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분의 어록과 관련 문구를 몇쯤은 알고 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일휘소탕 혈염산하(한 번 크게 휘두르니 피가 산과 강을 물들이누나)"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이 아파 울었다." -난중일기-
(장군님 죄송합니다. 무엄한 질문이지만 여진이란 분에게 위로는 해 주셨는지...?)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난중일기-
(장군님 거듭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군님 파이브썸을 하고 다니시면 적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지잖아요...)
등등. 어쨌거나 다음의 어록은 빠지지 않으며, 빠질 수도 없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전전긍긍하는 선조의 입을 틀어막고 명량해전의 기적을 예고한 이 한마디. 나중에 한 척의 판옥선이 더해져 13척이 되지만 저 열 두 척의 판옥선이 없었다면 조선은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탑승했을 것이다.
12척의 판옥선을 지켜내 이순신에게 배달해준 기적의 남자, 그의 이름은 배설(裵楔)이다. 우리는 그를 이순신을 배신한 비겁한 탈영병으로 기억한다.
<영화 '명량'에서 악인으로 등장한 배설>
조선은 왕을 제외한 모든 의사결정집단 구성원을 고시로 뽑은 중앙집권적 공무원 사회였다. 고시 엘리트 국가의 무관은 재미난 존재다. 임진왜란 초기를 보면 전쟁에 숙달되지 못한 조선군의 일반 병사들은 왜군에 비해 전투력이 형편없었다.
그런데 무관들은 전투에서 패할지언정 개인적인 무력은 대단했다. 신립은 탄금대 전투에서 대패를 당했을지만, 혼자서 스무 명이 넘는 왜군을 베고 절벽에 몸을 던졌다. 이런 무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의 무과 시험과목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기마술 통과 기준은 무공을 넘어 라스베가스 서커스 수준이다.
<이런 걸 한다. 공연장이 아니라 시험장에서...>
아무나 공무원이 될 수 없기에 조선 관료들의 직업윤리는 견고했다. 흔히 사극에 전, 현직 관료가 목숨을 걸거나 자결하기 직전 "국록을 먹은 몸으로..."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거 요즘 말로 손보면 그냥 "월급 받았으므로 목숨 건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에게 목숨을 요구할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보다 제 목숨이 소중한 건 인지상정 아닐까? 공무원도 직업인 만큼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닐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공무원을 하고, 인정받기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국가라는 직장은 '직원'에게 그 정도만 요구하면 되지 않을까.
무관 배설은 유능한 공무원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배설은 상관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 왜군과의 전투에 참여한다. 그는 상관의 명령을 곱게 따랐고, 상관은 곱게 패배했다. 그러나 전투에 패배하자 그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는 대신 신속하게 지방의 장정들을 모아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행정능력을 발휘했다.
일 잘하는 배설은 합천 군수로 승진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투에서 겁을 먹고 도망가는 적병을 추격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 사람은 합천 군수다. 군수의 일은 관할지를 지키는 것. 배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했으므로 야근은 거부한 것이다.
이 일로 의병장 김면에게 곤장 20대를 맞았다. 그는 김면에게 반항했는데 이유가 기가 막힌다.
"수령이 어찌 일개 서생의 명령을 듣는단 말인가?"
그러나 배설의 말은 일리가 있다. 김면은 전쟁통에 조정에서 배설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다. 하지만 의병장을 우대하기 위한 명예직이었다. 반면 배설은 차근차근 승진한 정규직 공무원이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낙하산에 휘둘릴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으니,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있다.
곤장을 맞은 배설은 필요한 곳마다 투입되어 백성들을 동원해 성도 쌓고 행정도 정비하는 등 조정이 시키는 일을 착착 해낸다. 일 기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었다.
이순신 장군께서 고초를 겪으신 후, 원균이 해군력을 말아먹은 칠천량 해전에 배설이 있었다. 그는 조선 수군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놓는 원균의 모습을 보고 고뇌에 휩싸여 있었다. 배설, 그는 상관에 반항하는 객기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원균 밑에서 그나마 열심히 잘 싸우며 이 기록적인 패전에서 유일하게 공을 세우기도 했던 배설. 그러나 원균이 이틀 연속 대패를 당한 후에도 장수들을 불러모아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자, 그는 결심한다.
'오케이, 난 여기까지다.'
불가능은 불가능일 뿐. 배설은 가능한 상황에서만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음날, 조선 수군이 섬멸되는 지옥도가 펼쳐질 즈음 이미 배설은 전장을 신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12척의 판옥선과 120명의 부하를 이끈 그를 왜군 선단이 가로막았다. 배설은 아마도 수십 척, 최소 십수 척의 배를 물리치고 그 중 8척을 격침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올리며 포위망을 뚫었다.
<판옥선>
배설은 앞장서서 싸웠다. 자신만 빠져나가기 위해 부하들과 배를 희생시키기는커녕 책임을 다했다. 자기 휘하의 무기와 군사를 지키는 일도 공무원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공무원'의 사정이야 알 바 아니다. 허나 적어도 자기 일에는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도 윤리는 있다. '직장인의 윤리'가...
'나는 내 일만 한다. 단,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정말 칭찬받아야 할 일도 있다. 배설은 도망 중에 한산도에 피신한 조선 백성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왜군에 학살당할 운명이었다. 전시의 장수가 백성을 구함은 공무원의 윤리!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한 배설이지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할 일도 한다.
배설은 한산도의 피난민들을 모두 배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구조했다. 그 와중에 왜군에게 넘어갈 뻔한 군사시설과 군량을 불태우는 '업무'도 잊지 않았다. 이런 부하직원과 일하고 싶지 않은가?
상관이 죽은 원균에서 살아 돌아온 이순신 장군으로 바뀌자, 공무원 배설은 불세출의 영웅에게 전함 12척을 안겨준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배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이놈이 말을 안 듣는 건 아닌데, 슬슬 눈치를 보며 굼띠게 행동하는 게 아닌가? 우리 충무공 장군 열받게시리...
난중일기는 배설의 모습을 '두려워했다'고 표현하는데 한문에서 이 표현은 '겁을 먹었다'와는 조금 다르다. '우려했다'에 가깝다. 배설은 충무공이 13척의 배로 왜군의 대선단에 도전하려하자 이 양반 이거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 불가능은 불가능이다.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말이 될 때만, 또 내가 산다는 희망이 있을 때만이지. 아니 그런데 이놈들이 죄다 미쳤는지 이순신의 연설 한 번 듣더니 장수고 졸병이고 한 번 해 보자고 한다.
'아 놔... 님들 정신 차리세요.'
그렇다고 배설이 어디 상관의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이던가. 그는 뼛속까지 공무원이다. 배설은 항명하는 대신 병을 핑계로 이순신을 피해다녔다. 핑계도 가관이다. 배멀미였다. 적선 8척을 침몰시키며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수군 장수 입에서, 배멀미를 핑계로 미팅은 다음에 하자는 핑계가 나오다니.
배설은 결국 탈영해서 이순신의 복장을 터지게 했다. 그런데 탈영 중에도 할 일은 했다. 병을 핑계로 적의 멀찌감치서 동태를 확인하는 임무를 따낸(?) 배설은 <난중일기>에 따르면 양력 10월 12일에 탈영했다. 그런데 14일에 배설의 종이 충무공을 찾아와 적의 동태를 보고했다. 공무원 배설, 도망치는 와중에도 마지막 업무보고는 잊지 않은 것이다. 이쯤되면 위대한 수준이다.
전쟁사에는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영웅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일을 해 내니까 영웅으로 불린다. 영웅은 고난에 처한 국가와 민족에게 로또같은 존재다. 그에 반해 배설처럼 유능한 공무원은 두둑한 만기 적금이다.
배설은 결단코 영웅은 아니지만 잡놈은 더더욱 아니다. 배설, 그는 공무원의 신화이며 공무원의 이데아다. 다만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 예측할 수 없었음이 그의 불행이다.
아니 세상에, 13척으로 300척의 적을 이길 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명량해전은 조선에 기적이었고 외로운 탈영병 배설에게는 전국 수배령이 떨어졌다. 완벽한 반전의 대서사시 속에서 배설의 이름은 수치와 배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배설은 그답게 잘 잡혀주지 않았다. 그러나 권율이 아버지를 대신 붙들어 협박의 시그널을 보내자 서산에서 체포되고 만다. 이 또한 너무나 배설답다. 조선의 양반에게 효를 지키는 일 또한 당연한 소임. 그는 해야할 일은 한다.
배설은 참수되었다. 그리고...
조선은 배설이라는 인물을 곰곰히 다시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은 공무원 사회다. 모든 공무원에게 충무공 같은 영웅이나 사육신 같은 충신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 국가와 공무원은 계약관계다. 녹봉으로 능력 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충성도 구매하지만...
배설의 충성 이상을 요구하는 게 양심적일까?
공무원은 배설 만큼만 하면 된다. 아니 그만큼 하면 최고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배설에 대한 평가를 재고할 만큼 세련된 면모가 있었다. 광해군 때에 이르러 배설은 복권되었다. 그는 병조판서(국방부장관)에 추증되었다. 여기엔 당연히 공무원 사회에 보내는 시그널이 담겨 있다.
'배설은 여러분이 롤모델로 따를 만한 모범적인 공무원이다.'
배설은 고종 대에 한 번 더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이 사실은 재미있다. 외세의 탐욕 앞에 나라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을 때, 무너져가는 왕조는 초인적인 영웅 뿐 아니라 여러 명의 배설도 원했다.
영화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동원하자 배설의 후손들이 소송을 냈다. 돈이 중요하지도 않았고 승소를 기대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후손들의 억울함을 알리고 조상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려는 소송이었다.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후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 하다. 배설은 자신을 참수한 왕조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두 번이나 복권/추증한 인물이다. 이로써 역사적 재평가는 끝났다고 봐야 옳다. 그러나 후손분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시대가 바뀌었다. 역사적 평가는 이제 사서의 기록이 아니라 대중이 소비하는 이미지로 정해진다.
충무공 같은 영웅은 존경받는 '칭송의 대상'이다.
배설과 같은 공무원은 인정받는 '추천사항'이다.
우리 사회생활 하면서 절절히 깨닫지 않는가?
배설 만큼 하는 거, 이거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거....
비록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배설은 배설의 역할대로 잘 수행해냈다고 생각합니다 .. !
충무공 같은 "영웅"도 있어야겠지만 배설같은 인물도 분명 말씀대로 없어서는 안되겠죠
우와... 놀랍네요..대충 알고 있었는데요...
이순신 장군의 사생활?도..
배설의 후손들이 억울할 만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도 배설에 대해 바로 알게 될 것 같으네요..
스파가 약해서... 속상하네요.. ㅜㅜ
두려워했다는 여러방면으로 해석하시면서 여진과 잤다는 관계했다고 확정적으로 해석하시는군요. 그부분 출처좀 알수있을까요? 원문이나. 제가 티비에서 듣기론 여잔이 왔고 잤다.이게 동침일수도있고 그냥 자고갔다는 얘가일수도있다. 후자가 가깝다고 들었네요
배설이 공무원이다 . 뭐 그리볼수 있지만 군인도 공무원 일종이니. 군인과 공무원이 같나요?군무원도 아니고
안중근 의사의 글이 떠오르네요 위국헌신군인본분
출처는 난중일기 국역본입니다. 여진이 아파서 울었다는 말 때문에 다르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는데요. 충무공의 섹스라이프는 화려했습니다. 굳지 여진 건을 달리 해석한다한들... 이분은 많이 관계하고 다니셨습니다. 외려 당시의 시대적 틀을 감안하지 않고 성웅은 성생활도, 그것도 현대의 기준에서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도 역사와 인물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영웅이고 대협이시지요. 배설은 직장인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 인물이고요. 그러니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받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
편파적이라 드린 말씀입니다.한자해석이 다를수있음을 두려워하다에서는 지적하는데 잤다에서는 확정적으로하니 오해의소지가 있어보여서 그런겁니다.
아니에요. 저기서 두려워한다는 건 말 그대로 꺼려한다는 거고 가치판단이 개입된 말이 아니에요. 전쟁생황을 다룬 한문에는 '적의 매복이 두려워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는 식의 문장이 많이 나옵니다. 두려워 벌벌 떤 게 아니라 그냥 불리할 것을 우려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마 전략적인 판단이 개입된 말이고요.
한문은 영어와 비슷하게 표현에 감정적인 가치판단이 우리말에 비해 덜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great는 위대한, 으로 번역되지만 한국어에서 위대하다는 말은 현실에서 가치판단적이죠. 그러나 영어에서는 그냥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찰리 채플린이 히틀러를 패러디한 영화 제목이 <위대한 독재자>이죠. 그는 히틀러를 좋게 보지않았습니다. 그 반대죠. 두려워한다는 것은 기백이 부족한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피하려는 상황 전반을 뜻합니다. 한문에서 이 뜻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실제로도 충무공께서 배설을 질책하시면서 하는 말씀은 "수사께서는 왜 피하려고만 하시오"입니다. 이 뜻은 피하려는 태도 전반입니다. 이것으로 배설의 당시 용기나 감정 상태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해당 본문이 설사 편파적이라 가정한 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분이 자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진이라는 여인과 세 번 관계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충무공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의도적인 목적을 갖고 접근한 '가설'입니다. 당사자가 잤다고 해서 잤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 여백에 횟수까지 표기했어요. 이걸 무시하면 정설이 왜 존재하며 기록이 무슨 가치를 가질까요. 그건 역사가 아니죠.
수백년 전의 무관이 한 여성과 하루에 세 번 관계하면 안 되나요? 이 사실이 불쾌하시면 존재하지 않는 제 글의 편파성을 주장하실 게 아니라 이순신 장군에 대한 koyuh8님의 입장을 재조정하시면 될 일입니다. 만약 충무공의 활발했던 성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분에 대한 개인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koyuh8님의 자유입니다. 단 저는 그분의 섹스라이프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충무공의 섹스가 그렇게 문제이고, 특정 문장에만 천착해서 그분의 섹스를 줄이려는 분들이 있을까요? 저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난중일기에 기록된 섹스라이프는, 박정희 독재 시절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자유로운 성생활이 성웅의 품위를 깎아내린다는, 군부독재집단의 품위없는 발상 때문이었죠. 요정과 안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작 그들의 성생활은 건전하지 않았죠. 에두아르드 푹스가 지적했듯 언제나 문란한 지배층이 윤리적으로 양순한 피지배층을 원합니다. 충무공의 성생활에 보수적인 메스를 대려고 하는 도덕주의는 협소할 뿐 아니라 별로 건전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섹스가 불편한게 아닙니다. 여러 해석이있고 오역논란이 있는데 마치 정설처럼 말씀하시니 하는말입니다. 다른 한자해석이가능하고 여진이란 단어가 기생을말할수도 남자를 말할수도 여진족을 말할수도 았다는것이고요.잘숙 이란 글자가 관계를 의미하진않을 수도 있다는것이죠.또한 함께공자 가 두번을뜻하는지 등등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뜻입니다. 여진 이순신으로 검색해보니 여러 의견이 있네요.
아니 국역본 정본에 있는 해석이 정설이지 뭐가 정설인가요. 가설의 수준이란게 충무공이 열 십 자 두 번 쓴게 20이라는 뜻이라느니, 함께할 공 자의 다른 자가 아니겠냐느니 하는 수준이에요. 조선 천지에 이순신 장군만 다른 한자를 썼나요. 아니면 충무공이 한자도 일반적인 기준 이상으로 표기하지 못하는 사람인가요? 조선시대는, 적어도 중반까지는 문관도 활과 칼을 다루고 무관도 시를 쓸 줄 아는 시대였습니다. 충무공은 무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선비로서 당대 귀족층의 서법/표기법을 마스터한 분입니다. 무슨 글자 처음 배운 초딩도 아니고, 왜 그분만 열십자 두 번을 20으로 표기해요. 무슨 숫자 10 이상은 표기하지 못하는 아마존 인디오입니까?
그 여러 의견이라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집착 내지는 관념으로 인한 가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여진이 남자이거나 여진족이면, 그 사람과 세번 뭘 했다는 말입니까?
한자로 음차된 인명을 가지고 논할 거면 '이은혜'란 사람과 잤다는 기록을 가지고 '은혜로움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로 윤색할 수도 있어요.
세상에 조선천지에 이순신 장군만, 그것도 여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잤다'는 표현을 특별히 따로 쓴답니까.
조선시대의 문무 양반 문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섹스 전력을 스코어처럼 기입한 쪽은 무관이요, 반대는 문관이었습니다. 이는 문무 양반에 대한 권장사항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종묘재례에서도 문과 무의 반은 몸동작이 달랐어요. 무관은 군인이기 때문에 호연지기, 맨박스, 센 척이 권장되었습니다. 충무공의 칼에 새겨진 '일휘소탕 혈염산하'는 문화적 맥락상 문관이 쓸 수 없는 단어에요.
문관은 겸양하고 없는 척하고 스스로를 낮춥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의 섹스라이프는 주로 무관의 수행록이나 일기를 통해 드러나 있습니다. 난중일기 스타일의 섹스라이프 기록은 다른 인물(물론 무관입니다)의 수행록에도 동일한 스타일로 '스코어'처럼 기록되어 있어요.
여진과 잔 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고요. 처음엔 두 번, 두 번째엔 세 번 관계했습니다. 두 번째 날의 문장만 뚝 띠어서 대해부학을 하고들 계신데 그럼 그 전 날의 사건은 뭡니까? 자 타칭 역사학자들, 교수들,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 00이란 분과 섹스를 했는데요. '00과 잤다' '00과 몇 번 했다'고 하지 '조선 여성인 00과 삽입을 통한 성교를 3회 치렀다'고 하나요? 여진과 자고 두 번 하고 세 번 했다는 문장의 뜻을 뒤집고 싶으면 동일한 스타일로 기록된 다른 문서의 해석을 모두 바꾸면 되요. 이건 역사도 아니고 애초에 학문적 양심도 아닙니다.
대체 왜 충무공의 섹스라이프에 대해서만 이렇게들 집요한 인수분해 망상 해석을 내놓고 순진한 네티즌을 믿으라고 유포시키는지. 아니 충무공이 하고 싶어서 했다잖아요. 그분은 육체적 욕망도 없습니까? 정말 변태 통제광들이 따로 없어요.
본인이 자고, 했고. 또 했다는데 후손들이 뭐가 그렇게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마늘이랑 장어 챙겨먹고 자기들 성생활이나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생각 없으면 가부좌 틀고 수련이나 하던지요.
대체 그분의 하룻밤 성생활이 뭐가 그렇게 당사자의 위엄을 깎아내리기에 와글와글 달라붙어서 상상력 투쟁을 벌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충무공의 업적과 상관이 있습니까? 정신들 좀 차리고, 차라리 야동이나 보라고 하고 싶어요.
뭐 생각은 자유이고요. 논란 있단건 팩트입니다. 검색해보세요. 초서 를 잘못읽나 봅니다. 여러방식으로 해석 하네요. 여러설이 있으니 믿고싶은거 믿으시고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배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만한 부분이 있네요.
역사의 한 귀퉁이 인물을 재조명하는 것.. 그 깊이에 감탄하고 갑니다.
근래 읽은 글 중 제일 재밌습니다!
좋은글이네요
보팅하고가요
읽지 않을 수 없는 제목, 웃지 않을 수 없는 내용, 보팅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대단하십니다!
배설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진짜 공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