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이 고르지 못한 급경사면을 오르고 내리다 순간 왼쪽 종아리 밑 근육이 뭉쳤다.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점점 단단해지더니 왼발에 체중을 실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절뚝거리면서 반나절 이상을 일하게 생겼다. 다행히 급하게 움직이거나 차에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어서 한시름 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몰탈 시멘트를 물에 개어 바르는 작업을 반장과 하게 되면서 평상시였다면 전혀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을 일 모두가 고역이고 두 세배의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평지도 아니고 경사진 비탈길 농수로 사이로 40kg짜리 시멘트를 나르고 그것을 적당히 물에 개어 콘크리트 농수로관 이음새 틈새를 메우는 작업을 뒤에서 보조해 줘야한다. 틈새가 넓은 곳은 벽돌을 끼우고 작업을 해야 한다.
이틀째 같이 일하는 반장은 어제 자신의 '15세 소년의 서울 상경기'를 신나게 떠들어 되었었다. 때는 1975년 죽도록 농사일이 하기 싫어 집에서 250원을 훔쳐서 무작정 청량리 행 기차에 올랐다고 했다. 도착한 역에서 친절한 형을 만나 따라 간 곳에서 강제로 신문을 팔아야했던 일화를 무용담처럼 떠들어 되었다.
그 다음은 자식 자랑, 다음은 자신의 불교관, 다음은 청와대의 주사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틈틈이 나의 호응을 기다리는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주렁주렁 꺼내놓았었다. 조선소 반장을 하다 귀농해 농사 짓는 사이사이에 이렇게 업자의 일을 돕고 있는 모양이었다.
키에 비헤 큰 손과 굵은 손마디 다부진 체력 거기다 지나치게 우직스럽게 큰 코까지 평생을 몸을 움직여 먹고 살아온 이의 풍모가 낡은 조선소 작업복과 잘 어울렸다. 어제는 이렇게 인정 많은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면 내가 절뚝거린 오늘 오후부터는 오히려 더 먼 거리의 시멘트와 벽돌을 가져오게 하고 자신은 농수로에 앉아 휴대폰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약점을 보이면 그곳을 더 파고든다. 갑자기 노신의 책 한 귀퉁이를 떠올리는 나의 지나친 상상력을 나무라고 싶다. 배려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한 치의 양보나 친절도 없다. 오직 자기 몫의 일만을 하고 나에게 지시를 하고 절룩거리면서 농수로를 걸어오는 나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자비와 고타마 싯타르타만 이야기했다.
뜬금없이 휴대폰을 보다가 메이포비아란 영어가 무슨 뜻이냐고 내게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 나를 시험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분명 자신이 읽고 있는 기사에 그 신조어의 정의가 없을 리 만무한데 묻는 의도에 피식 웃음이 난다.
방심하지 말자. 나와 같겠거니 혹은 민중 따위의 말랑말랑한 감상으로는 단 하루의 오늘도 온전히 설명해 낼 수 없다.
더운날 수고가 많으셨네요 ㅜ 몸관리 잘하시길바랍니다!
전 처음 듣는 단어라 검색해봤네요... 별별 용어가 다 있네..
근데 그 분은 왜 그랬을까요, 왜 자비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개인주의/이기주의적으로 굴었을까... 참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을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