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티아 센의 이론으로 바라본 스팀잇

in #kr7 years ago

들어가며

지난 번 글로 많은 관심과 분에 넘치는 보상 또한 받았다. 원래부터 있어 온 논란(일정 비율 이상의 셀프보팅)이기는 하나, 새로운 방식으로 화두를 제시해 놓고 '서로 무관심 합시다'로 이야기를 끝낸 것에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고 평소에 관심이 많던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의 이론에서 '전보다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로 이 글을 적게 되었으며 이런 종류의 글로 어그로 아닌 어그로를 끄는 내 모습을 불편해 하시는 분들에게는 사과를 또한, 부족한 글을 유의미하게 읽고 가치를 올려주시는 분들께는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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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티아 센(Amartya Sen)

결과주의와 보편주의

주지하다시피 공리주의는 현대 주류경제학의 사상적 근간이다. 공리주의 윤리론은 결과주의와 보편주의 입장을 통해서 규범성을 획득한다. 결과주의란, 행위의 옳고 그름을 '그 행위의 결과가 쾌락(행복)을 증진 시켜주는가'의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다. 당연히 행위의 의도는 고려하지 않는다. 보편주의는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쾌락(행복)의 절대적 양이 증진되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 행위로 인해 누군가 겪은 고통이 존재해도 그 양이 (행위의 영향권 안에서)사람들이 얻은 쾌락의 양보다 적다면 이 행위는 보편주의에서 허용한다. 아니 권장한다

누군가는 전혀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을 터인 결과주의와 보편주의가 횡행하게 된 건,

  • 명제 A: 인간은 근본적으로 쾌락(pleasure)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한다
  • 명제 B: 고통(pain)은 유일한 악(evil)이고 쾌락(pleasure)은 유일한 선(good)이다
    (명제 B는 명제 A에 기초한 가치 판단 명제이다)

위에 아주 간단히 적어 본,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와

  • 행위는 그 결과가 행복(happiness, pleasure)을 증진시키는 정도에 비례하여 옳으며, 불행(unhappiness)을 산출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그르다

라는 이야기를 남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공리주의가 현대 주류경제학에서 전제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 개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경제인이란, '주어진 정보와 제약조건 하에서 자기이익의 극대화를 합리적으로 도모하는 독자적인 인간'을 말한다.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s)

센은 개인의 이익과 효용만을 신경쓰다가 사회 전체의 비극을 야기하는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s)'가 그 들(경제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리주의적 인간상인 '경제인'에 행위의 동기와 윤리적 관계에 대한 요소를 추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잠재능력(Capability)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존 롤스는 기본재를 ('모두에게 똑같이'가 아니고 최빈층에게 상대적으로 많이 분배한다는 의미에서) 평등하게 나누어주는 일이 '정의원칙의 실천방안'이 될 수 있다고 여긴 반면, 센은 기본재를 삶에 실재하는 가치로 전환하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기본재를 보다 유용하고 가치있게 전환하는 개인의 역량이 정의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 생활이나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이 어떠한 상태(being)에 있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행동(doing)을 하고 싶어 하는가를 결부시켜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선택 가능한 기능(functionings)의 집합"

이 것이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 내린 잠재능력(Capability)에 대한 정의이다. 센은 위에 나오는 기능(function) 측면을 삶에서 소득이나 효용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스팀잇에서 하는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스팀잇 글쓰기'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

일정한 스토리나 의미가 담긴 기록을 남기는 기능과
이 글을 매개로 하여 필자와 독자가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기능

최초에 스팀잇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 핸드폰의 소유가 필수였다. 그리고 '글'로 보이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기초 맞춤법과 글의 일정한 스토리 및 의미가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기본적 향수(享受: 받아서 누리다) 능력이다. 말하자면, 어떤 가치를 받아서 누리기 위해 필요한(향수를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스팀잇 글쓰기'의 향수 능력을 가지고 얻는 유효 가치가 기능(function)인데 (당연히) 개인마다 다르다. 글을 매개로 하여 감정을 공유하고 타인과 알아가면서 '소통'이라는 유효 가치도 얻을 수 있다. 이 것 또한, 기능(function)이다.

기능은 나름의 스토리와 의미를 가진 글을 쓸 수 있는 상태(being)
댓글이나 더 나아가 밋업 같은 정서 교류를 할 수 있는 행동(doing)이다.

스팀잇의 이름 아래 동일한(듯이 보이는) 활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가진 향수 능력의 차이로 인해, 문자 그대로 '받고 누리고 느끼는 것'이 각기 다르다. G와 P와 K가 스팀잇 활동을 시작했다. G는 자신의 부(wealth)를 (기존보다) 늘릴 수 있는 좋은 도구로 '스팀잇'을 간주하면서 즐겁게 글'도' 쓰기로 했다. P는 마음 껏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이 것을 바라보았고 수익'도' 낼 수 있는 것이 너무 기뻤다. K는 실제로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왔는데 스팀잇에 글을 써서 얻는 재정적 보상으로 생계를 잇기로 했다. 비유가 조금 극단적이지만 G와 K 중 '스팀잇 글쓰기'를 통해 얻는 기능의 종류와 양에 있어서, 누가 더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질까?

얻는 기능(유효 가치)의 종류와 양 그 자체가 아니고 기능의 종류와 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누가 더 많은지 묻는 내용이다.

G는 K보다 잠재 능력(선택 가능한 기능의 집합)이 훨씬 많다.

현실과 스팀잇의 차이

센은 잠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없을수록 빈곤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건강이나 교육, 선택에 대한 자유 등이 빈곤 계층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센의 이론은 쉽게 한계를 만난다. 잠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조차 부의 편중에 의해서 크게 좌우되고 있고 이 것은 소속 국가, 사회, 가정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스팀잇에서는 현실보다 상황이 나아 보인다. 어느 스티미언의 말씀처럼, 현재 스팀잇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계층은 '좋은 컨텐츠를 내고 있는 플랑크톤'들일만큼 초심자에 대한 호의와 복지가 충분히 커뮤니티 내에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정된 자원의 활용 및 분배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실천적 방안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센 이론이 현실에서보다 스팀잇 내에서 유용할 수 있다는 개인적 판단을 가지고 '(센이 말하는)잠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다. 스팀잇은 단일 자원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만큼 생각할 수 있는 답도 하나 뿐이었다.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

1943년 뱅골의 기아 사태로 300만 명이 아사했다. 당시 식량의 양은 전체적으로 분배하기에 부족한 양이 아니었음에도 농촌 노동자들의 실업으로 인해서 식량 구매 능력이 없었던 이들이 모두 죽었다.

센은 'Resources, Values and Development(1984)'에서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란,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와 기회를 이용하여 사회에서 개인이 사용 또는 교환 할 수 있는 대안적인 재화의 묶음'이라고 정의한다. 위의 기아 사태는 벵골의 과도한 화폐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 식량 가격의 상승 -> 개인의 인타이틀먼트 박탈이 원인이었다. 센은 식량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이 여러 기근 현상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주주의의 결여를 사회적 제도 차원에서 해결해야 함을 역설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장까지 스팀잇에 가져올 마음은 없다.

유상 스파임대를 활성화 한다면?

센의 이론을 다시금 복습하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유상 스파임대의 가능성이다. 나는 아직 스파를 신청하고 임대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그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 하다. 임대 받은 스파를 '적절하고 유용하게 그리고 애초에 임대를 신청했던 의도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글 정도는 보았다.

길게 돌아왔지만, 스팀잇의 자원(스팀 채굴량)은 유한하고 우리는 그것의 활용 및 분배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셀프보팅이나 봇을 이용한 우회적 보팅 등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지는 분들이 계시는 것이다. 나는 지난 글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셀프보팅을 터부시 하고 그 당사자에게 큰 부담을 주는 행위를 반대했다. 글을 읽으신 분들은 내가 과도한 셀프보팅을 지지하는 입장 또한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 것이다. 특정 지점에서의 절충을 원한다. 그래서 적었던 말 중에 '커뮤니티적 공헌'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고비율의 셀프 보팅을 하는 이들이 본인이 원하는만큼씩 (유상)스파임대를 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다. 사실 이런 식의 의견 표현은 문제가 많다.

'일정 비율 이상의 셀프 보팅자들이 누군가에게 스파임대를 해주는 방식으로 꼭 공헌을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고 그 공헌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내가 '일정비율 이상의 셀프 보팅이 나쁘다'고 가치 판단을 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행여 이 것이 선택가능한 의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싶어 제안한다. 이미 예전에 비해 활발한 임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셀프 보팅을 하시든 안 하시든, 그 비율이 어떻든 좋은 의도로 임대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안다. 나는 임대를 해주실 분들이 많이 생기는 편도 좋지만 그보다는 반대로 지금까지 해당 상황을 불편하게 보시던 분들이, 일정 비율 이상의 셀프보팅자들의 커뮤니티적 공헌을 인지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로 이 것(유상 스파임대 활성화)이 작용할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가 크다.

일정 비율 이상의 셀프보팅자란, 단순히 높은 스파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시는 분들이 아니라 그 분들의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활용하고 공헌하시는 스티미언의 하나의 전형이다.

라는 생각이 공공연히 퍼지게끔, 유상 스파임대가 활성화 되면 좋겠다.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는 측면에서 이 글은 지난 번 글보다 10배는 부담이 된다. 마지막으로 내 입장을 밝히며 글을 마치겠다.

마치며

유상 스파임대를 하거나 하지 않는건, 셀프 보팅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처럼 개인의 자유이다. 자신이 높은 스파를 보유했든, 적은 스파를 보유했든 그 것은 사유재산이다. 내가 어떤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 것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간섭할 수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 간섭 받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논란이 있고 아직 어떠한 절충안이나 해결책도 마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팀잇을 시작한지 70일 된 플랑크톤이 그냥 한 가지 제안을 해보는 것이다.

스팀파워나 그 것의 임대, 그리고 스팀잇과 kr커뮤니티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으로 위의 주장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저의 과실이니 어떤 쓴 소리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스팀잇이, 특히 kr 커뮤니티가 파벌화 되는 것을 막고 싶은 입장에서(아주 작은 갈라짐까지는 당연히 막을 수 없지만) 제 능력으로는 위의 제안이 최선이었습니다. 모두 즐겁고 유익한 스팀잇 활동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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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도 P도 K도 아닌.... 그져 좋은 글 읽는 것으로도
만족해 하는 사람 D도 있어요.ㅎㅎ
논리적인 의견 제시에 박수를 보냅니다.

글을 의미있게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아이디는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헤헤

역시 사람냄새 글. 자유스럽지만 무례하지않은
가든님글은 먼가 +1을 습득하는 기분. ,ㅎ ㅎ

제 글이 야채님께 +1의 무언가를 선사한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저도 야채님의 포스팅을 볼 때마다 (특히 음식 사진을 볼 때)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