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집을 꾸미다: 삶의 경험은 나의 스승입니다.

in #kr6 years ago (edited)

그림 얘기가 아닌 발리 삶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발리 도착하면 모든 것이 평온해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기대와 달리 현실은 어려움 그 자체였었습니다. 가족처럼 잘 지내보자!로 시작했었지만 여행업을 하는 언니가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고 형부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발리적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실 가족 얘기를 이렇게 풀면 좋을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 안 한 건 아니지만 언니 선택이 잘 못 되지 않았기에 부끄럼 없이 글을 풀어봅니다.

큰엄마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재산을 상속받은 언니. 큰엄마 재산이었던 건물은 모두 오빠 명의로 했고 현금만을 상속받았던 상태였던 언니.형부는 왜 건물을 공동 명의로 하지 않았느냐 네 재산은 내 재산과 같다.그러니 나는 상속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를 늘 말해왔고 언닌 단 한 번도 큰엄마 병간호를 돕지 않은 형부의 행동등 많은 것에 대해 질타하며 유산 상속에 대해 말하지 말라 했었습니다.언니가 대학생때 쯤 큰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30대 중반 큰엄마마저 페암으로 세상을 떠나 언닌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베트남으로 떠나 있는 언니가 참을 수 없었나봅니다. 욱했다고 하더군요. 톡으로 이혼하자. 형부에게 말했고 화가 난 형부는 저를 발리 집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발리 도착한지 2주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눈물도 났고 당황도 했고... 어찌할 바 몰라 한국 사람 많다는 꾸따 비치로 가 앉아 멍하게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멀 얻고자 이곳에 온 것일까... 온전히 이방인이었던 저는 꾸따 비치에서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베트남에서 제 연락을 받은 언니는 같이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중국인 친구에게 저를 부탁했고 저는 그렇게 중국계 인도네시아 친구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벨라. 제 소식을 알게 된 언니는 베트남 일정을 빠르게 끝내고 발리로 돌아와 저를 찾았고 미안해했습니다. 위자료 주는 것으로 형부를 한국으로 돌려보냈고 둘은 이혼했습니다. 형부를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언니와 저는 렌탈한 발리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은 컸으나 폐허 같았던 집에서 언니와 저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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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페인트칠을 새롭게 한 후 찍은 사진입니다.
폐허의 모습을 했던 집 사진은 찍어둔 것이 없어 비교할수가 없네요...
1층 2층 오래되고 넓은 집 페인트 칠 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었습니다.
무상무념.... 1주일 걸린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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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하려고 했던 언니 사업도 진행하지 않게 되었고, 언니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싱가포르 회사에 지원했고 언닌 그렇게 또 한번 싱가포르로 떠났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이왕 발리 살게 된 거 제대로 잘 살아보자 하여 그림 그려 받은 돈으로 폐허 같은 집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생전 아버지가 목공업을 하셨기에 조금씩 배운 걸 써먹은 순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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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연장 때문에 2개월에 한 번씩 싱가포르에 나갔었는데 그때 다이소에 들러 저렴하게 인테리어 소품을 사와 페인트로 칠해도 가려지지 않는 부분은 액자로 감추고, 천장은 우붓에서 사온 나무로 몰딩을 하고, 전등은 새장을 구입해 씌우고 언니랑 반반 돈을 합쳐 직접 가구 디자인을 해 우붓 가구점에서 제작해 필요 용품을 집에 들이기 시작해 기분 좋게 살만한 보금자리를 만들며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톱질 못질, 집 꾸미며 사니 잡생각이 좀 줄기도 했고, 혼자 살기 무서웠던 큰집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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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페인트 칠 끝내고 주문한 가구 배치 한 후 찍은 사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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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인테리어가 어느정도 끝났을때의 사진입니다.
너무 저렴하게 주문한 가구 상태가 실제론 좋지 않았기에 기스난 가구 를 페인트 칠하고 바니쉬로 코팅했습니다. 벽에 액자도 붙여 인테리어하고 소품도 진열했고요. 거실과 제가 쓰는 방은 레드 톤으로 장식했고 바다를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2층 방은 블루톤으로 장식했었습니다.

발리 현지 사람들은 사실 이렇게 꾸미고 살아가진 않습니다. 때문에 1년 동안꾸민 집을 본 집주인이 탐을 냈고 싸움이 나 저는 발리 집을 두고 떠나야 할 상황이 되어 태국으로 가게 된 것인데... 주변 사람들은 남의 집을 꾸며 뭐 그렇게까지 살았냐고 합니다. 어차피 뺏겼잖아 하면서.헌데, 아등바등 살면서 내 집을 사도 그 집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린 죽어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내 집이고 내가 쉴 곳이 아름다워진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행복인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 잘 살았으니 그것으로 됐습니다.

태국에 살 때도, 또 한국 원룸에 살 때도 저는 저를 위해 꾸미고 살아갑니다. 나를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렵게 시작했던 발리 삶은 지독한 공포기도 했고 슬픔이기도 했고... 막막함 그 자체 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검은 어둠이 가득한 꾸따비치에서 홀로 잠을 청하던 쓸쓸하고 무서웠던 순간을... 그래도 잘 버텨 한국에 오지 않았나. 하며 다독입니다.나약한 마음에 굴하지 아니하고 살았다 보니 강단이 생겼고 발리에서의 모든 경험은 제 인생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한국으로 돌아오니 역시 바쁘고 치열합니다. 즐기면서 살아가세요. 라는 말은 절대 못하겠습니다. 3년전과 달리 저는 미친듯 일하지 않습니다. 죽으려고 일하지 마십시오. 단, 하나뿐인 당신은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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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거에요! 응원합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일 오겠죠~^^~

아! 제가 너무나 멋진 스티미언을 알게 되었군요!
가슴이 저려옵니다.
꾸따비치의 무서운 밤.....언젠가 그려보세요.

언젠가 마음이 평온해지면 꾸따비치도 그려볼게요 ^^

말재주가 별로인지라 그냥 박수로 대신합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