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불교를 만나서 강연'을 했다. 청년 때에도 안 했던 것이다. 떨리고 긴장되었다. 잘 해야 될 거 같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강연원고를 적으면서 이미 떨쳐 버리고 진솔한 내 본모습을 보여주자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떨렸다. 회사에서 영어로 PT할 때도 안떨렸는데 오늘은 한글로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떨렸다.
교도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빌린 만큼 유익한 강연을 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소 보산님 설법 아니고 일반교도들의 강연 시간에 대해 조금 지루해 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는 설법만 중요시 했다. 그리고 아래 법문에서도 강연은 대중에게 유익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듣는 사람이 하나라도 건져가려고 노력하면 뭐라도 유익한 것은 발견할 수 있지만...
<대종경 제3 수행품 25장 >
대종사 예회에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법설이나 강연을 들을 때에는 반드시 큰 보화나 얻을 듯이 정신을 가누고 들어야 할 것이니, 법사(法師)나 강사(講師)가 아무리 유익한 말을 한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요령을 잡지 못하고 범연히 듣는다면 그 말이 다 실지 효과를 얻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무슨 말을 듣든지 내 공부와 내 경계에 대조하여 온전한 정신으로 마음에 새겨 듣는다면 그 얻음이 많아지는 동시에 실지 행사에 자연 반조가 되어 예회의 공덕이 더욱 드러나게 되리라.]
내 강연의 결론은 '완벽주의에 빠지지 말고, 잠깐 원불교 공부를 놓더라도 언제든 다시 잡아라! 그러면 강급 진급 번복은 하겠지만 점진적으로 우상향 한다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강연 후에는 '내가 잘 했나', '에이 좀만 더 연습할 걸' 과 같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물론 엄청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마침 오늘은 식당번이라 식사준비를 마치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어른들께서 '강연 너무 유익했어요', '목소리도 성우 같았어요', '손 한 번 잡아보자' 라고 하셨다. 순간 기존의 걱정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팔, 어깨, 목덜미에서 전율이 흘렀다. '걱정하는 90%는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책이 맞긴 맞나 봅니다.
보산 김제원 교무님은 강평에서 사람은 자기가 남 좋은 일 하고 상대가 좋아하는것을 보고도 행복감을 느끼지만 스스로 이쁜일 하고 내 내면에서 스스로 올라오는 성취감과 맑고 밝고 바름에 합일할때 느끼는 행복이 끝내준다네 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사람의 본성이라고...어느 순간 행복해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원불교 관련해서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 참조하시면 됩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http://won.or.kr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보이는듯요
잘보았습니다
감사해요^^잘봐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