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삼천리] 1편 -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나 있지...

in #kr6 years ago (edited)

날씨가 정말 더운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은 너무 더워서 힘들다는 이야기 뿐이군요. 아무쪼록 더위에 건강 관리 잘 하시고 오늘은 재밌는(?) 이야기 한편 할까 합니다. 1편이라고 썼지만 1편으로 끝이 날지 더 재밌는 이야기를 발굴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1편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나 있지...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아는분도 계시겠지만 그냥 해 봅니다.

지관 갈처사

오늘 할 이야기는 숙종 임금과 얽힌 갈처사라는 지관의 이야기입니다. 풍수라는건 참으로 오묘한 사상인것 같습니다. 풍수를 찾아보니 땅과 공간의 해석과 활용에 대한 동아시아의 고유 사상이다. 풍수에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이다. 라고 나옵니다. 그냥 기복을 바라고 묘자리나 보며 집터를 본 그런 기복적인 사상이라기 보다는 우리네의 자연관이라고 보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무엇도 사람의 의지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것이 개털의 생각입니다.

숙종과 더벅머리 총각

숙종 임금이 평상복을 하고 잠행을 하던중 과천의 갈현을 지날때 시냇가에서 우연히 슬피울며 관을 옆에 두고 시냇가를 파고 있는 더벅머리 총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필시 묘자리를 파고 있는것으로 추측이 되었지만 그 연고가 궁금하여 총각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젊은이 여기 관은 누구의 관인가?

제 어머니의 관입니다.

이를 들은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어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는데 도대체 어떻게 묘자리를 쓴다는 말인가?

하고 재차 물었습니다. 더벅머리 총각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제 어머니가 운명을 달리하셨는데 유명한 갈처사란 지관이 저를 불쌍타 하시며 여기가 명당이라고 여기에다 묘자리를 쓰라고 했습니다.

라며 하소연 하듯 당황해 하는 젊은이를 보며 숙종은 필시 지관의 장난이라 여기며 꽤씸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궁리 끝에 가지고 다니는 지필묵을 꺼내 몇자를 써 젊은이에게 건냅니다.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터니 이 서찰을 수원성으로 가져가 수문장에게 보이라. 그리고 그 지관의 집이 어디냐?

숙종이 물으니 총각은 숙종의 위엄에 눌려 지관의 집을 자세히 알려주고 수원성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수원부사가 더벅머리 총각이 들고온 서찰을 읽어보니

어명! 수원부사는 서찰을 가져온 젊은이에게 쌀 삼백석을 내주고 젊은이의 어미의 장례를 치뤄주라.

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수원부는 발칵 뒤집어지고 총각도 쌀이 차곡차곡 나와 마차에 실리는걸 보고 또 그 선비가 상감이라는걸 알게 되고는 오들 오들 떨게 되었습니다. 냇가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지키고 있을 상감마마를 생각하니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그리고 숙종은 바로 선비차림 그대로 젊은이가 일러준 갈현동 산중턱의 외딴 집을 노기를 띠며 찾아갔습니다.

숙종과 갈처사

이윽고 숙종이 도착한 찌그러져가는 갈처사의 오두막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이리오너라!

숙종은 큰소리로 갈처사를 찾았습니다.

게 뉘시오?”

한참후 시큰둥한 갈처사가 방문을 빼끔 열어봅니다.

나는 한양사는 선비인데 댁이 갈처사가 맞소?

하고 숙종이 물어보니

그렇소만?

의아한듯 갈처가사 답합니다. 다시 숙종이

댁이 오늘 아침에 저 시냇가에 묘자리를 쓰라고 일러준 노인장 맞소?

하고 숙종의 노기 띈 목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그렇소만?

갈처사가 의아하다는듯 대답하기가 무섭게

듣자하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보는 모양인데 물이 펑펑 나오는 시냇가에다 묘자리를 쓰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이오?

하고 숙종의 목소리는 노기가 서렸습니다. 갈처사도 촌노이지만 다짜고짜 언성을 높히는 선비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노기가 올라왔습니다.

선비양반 개코도 모르면 잠자코 있으시오 저기가 얼마나 명당인지 알기나 하는거요? 저 땅이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삼백석을 받고 들어가는 명당이요. 그런 명당에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떻소!

라며 갈처사가 소리를 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숙종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립니다.

저 노인 말대로 그 총각은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삼백석을 받은게 아닌가…!

숙종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공손해지며

아니 그렇게 잘아는 양반이 저 아래서 고래등 같은 기왓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것이지 왜 이런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하고 묻는다.

이 양반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드네.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명당이요.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곧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이오.

이 이야기를 들은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뻔 했습니다.

이렇 신통한 자가…그럼 임금이 언제 찾아온단 말이오?

하고 물으니 갈처사는 성가시다는듯…

거참 꽤나 귀찮게 물어보시네…잠시만 기다려 보쇼.

하고는 주섬주섬 방 한귀퉁이 보자기 먼지를 털며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장을 꺼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합니다. 갈처자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쳐나오며 마당에 이마를 찧으며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종이에 받아 놓은 날짜와 시간이 지금이었습니다.

여보게 갈처사 괜찮소이다. 내가 여기 왔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말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자리를 하나 봐 잡아주지 않겠소?

하고 숙종이 물으니

대왕님의 덕이 이리 이리도 높으신데 신하된 자로서 영광이옵니다.

하여 갈처사가 잡아준 터가 바로 지금 서오릉의 ‘명릉’ 자리라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능에는 숙종의 계비 인경왕후 김씨의 익릉,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명릉, 그 이후 제21대조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이 함께 모여있습니다. 숙종은 3000냥의 푸짐한 복채를 하사했지만 갈처사는 30냥만 받고 나머진 받지 않고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옛날 전설같은 얘기지만 뛰어난 지관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도인들이 많았나 봅니다. 명당이라는것이 누구의 자제 시험을 붙게 해주고 또 후손들 잘 살게 해주고 이런 기복 보다는 자연과 하나로 잘 어울어지게 집도 짓고 묘도 쓰고 건물도 쓰는 그것이 바로 잘 사는것의 기본이라는걸 아는 선조들의 사상은 참으로 오묘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태국에서도 태국 사람들이 후엉쭈이ฮวงจุ้ย 라고 삼거리에 길이 부딪치는 자리에는 건물을 안 짓는다던가…여러가지 지리를 살피는걸로 봐선 풍수는 중국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남아까지 영향을 끼친것 같습니다. 그 사상만 보자면 참으로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정신이 엿보이는데 이후에 너무 장사속을 가진 사이비 풍수가들의 범람으로 타락하여 하나의 미신으로만 치부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풍수를 보는 이가 없어 절멸하다시피 했지만 풍수를 자연과 하나로 보는 사상으로 다시 공부가 되면 도시 계획에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개털-

Sort:  

서오능에 가 본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벌써 가보셨군요. 보시기에 좋은 명당 같습니까?^^

곧 개봉할 영화.. 명당이 생각나네요.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시사했었는데...
개코도 모른다는 말... 정말 오랜만에 듣습니다. ㅋ ㅋ
홍릉 헌릉은 가봤는데 서오릉은 못가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명당일지 가봐야겠어요!

아! 명당이란 영화가 곧 개봉하는가 보군요. 풍수지리학은 개인의 기복이 아닌 자연과의 조화로 접근해 보면 참으로 좋은 학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 선조들은 자연과의 조화로 본것이었을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재미있네요

하늘과 교감이 가능한 사람들이 누리는 비법이겠지요?

제가 아는 분 가운데는
자칭 돌파리라는 목사가 있는데
물이 나오는 곳을 참 잘 봐주거든요.

저도 배우면서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

재밌네요. 그 목사님은 물을 잘 찾는 인지 능력을 받으셨나 보네요.^^ @ kimkwanghwa님은 밥상꽃들과 대화하시는 능력을 갖고 계시잖아요.^^ 그게 하늘과 교감이지요.

아는 내용이지만 재미있어서 또 보게 되네요 ㅎㅎ

널리 알려진 얘기지요.^^ 감사합니다.

풍수지리... 안 믿을 수도 없고 믿기도 그렇고~~ 애매하네요.

풍수지리 좋다고 후손이 잘 사네...입신했네...뭐 이런건 믿을게 못 되겠지만 자연이랑 사람이랑 잘 어울어지는 그런 풍수는 있지 않을까 싶네요. 건물을 짓더라도 자연과 어울리게...지금처럼 그냥 마구자비식의 건축이 아닌, 자연을 살피면서 건물을 세우고 땅을 일구는 풍수는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오 저 소름 돋았어요.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 들려주세요^^

이런! 어느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3,000냥 줬는데 30냥만 받아갔다는 부분에서 통곡했습니다.^^

서오릉..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엄청 갔던곳이었는데 ㅎㅎ 추억돋네요

그러셨군요. 정말 명당인것 같습니까?^^ 감사합니다.

갈처사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네요.
어떻게 그런 일을 알 수 있는지 심히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도인이겠지요.^^ 그 증거가 3,000냥 줬는데 30냥만 받아갔다는걸 보니 도인 같습니다.^^ 저 같으면 "뭐 주신거니 받겠습니다." 하고 다 받았을텐데...^^

읽다가 멋지고 기막힌 이야기에 웃었네요.
풍수 이야기 재미있어요.

재밌다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서울 최고 기온이라던데 건강 관리 잘 하세요.^^

오늘 출근하는데 ㅋㅋ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군요.

정말 덥군요. 그래도 몸이 알아서 시원하게 하려고 땀을 줄줄 흘려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맛난거 많이 드세요.^^

미국에도 풍수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ㅎㅎ

표현이 달라도 자연과 어울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다 풍수 전문가들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매우 심히 엄청 재밌네요. 풀봇!!!
풍수이야긴 참 재밌고 의미있고 하죠. 주욱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풍수 이야기야 타타님이 더 많이 아실텐데요.^^

우왕 신기하네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있었던 일이겠지요...?

살이야 많이 붙었겠지만 전해 내려오는 얘기라고 하는군요.^^ 감사합니다.

헐,,,
내일 포스팅할..., 편집도 끝낸 얘기 보따리
였는데용!!!
개털님 블러그 들어다 보길 잘했네영~
개코도 모르면서 올릴뻔 했어영~ㅎㅡㅎ

헐!!! 이런! 제가 선수를 쳤습니다. 죄송함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