향한다. 소수자에게 손을 내밀고, 경쟁보다는 상생을, 싸움보다는 대화를 추구한다. 이런 정책 지향은 부드럽지만, 날카롭다. 그러니까, 모두를 위해서 부드러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그 신념은 단호하다는 소리다. 한국의 녹색당은 집권 하지 못했지만, 지명도가 약한 소수정당이지만, 정당 내에서 대의원을 선출이 아니라 무작위로 추첨하는 등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녹색당 당원들을 오래된 미래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우려되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사과학의 침투나,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혐오감 등등은 녹색당에 큰 쥐약이다. 환경은 과학하고 이제 분리할 수 없다. 과학을 완전히 말살시켜 환경을 지킬 수도 없고, 그러면 아예 현대 인류는 살 수가 없다. 다른 기술로 대체하더라도 여전히 환경문제는 남는다. 녹색당은 이런 점들을 숙고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런 점만 보안 되면 녹색당에 남는 문제는 이제 하나뿐이다. 바로 설득이다. 한국은 여전히 새로운 아파트를 건설하고, 미세먼지는 심해지고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우선순위에도 밀리는 경향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견해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녹색당이 미래를 앞당기려면 왜 녹색당의 가치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꿀 것인지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녹색당의 손을 잡아주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녹색당은 이미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전환의 씨앗을 심었다. 그럼, 미래라는 싹은 언제 나올까? 우린 언제 오래된 미래를 볼 수 있을까? 녹색당은 언제 이를 앞당길 수 있을까? 내가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