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던 새마을호가 마침내 엔진을 멈췄다.
사진:이하 김원상 기자
새마을호는 1969년 2월 8일 관광호라는 이름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최고 시속 150km로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으며 전 국민의 발이 됐다. 새마을호는 동시에 출세와 산업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1970~80년대 새마을호는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최고급 열차였다. 당시 새마을호 운임은 지금 시세로 30~40만 원에 호가했다. 서울 유명 호텔 식당이 운영하는 식당차도 있을 만큼 돈깨나 있는 사람만 타는 기차였다. 철도를 이용했던 지금 중장년 세대는 무궁화호 객실에 앉아서 건너편 철로를 빠르게 달렸던 새마을호를 바라보며 동경하곤 했다.
1990~2000년대에 들어서 새마을호는 소득 증가과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운임 덕분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고속열차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KTX가 개통하면서 새마을호는 가장 빠른 '특급 열차’라는 타이틀을 잃었다.
그렇게 새마을호 운행 노선은 점차 축소됐다. 하루 6번 장항선(수도권-호남) 노선이 마지막 노선이 됐다가, 결국 지난달 30일 퇴역이 결정됐다. 익산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1160호 새마을호를 끝으로 대한민국 철도 역사의 한 장은 막을 내렸다.
◈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열차 내부
지난달 30일 마지막 운행(익산역~용산역)을 기다리며 익산역에 정차해 있던 새마을호 객차 곳곳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밝은색 페인트로 칠했던 객차 벽면은 거뭇거뭇한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손잡이나 문같이 쇠로 만들어진 부품은 흠집과 녹이 드문드문 보였다.
객실은 지금 보면 촌스럽기만 한 나무 바닥으로 꾸며져 있고 시트 디자인도 구식이다. 오래된 세월만큼 열차 안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바깥 풍경을 흐리게 할 만큼 유리도 흐리멍덩했다. 열차 모든 것이 새마을호 역사 59년을 증명하는 듯했다.
◈ 새마을호를 기리기 위해 역으로 모인 사람들
운행 종료 날 새마을호는 외롭지 않았다. 마지막 길 떠나는 새마을호를 마중 나온 사람들로 이날 익산역은 붐볐다. 기차를 좋아해 아빠 손잡고 나온 9살 꼬마부터 새마을호와 청춘을 함께했던 중장년까지 마지막 새마을호를 보기 위해 익산역으로 나왔다. 온양온천역, 천안역, 수원역 등 정차하는 역마다 새마을호 마지막 순간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수십 명씩 장사진을 이뤘다.
오후 7시쯤 익산역에서 만난 이대영 씨는 새마을호를 보기 위해 충남 서산에서 한달음에 왔다고 한다. 그는 20년 전 군 휴가 때를 회상했다. 이 씨는 “휴가 때 여자친구와 함께 다른 기차가 다 매진이라 어쩔 수 없이 새마을호를 탔던 기억이 있다”라며 “식당칸에서 돈이 부족해 1인분 시켜서 밥을 나눠 먹었다”라며 새마을호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렸다. 이 씨는 당시 새마을호에서 랏쿄(염교)를 처음 먹어본 뒤 지금까지 그 반찬을 즐겨 먹는다며 웃었다.
1160호 새마을호 열차 안에서 만난 이원동 씨도 새마을호와 긴 시간을 함께 했다. 그는 새마을호를 타러 휴가까지 내고 왔다. 이 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29년 동안 함께한 열차라서 새마을호가 특별하다고 전했다. 그는 “수원과 정읍을 오가는 직장 생활 동안 항상 기차를 타고 다녔다”라며 “새마을호가 사라져 아쉽지만 마지막을 함께 해서 다행이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철도 관계자에게도 새마을호 마지막 운행은 남다른 감회를 줬다. 익산역 플랫폼에 서서 새마을호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던 김현구 익산역장은 표정이 밝지 못했다. 김 역장은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기 전 새마을호는 신혼열차로도 쓰였다. 그렇게 많은 즐거움을 줬던 열차가 사라져 시원섭섭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때 최고급 열차였고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했던 새마을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출발 직전에 새마을호 기술 점검을 마친 황태섭 주임도 아쉬움이 컸다. 황 주임은 “지금 PP동차(새마을호 디젤 차량)가 1987년에 만들어졌고 제가 1988년생이라 둘이 나이도 비슷하다”라며 새마을호에 느꼈던 동질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구에서 대학교 때문에 열차로 통학할 때 무궁화호 표가 없으면 가끔 새마을호를 탔던 기억이 생각난다”라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제동시험을 하고 있던 새마을호 1160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아쉬움 가득한 인사를 받으며 마지막 종착역 용산역으로
익산역 10번 플랫폼에 대기 중인 새마을호 1160호는 기적 소리를 울렸다. 많은 사람이 보내는 작별인사를 받으며 새마을호 1160호는 승객 240여 명을 태우고 오후 7시 25분 종착지 용산역을 향해 출발했다.
Nrail, Rail+, SMB 등 우리나라 철도 동호회 회원들은 마지막 새마을호를 운전하는 기관사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안전운행을 부탁했다. 새마을호는 특별한 날이 아닌 것처럼 평소같이 주행을 시작했다.
장항선 철로를 달리는 새마을호 1160호 객차 안에서도 추억 만들기는 계속됐다. 철도동호회 주도 아래 롤링페이퍼가 작성됐다. 승객들은 카페 객차에 모여 롤링페이퍼에 마지막 인사말을 적었다. 철도동호회는 운행 종료를 맞아 승객들에게 기념승차권을 선물했다.
객실에 있는 승객 대부분은 열차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1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창밖 풍경을 찍는 철도 마니아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지막 새마을호를 타보기 위해 정거장마다 새로운 승객이 새마을호에 탑승했다. 하차 승객이 나와 빈자리는 곧바로 새 승객이 들어와 채워 앉았다.
종착역인 용산역 도착을 앞두고 마지막 차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새마을호 승무원 박윤훈 씨는 차내 방송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오늘 우리 열차는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동안 새마을호 열차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깊히 감사드립니다."
◈ 새마을호, 동호회, 기관사, 승무원이 함께하는 종운(終運)식
용산역 정차 후에는 철도동호회 회원과 새마을호 기관사, 승무원을 포함한 수백 명이 모여 성대한 종운식을 열었다. 새마을호 운행 종료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용산역 플랫폼에 모여 사진을 남겼다. 동호회 회원들은 마지막 주행을 무사히 마친 두 기관사에게 다시 한 번 꽃다발을 전했다.
마지막 새마을호를 운전한 기관사 손영상 씨는 "10년 동안 새마을호를 맡았다. 마지막 새마을호 운행을 맡아 행운이고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그는 "익산역에서 많은 사람이 배웅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종운식이 끝나고 새마을호가 차고로 진입하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아쉬움에 노래를 부르거나 눈물을 보였다. 빈 플랫폼을 떠나는 사람들 발길은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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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 저도 많이탔는데.. 대학생때 ktx는 비싸서 많이탔었는데 ㅎㅎ뭔가 짠하네요
많이 탔든 안 탔든 어느새 되게 익숙한 열차가 되어버렸습니다 ㅠㅠ
와 새마을호 진짜 오래됏네요.
자가 새마을호 ~ 수고했다
어떻게 보면 한낱 기계덩어리에 불과한데 이렇게 정이 든 사람이 많아 신기합니다. 그만큼 새마을호는 사람들에게 기계 이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얼마전에 서울 다녀올때도 새마을 호 탔었는데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