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검사내전
김웅/부키 출판사
단순하고 크게 힘들지 않은 일을 혼자서 몇 시간씩 할 때가 있다. 가령 투바이, 오비끼나 폼 등을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옮기거나 차에 옮겨 싣는 일처럼 혼자 일할 때를 대비해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항상 챙긴다. 적당히 몸뚱아리를 놀리면서 듣고 싶은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고 있으면 크게 일하고 있다는 생각 없이 그 시간을 소화할 수 있다. 그렇게 이 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일한 곳이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라 폰의 수신 상태가 들쭉날쭉해서 쭉 이어서 듣지 못하고 중간 중간 띄엄띄엄 들은 내용이 놀라운 사기행각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현직검사의 책 정도였는데 그 중 한 꼭지를 호들갑스럽게 소개하는 진행자에 이끌려 얼른 폰의 메모장을 열어 검사내전 네 자를 입력해 놓았다.
쉬는 날 도서관에 책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두 곳 다 대출 중이었고 차례를 기다리려면 5월초까지 기다려야했다. 한 곳에 예약(처음 이용해 보았는데 이렇게 하면 반환된 책이 예약해 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이 된다)을 걸어두고 열흘쯤 지났다. 잠깐 사서 볼까도 고려해 보았지만 이런 에세이류를 다시 꺼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친절하게 책이 반환되어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문자까지 온다. 책의 분류표를 보고 책의 위치를 찾아야하나 생각했으나 예약된 책은 사서의 뒷자리에 따로 보관해 두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예약자에게 대출되기 위해서였다. 현직검사가 쓴 에세이를 처음 접한다. 물론 찾으려고 한다면 정계진출을 염두에 두고 쓴 급조된 책들은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현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이 시작되는 300쪽쯤을 넘어가면 재미없어진다.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이고 폭탄주를 못 마신다는 검사지만 술자리의 주정처럼 말하는 사람에겐 진지하기 그지없으나 듣는 이에겐 고역인 그런 다소 전문적이고 재미없는 내용들의 연속이다. 더구나 스스로 검찰 조직 내에서 바른 말을 한다고 '또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지은이가 검찰 개혁과 관련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아래의 내용은 잘나가는 정치검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성실한 생활형 검사조차 조직논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검찰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서 '검찰 공화국'이라고 불린다. 물론 '찌라시 공화국'이라고도 하고, '갑질 공화국'이라고도 하고, '삼성 공화국'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검찰 공화국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검찰에서 해결하고 검찰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화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대통령 공화국'이나 '형사처벌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한다. 검찰이 전횡 일삼는다고 하나 결국 인사권으로 검찰을 쥐고 흔드는 것은 권력자이다. 검찰 개혁은 늘 권력을 쥔 자의 욕망만을 대변했다. - P375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평검사와의 대화가 오버랩된다.
반대로 300쪽 이전은 재밌고 술술 읽힌다. 역시 어린 시절 친구 대신 많은 책을 탐독한 내공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렇다고 책만 읽은 것도 아닌 듯싶다. 온라인 게임과 스포츠에도 조예가 깊은 듯하다. 별풍선도 알고 있다. 산도박장 박여사 이야기나 결핍과 성장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써내려간 꼭지들은 대한민국 검사인 게 아깝다.
남북의 정상이 11년 만에 만나는 화해의 무드에 한때 '어설픈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한 지은이가 지나치게 북한에 대해 인색해서 의아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본 책 안표지의 이력에 현직 인천지검 공안부장 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