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어려운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만큼 꾸준히 어렵고 헷갈리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가까워진 듯싶다가도 어느 순간 저만치 멀어져 있고, 껄끄러운 벽이 있는 듯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허물어져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통에 그만 놓아버릴까 싶다가도 이따금 관계에서 느끼는 충만한 행복감에 또다시 애를 쓰게 된다.
학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친한 친구들이 모두 군대에 가버리고 혼자 공강 시간을 보내야 할 때면 더욱 그랬다. 학생식당에서 혼자 라면으로 허기를 지우고 나면 허기와 함께 내 존재도 지워지는 듯했다.
존재는 인식함으로써 만들어지지 않을까. 햇빛이 비치는 곳곳마다 사람이 가득한데 어느 하나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누구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못하고 나만의 세계에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운동장 바닥에 있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돌멩이처럼 우두커니.
4월, 햇빛이 강해졌다. 그만큼 내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빛은 다른 사람들만을 비추고 나를 비추지는 않으니까. 이제는 투명인간이 어울리겠다 싶을 때, 그동안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혼자 수업을 듣고 있는, 나만큼이나 희미한 존재. 다른 존재들을 꾸미기 위한 배경처럼 존재하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배경이 배경을 알아본 그 순간, 용기가 차올랐다. 아니, 용기라기보단 알려주고 싶었다. 그가 배경이 아니라 인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알려주길 바랐다. 나에게도 빛이 비치고 있다는 것을.
수업이 마치길 기다려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그에게로 걸어갔다. 배경이 움직이는 게 신기했을까. 인물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눈빛이 나를 비추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는 인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도 나를 인식한 듯했다. 당황과 반가움이 섞인 눈빛이 느껴졌다.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했다. 그는 그러라고 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같이 학생식당에서 라면을 먹고, 가끔은 맥주도 한잔하고, 같이 동아리에 지원도 하고, 미팅도 하고, 같은 여자한테 꽂히기도 하고, 같이 실연을 당하기도 했다. 그땐 왜 그리 즐거웠던지. 어떻게 그렇게 차이냐고, 똑같이 차였지만 너보단 내가 낫다며 낄낄댔다.
그러다가 우리도 취업할 때가 되었다. 같은 여성에게 구애할 때와는 다르게, 다행히 다른 기업에 지원하여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관계를 위해 나는 서울에 남았지만, 친구는 부산으로 갔다. 서울과 부산, 멀어진 거리만큼 우리 사이에 남은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말도 멀게만 느껴진다.
요즘 나는 저녁이면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한다. 가로등 불빛만이 은은히 비추는 산책로를 따라, 혼자 조용히 걷는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저녁이 오고 해가 저물듯 관계가 저무는 날은 반드시 다가온다. 저기서 같이 손잡고 걷는 연인도, 송파구 마라톤협회 티를 맞춰 입고 뛰고 있는 사람도, 벤치에 앉아 맥주 마시는 사람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저기서 행복한 얼굴로 지금의 관계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홀로 어둠이 드리운 산책로를 걷는다. 다시 떠오를 날을 기다리면서.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존재감’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알아줄때 생겨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갑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보팅 및 팔로 하고 갑니다! 자주 소통해요:)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