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트랜드 키워드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20여년 전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말이다.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나온 후 그가 자주 쓰는 단어인데 행복이란 것이 무지개너머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소소하고 확실한 일상에 있다는 의미다. 책에 보면 '갓 구워낸 빵을 결 따라 찢어 먹을 때, 옷장 속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 겨울밤 고양이가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순간'이 나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한다.
나도 요즘 나의 소확행을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산책을 하고, 여기저기 스티커도 붙여보고, 그림도 그리고, 다이어리에 작은 행복을 기록하기도 한다. 문득 이게 작은 행복이 아니라 큰 행복인데 싶다. 라곰, 휘게, 깔사리깬닛이 결국 다 이런거지뭐.
오늘 점심 약속이 갑자기 취소됐다.
직장인에게는 점심은 큰 고민거리고 때로는 스트레스다. 점심 때마다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일 말이다. 다 같이 우르르 가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냥 회사 앞 그저그런 곳에서 끼니를 떼우는 것도 싫고. 주변에 약속 없는 사람을 물색해볼까 하다가, 갑작스레 밥먹자는 게 어쩜 무례일수도 있고 나 역시 별로 생산적일 것 없는 주제를 떠들며 점심을 보내는 것을 소모적이라 여겨 어쩔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며칠째 묵혀온 생각이 떠올랐다.
요 네스뵈를 찾자.
엄청 좋아하는 노르웨이 추리 소설가다. 회사 도서관에 요 네스뵈 책이 없어서 근처 지역 도서관을 검색해봤다. 1.3km 거리에 도서관이 하나 있다. 지도를 핸드폰에 저장한 후 점심시간 10분전에 나섰다. 크게 헤메지 않고 심지어 지름길까지 찾아내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은 어릴 적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공간이다.
내 방엔 늘 책이 가득해 미래의 집을 그리면 난 침실은 없어도 서재는 빼먹지 않았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교와 회사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늘 그 건물의 도서관이었다.
회원증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도서관 탐방을 시작했다. 부페를 먹으러 가면 접시를 들기 전에 한 바퀴 죽 돌아보고 뭘 담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도서관을 죽 훑어본 후에 책을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웬걸, 외국 소설 한 코너도 돌지 못했다. 읽고 싶은 또 읽고 싶었던 책이 너무 많아서다.
빨강머리 <앤>이 열 권으로 나왔을 줄이야.
길버트랑 진짜 결혼했네. 어이쿠 길버트가 의사가 됐어?
아이작 아시모프
조르주 심농
마르셀 프로스트
아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멈춰서느라 소설책 벽 하나도 다 못지나갔다.
빼곡한 책을 보는 순간 오랜만에 혼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빌 브라이슨의 19세기 판이라고 해야 하나, 린드그렌의 미국 방문기 <바다 건너 히치하이크>를 뽑아 창가 소파 자리 하나를 다 차지하고 양반다리를 한 채 키득거리며 책에 빠져들었다. 문득 휴대전화에 문자가 와서 한 시 반이 된걸 알고는 허둥지둥 보고싶었던 네스뵈를 빌려 회사까지 땀이 나도록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왔다. 그 와중에 샌드위치도 한 개 사왔지롱. 좀이따 카페 가서 먹어야지.
난 내 친구들에 비하면 연봉이 절반 정도 밖에 안된다. 그나마 입사 초기엔 1/3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호봉제라 꾸준히 올라 이제야 절반 수준이다. 친구들이 잘나가서이기도 하고 회사가 성장하기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난 사실 월급에 별 불만 없다. 점심시간을 좀 길게 써도 크게 눈치 보이지 않고, 휴가도 업무에 큰 지장 없으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야근? 누구 말로는 악마의 발명품이라지. 야근은 진정 내가 원할때만 한다.
월급이 많으면 뭐해.
야근하고 출장가고 스트레스 받으면 결국 그걸 보상하기 위한 비용으로 그만큼 나가는 걸.
작지만 확실한 오늘의 소확행.
점심 시간에 동네 도서관에가서 맘에 드는 책 읽다오기. 담엔 미리 빌려서 근처 카페에가서 카푸치노 한 잔 마시며 읽어야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네요 :)
네, 행복은 한방이 아닌 연속성에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