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겐 각자 자기 몫의 삶이 있다. 그것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며 살든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꾸역꾸역 살든 하나의 잣대를 들고 와 누군가의 삶에 들이대며 길다 혹은 짧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이론적이고 표면적이고 이상적인 답일 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는 매번 누군가의 순간을, 하루를 나의 잣대로 슬쩍슬쩍 빗대어 보면서 경탄과 한숨 그리고 무관심의 평점을 무의식적으로 매긴다.
하루 벌고 하루 살기 위해 시작했던 일당직 노가다를 찢어진 아킬레스건 덕분에 2주째 쉬고 있으면서 집에서 가까운 스터디 카페란 곳을 몇 번 가게 되었다. 몇몇 자리는 꽤 여러명이 빙 둘러 앉아 모임이나 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독립되어 있어 학생들과 주부들이 자주 이용했다. 오늘 앉은 자리 멀지 않은 곳에 한 무리의 남녀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프린터 용지들을 들고 이야기 중이다.
관심 없다. 하지만 생각만큼 의자가 편하지 않아서 혹은 누군가의 시선이 언제든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너무 의식해서인지 오래 집중할 수 없다. 혼자란 걸 여전히 뻔뻔스럽게 즐기지 못한다. 옆의 독립된 단체석 자동문이 그 스터디에 참석한 학생의 수와 마시는 음료의 양에 비례해서 점점 자주 열릴 때쯤 그들의 이야기가 짧게 짧게 들려온다.
"너무 뻔한 대답이지 않을까?"
"그런가?"
"동료가 업무를 추진하지 못할 때 ... 이런 답이 더 솔직해 보이는데"
뉴스에서나 보고 듣던 면접 대비 스터디다. 그렇게 투명한 유리창 너머 참가자들의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들의 그림과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좀 전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멀리서 바라본, 탁자를 둘러싸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젊은이들의 풍경에는 이런 대화들이 어울릴 법 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다시 한 번 파쇼적인 군부독재 정권의 탄압을 뚫고 민족, 민주,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우짜고 지짜고"로 시작하는 20세기 끝자락을 떠올리거나
"단 한사람의 가슴도 재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도 멀었느냐"처럼 뜨거운 것들이 탁자 위를 휙휙 날아다닐 것 같은 상상은 커피 둘, 설탕 셋, 프림 셋에서 달달한 카라멜 마키야또로 바뀐 나의 기호만큼 스스로도 뜬금없고 생뚱맞아 보였다.
하지만 이 순간 국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지구 저 편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깃발을 움켜진 소년의 사진은 여전히 그 뜬금없는 것들이 유효한 지구촌 현장들이 우리들의 너무 앞서가 버린 시대 공감을 붙잡고 있는 듯하다.
BBC 뉴스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