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할 말이 많은 상태로 떠돈다 출발하라는 파란 신호등을 흔든다 단속구역이라는 표지판을 흔든다 구인광고 전단을 흔든다 일요일 오전 아홉시에 교회에 나오라는 전도지를 흔든다 공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운동장은 비어있다 모래바람이 날린다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많이 남은 척하지 않는다 아니 할 말이 있었던 것을 까먹었다 입을 다문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 속에 바람이 들어간다 꽃가루가 들어갔다 먼지도 들어갔다 기침 소리를 듣는다 그는 다시 입을 꼭 다물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던 말들을 상실한 채 계속해서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