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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초상화>
헨델 생전의 음악인이라는 직업은 소속 없이 활동하기가 애매했다. 지금도 클래식 음악인은 주로 시향이나 국립극단, 기관의 악단 등에 소속되어 있다.
헨델은 25세에 취직했다. 직장은 직장은 하노버 왕실이었다. 하노버의 군주는 제후라고는 하지만 선제후(신성로마제국 황제 선출 투표권을 소유한 제후)였다. 사실상 왕국의 군주다. 무엇보다 하노버는 독일 땅에서 한 마디로 '대세'였다.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얻은 명성으로 하노버 왕실 악단의 악장(카펠마이스터)이 되었다. 시향도 아니고 '국향'의 상임 지휘자 겸 작곡가. 끝내주는 직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헨델을 지원해주신 우리 할레의 영주님은... 어쩌겠는가. 일개 영주가 감히 선제후에게 헨델을 내 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헨델은 너무 커져 버렸다. 그러나 벗뜨...
정작 취직을 하고 나니, 하노버도 좁게 느껴졌다. 어느새인가 헨델은 영국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는 휴가를 받을 때마다 계속해서 영국으로 휴양을 떠나게 되는데....
왜 영국인가?
하노버가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영국은 ‘완전한’ 한 나라다. 런던이 더 큰 무대다. 이때 영국의 국력은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돈이 넘쳐나던 때였다. 영국의 상류층은 돈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영국은 부와 국력에 비해 문화적으로는 2류 콤플렉스가 있는 섬나라였다. 유럽 본토에서 온 예술가가 특별히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헨델은 생각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빈집... 아니 영국의 문화계를 내가 한 번 차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묶여 있는 몸. 취직을 한 이상 그는 하노버 선제후인 게오르크 루드비히의 신하였다.
게오르크 루드비히는 신하의 입장에서 결코 편한 군주가 아니었다. 그는 너그러운 성품이 아니었다. 왕비 조피 도로테아는 그와 6촌 지간이었지만, 아버지와 천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이었다. 이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왕비를 박대했고 하노버의 성에 장기간 유폐시켜버렸다. 어머니가 학대받는 모습을 보고 자라난 세자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게오르크는 전쟁의 실력자였다. 하노버의 영토를 늘리는 데 성공했고 적에게 관대함이 없는 타입의 남자였다. 한 마디로 신하된 입장에서 배신해도 될만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헨델은 큰 물을 원했다. 제대로 된 돈과 인기가 필요했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먹튀를 설계했다.
헨델은 게오르크 선제후에게 영국에 가서 일 하나만 하고 돌아오면 안 되겠냐고 청원했다.
"위대하신 하노버 선제후 전하의 신하가 영국 촌뜨기들 기준에서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전하!"
"껄껄~ 마이 프레셔스 헨델! 가서 클라스를 보여주고 와!"
이렇게 헨델은 기회를 잡았다. 런던은 이탈리아 본토에서도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를 열렬히 환영했다.
"거 티켓값이 얼마요?"
1711년 2월, 헨델은 런던에서 영국인들의 취향과 선망을 고려해 작곡한 <리날도>를 공연한다. 대히트였다. <리날도>는 그 해 영국 문화계를 석권했다. 영화 <파리넬리>를 상징하는 장면은 역시 <날 울게 하소서> 독창 씬이다. 이 곡이 바로 <리날도>의 대표 레파토리다.
작품 한 방으로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기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헨델. 당연히 영국 왕실의 관심을 받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의 앤 여왕이 그를 궁금해했다.
“요새 헨델이라는 친구가 그렇게 핫하다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의 헨델, 앤 여왕의 생일에 맞춰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바로 <앤 여왕의 탄신일을 위한 송가>라는 작품을 발표해 헌정한 것이다. 그렇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앤비어천가'다.
제임스2세의 딸인 앤 여왕은 젊을 때부터 고도비만에 시달렸다. 심신의 건강이 극히 안 좋았다. 평생 18번 임신했는데 대부분 사산했고 낳은 아이들도 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상상임신도 있었다. 남편도 요절했다.
앤 여왕은 우울하니 먹고 먹으니 살이 찌고 우울해지는 비극의 순환고리에 갇혀 살았다.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살이 쪘다. 신하들이 알현할 때는 홀로 나아가야 하니, 궁전의 1층과 2층 사이 바닥에 구멍을 뚫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잔뜩 미화된 초상화보다 이 편이 진실에 근접할 것이다.>
국왕의 권력을 의회가 접수한 나라의 고도비만 여왕. 이러면 무척 무기력했던 군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영국에서 왕은 허수아비라고는 하지만, 앤 여왕은 조선왕조식 붕당정치로 왕권을 유지했다. 휘그당이 강할 때는 토리당을, 토리당이 강할 때는 휘그당의 손을 들어줬고 둘을 경쟁시켰다. 승자는 여왕의 선택을 받는 쪽이기에 모두가 여왕에 의존하게 된다. 재임 기간 내내 이 줄다리기를 매끄럽게 해 냈으니 권력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인물이다.
앤 여왕은 군주로서는 냉철한 권력자였지만 자연인으로서는 한없이 불행했던 우울증 환자였다. 헨델의 생일축하 헌정곡은 요즘 노래로 치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정도다. 음울한 일상 속에서 이례적인 기쁨을 느낀 앤 여왕은 헨델에게 연금을 하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헨델, 두 군주에게 동시에 연금을 받을 수는 없다. 연금을 받는 이상 신하다. 신하된 몸으로 두 태양을 섬길 수는 없는 노릇. 헨델은 영국과 하노버를 왔다갔다 하다가 연금까지 보장되자 영국에서의 성공을 확신했다. 간을 봤더니 안동 간고등어다! 이제 내 무대는 런런이구나! 내 군주는 여왕폐하시다!
헨델은 그대로 영국에 귀화해버렸다.
신하에게 설계당한 게오르크 선제후는 어이가 털리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여서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아놔 헨델 이 개객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이제 영어로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 되었다. 독일? 아 그 나라요? 하노버? 거기가 어디죠? 먹는 건가요?
헨델이 귀화했을 때 앤 여왕은 40대 중반이었다. 앞으로 살날이 창창했으므로 헨델의 미래도 밝았다. 성인병에 시달리던 그녀가 49세에 서거할 줄 헨델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먹튀할 때 앤 여왕의 건강은 계산에 넣지 못했다.
헨델은 영국에서 거침없이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1714년 앤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앤 여왕은 후계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왕가 자체가 교체될 상황이 왔다. 영국 의회와 대법원은 스튜어트 왕가 제임스 2세의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서 유럽의 왕족들 중에 누가 영국의 임금님인지 추적했다.
누구였을까.
새 임금님으로 낙점된 사람은 바로 헨델이 먹튀했던 게오르크 루드비히 하노버 선제후였다.
하노버를 버리고 영국에 왔더니 영국에 하노버 왕가가 개창됐다. 게오르크 헨델이 조지 헨델이 신분을 세탁했더니 게오르크 선제후가 조지 1세가 되어 따라온 것이다...
게오르크 선제후 겸 조지 1세는 영국에 가면 헨델부터 씹어먹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영국 국왕의 정치력이 의회만 못해도, 음악가의 권력은 아예 제로였다. 음악가 한 명 쯤이야 한끼 식사로 해치울 수 있었다. 이때의 헨델은 주목받는 예술가였지 아직 의회가 나서서 보호할 만한 영국의 보물은 아니었다.
1717년 게오르크 선제후는 국왕 조지 1세의 신분으로 영국에 입성했다. 등극하시고 뭐부터 하시겠냐는 의회의 질문에 조지 1세는 헨델을 잡아오라고 하는 대신 물놀이부터 하겠다고 했다. 예로부터 템즈강에 배 띄워놓고 유람하는 즐거움은 왕의 특권이었다. 어차피 헨델이야 냉장고 안에 저장된 고기 신세 아닌가?
시간을 번 헨델은 인생을 건 필사의 아부를 기획했다. 왕의 물놀이 일정을 전해들은 헨델은 재능과 집중력을 총동원해 짧은 시간 내에 무려 21곡을 작곡했다.
조지 1세가 한창 물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악기와 오케스트라 단원 50명을 실은 배들이 갑자기 나타나 왕과 귀족들이 탄 배에 접근했다. 일정에 없는 사건이었다. 지휘자를 보아하니...
"저 새끼 저거 헨델 아냐?"
황당한 조지 1세가 너 이새끼 이리 와보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헨델은 다짜고짜 지휘를 시작했다. 제 마음입니다 전하! 헨델과 연주자들이 탄 배들은 왕이 탄 배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21곡을 완주를 시작했다.
조지 1세의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한 헨델의 몸부림이 바로 <수상음악(Water Music)>이다. 전체 구성은 3부, 총 21곡으로 이루어진 한 시간짜리 앨범이다. 헨델은 이때 바로크시대 관현악단의 모든 악기를 동원했다. 단 하프시코드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배에 실을 수 없으므로 제외되었다.
전곡을 모두 들은 조지 1세는...
몹시 만족했다. 그는 세 번이나 더 연주를 명령했다. 흔들리는 배 위해서 연주시간만 네 시간을 버텼으니 연주자들은 모두 탈진했다. 물론 살아남아야 하는 헨델은 눈을 부릅뜨고 지휘했다.
조지 1세는 헨델을 봐주기로 했다. 이때 헨델의 나이 32살. 영국에서 마음 놓고 전성기를 구가할 준비는 이제 마친 셈이다.
(다음 편에 계속)
오... 이런 역사와 창작이 곁들여진 장르 좋아해요 ㅎㅎ 오늘부터 정주행 합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필독님 ㅎㅎ 게오르그 헨델, 게오르그 선제후 두 조지의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헨델편 중에 이게 제일 재밌네욬ㅋㅋㅋ
헐, 재밌네요.팔로우합니다
푸하하하 대단하네요.
어마어마한 처세술이군요.
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고 팔로우 꾹..
음악가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데, 다른글들도 보러 가야겠어요!
앗 깜짝이야
놀랐습니다
어제 제가
오늘 삼일절 기념하기 위한(유관순열사에 맞춰) 음악 선곡이 '헨델의 앤여왕의 생일을 위한 송가'예요
삶의 끝 죽음은 또 다른 세상에서 탄생과
같으니까요
유관순열사가 그날 소천된 건 아니지만요
잘 읽었습니다
와...미술쪽은 제가 하는 이야기찻집이 있다면
클래식은 필드독님이 펼쳐내시네요!
멋집니다. 잘 감상했어요.
재미있게 읽었네요..
다음편 주세요 현기증 날것 같아요!
아... 간당간당한 대역폭에 무릎을 꿇고 보팅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댓글이 달릴지 안달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써 보자는 마음으로..
하노버에서 먹튀한 헨델이 조지1세가 된 게오르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작곡한 곡들이 바로 Water Music이라니..! 정말 예술의 역사는 왕족과 귀족을 위해 마련되었던 화려한 장식품이었군요 ㅠㅠ ㅎㅎㅎ
뭐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건 덕분에 지금도 그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네요.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작곡을 해서였을까요? 불후의 명곡을 남기고 말았네요!
아직 4편이 남아 있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넘어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