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천 냥 빚 진다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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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무 말이나 막 내뱉고 다녔다.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흘려보냈다. 철이 들어 나아졌지만, 20대 초반까진 정말 겸양이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푼수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진 경우가 많았다. 생각나는 일화 하나.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 그런 나를 재밌어 하셨다. 생활기록부에 ‘유모어’ 감각이 있다고 썼을 정도다. 물론 사실과는 다르지만. 학년말 쯤 개인 면담을 했는데, 나한테만 특별히 1시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수업도 빠지고 그분과 면담을 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마구 이야기를 풀어댔다. 그러다가 얘기가 깊어지고 심각한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뭐 그런 얘기가 나온 모양이다.


내 의견을 물었다. 신중히 답했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고 풀었다. “우릴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무슨 자격으로 우릴 가르칠까요? 선생님들이 과연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일까요? 고만고만한 사람들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한테 교육을 받으면 우리도 고만고만해지는 것 아닐까요?” 미화해서 말했지만, 저런 요지의 말을 했다.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당시의 난 자뻑에 빠졌다. ‘역시 내가 생각할 화두를 던졌구나. 교육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어. 역시 난 빼어난 학생이야’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진다. 쪽팔려 미칠 것만 같다. 당시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화를 참는 것이었다. 당시엔 체벌이 일상이었고, 특이한 사립학교였던 탓에 가혹행위도 많았다. 군대에서도 안해본 머리박기를 고등학교 때 많이도 했다. 화가 나면 꼭지가 돌아버리는 분이었는데, 당시 표정은 가까스로 폭발을 참는 인내에 가까웠을꺼다. 눈치 없고 어렸던 나는 대단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여겨 의기양양했다. 사실은 쳐맞을 뻔 했는데 말이다.


어쩌면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분의 인생을 뭉개는 발언이었을지 모른다. ‘교사’란 존중받아 마땅한 직업이다. 난 그걸 한마디 말로 무시했다. 내겐 교사와 교육제도를 깔아뭉갤 자격이 없다. 혹시 난 무개념 언행으로 여럿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온 건 아닐까 반성해본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기보다 반대가 훨씬 쉽다. 생각 없이 뱉은 한마디는 천 냥 빚을 넘어 핵폭탄이 되기도 한다.


말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말이 그저 말일 뿐이라면, 국민이 개돼지라는 발언에 분노할 필요도 없고, 암호화폐는 붕괴할거라고 했던 호언에 열낼 이유도 없다. 예는 무수히 많다. 실언 한마디에 직장과 사회적 지위를 잃고 추락한 사람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혀는 칼이 되어 스스로의 목을 벨 수 있다. 입이 재앙의 문이 되어 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


내가 생각 없이 던진 돌에 죽어나간 사람이 있는 건 아닐지. 내 혀가 칼이 되어 마구 베어낸 사람이 있는건 아닌지, 혹시 내가 뱉은 말이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지는 않을지 생각해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터넷 세상은 더 무섭다. 익명 뒤에 숨어서 돌을 던진다. 돌을 던진 사람의 위치는 노출되지도 않는다. 상처 받는 피해자에게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악플러 중 자기가 악플러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중엔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성과 자각이 없으면 스스로도 모른 채 악플러가 된다. 악플러와 키보드 워리어는 이제 그 생활을 청산하고 스팀잇에 정착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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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반성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반성하며 가즈앗!!

멋지십니다. ㅋㅋㅋ 자기는 그럴 리 없다 는 생각보다 반성이 1000배 멋지고 좋은일이지요~~^^

"유모어"라고 쓸 정도면 좀 많이 옛날 분 같으신데 그래도 화를 참아내셨네요. 그런데 사실 자격이 없는 교사들이 적지 않은건 사실같아요.

넵 맞아요. 교사 자격 없는 분들.. 돈만 밝히고 학생을 수단으로 보는 교사들 사실 많죠ㅋㅋ 연세가 좀 있으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스승이었네요. ㅋㅋㅋ 방문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정말 말한마디 한마디 조심하고 살아야하는거 같습니다.
저도 헛소리를 많이해서 분위기 싸해진적이 많은데...ㅎㅎ

요즘은 최대한 입 다물고 있을려고 노력합니다.. 생각해서 내뱉을려고 노력도하고 ㅜㅜ

넵.. 말하기전에 최소 2번은 생각해야하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없이 말을 뱉으면 거의 대부분 말실수로 이어지죠.. 나이가 들면 과묵해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저도장난이심해 이런적이 많은듯요
지금은회사에 입다물고사는중.. 아예 말안하면 중간은 갈듯해서요

맞아요ㅋㅋ 말이 많으면 사람이 약점까지 다 내보이게 되더라고요..
말 없이 조용히 있으면 못해도 중간은 가는 것 같습니다.. 때론 중간이상 가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이 사람 소시오패스 아냐?"라는 말을 들을까봐 이런 글 못 적지만... 저거보다 더 심한 말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고오오오스란히 그대로 받으며 사람됐네요

역시 건방떠는 사람은 좀 깨져야되요 그래야 겸손해지죠 ㅠㅠ
김연아가 나이가 어리지만 롱런하는건 어려서부텨 겸손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아아 제가 방금 @admljy19님이 쓰신 글에 감탄하며 답글을 달았는데.. 거의 실시간으로 댓글 교환이 이뤄졌네요. 신기방기합니다. ㅋㅋ 정말로.. 말은 그대로 부메랑처럼 자신한테 돌아오는 것 같아요ㅠ 자나깨나 입방정 조심 말조심 입니다.

저도 그랬네요.. 깨지다보니 사람이 됐던ㅠ ㅋㅋ 과거에 어떤 말씀들을 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저도 어린시절 철없이 떠들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정말 부끄럽고 이불킥을 하고싶어져요. 말하기 전에 한번씩만 생각해도 인생의 길이 순탄해지는 길이 아닐까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불킥감이 수백개는 되는것 같습니다.ㅜㅜ 넵 말하기전에 한번만 생각해도 말실수를 줄일수 있죠.. 그게 잘 안되긴 하지만요..ㅎㅎ 방문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잘 몰랐는데 사회 생활을 해보니.... 진짜 너무너무나도 무서웠던게 혀끝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굉장히 조심하는 편입니다..... ㅠㅠ

그렇죠.. 말이 많아질수록 제 바닥만 드러내게 되더군요.. 그냥 조용히 중가만 가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

나이가 들수록 말은 더욱 조심해야 된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잘 못하면 '나이살 X먹고' 란 말을 들으니까요.
항상 조심한다고 하지만 내뱉고 아차 할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한다고 나쁠것은 없는거 같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말을 줄여야함을 실감해요. 한마디를 해도 몇번 생각하고 무게감 있는 말을 던져야 할 것 같아요. 아무 생각없이 뱉었다가 두고두고 이불킥을 유발하거든요ㅜ 댓글 감사드립니다. ㅎㅎ

세치혀는 능히 사람을 죽일수 있다는 옛말이 생각나네요...
간만에 되새겨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나깨나 입조심 혀조심 입니다. ㅎㅎ
방문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는 누구에게 혀라는 칼로 상처를 준 적이 없는가 되돌아보게 되는 글이네요... 항상 입조심, 말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전 좀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요ㅜ 지금이라도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스팀은 그래도 다른곳보다는 많이 좋은곳 같습니다. ^^

넵ㅋㅋ 칭찬을 안할수가 없는 스팀잇이죠~

오늘도 이렇게 반성하고 갑니다...

항상 방문해주시고 보팅과 팔로우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

정말 생각없이 뱉은 말인데, 누군가는 큰 상처를 입기도 하고 그렇죠..진짜 그래도 스팀잇에는 악플러들 보다 좋은 면을 봐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저는 다른 에스엔에스나 블로그보다는 스팀잇 활동이 제일 마음이 편해요 ㅎㅎ

맞습니다. 스팀잇엔 악플러가 거의 없고 있어도 아무 힘을 쓰지 못하니까요. ㅎㅎ 스팀잇에서 바른말 고운말 연습하도록 해야겠습니다. ^^

어제 글을 읽었는데 댓글을 몇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었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말 한마디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오오 그렇게까지.. 무척 신중하시군요! ㅎㅎㅎ
소중한 댓글을 위해 고심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저는 스팀잇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sns같은 것들보다 여기는 악플이라든지 그런건 잘 안보여서 마음도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ㅎㅎ 다른 sns같은 경우에는 혹시라도 악플달릴까 조마조마하면서 글올리고 나중에는 결국 안하게 되더라구요 ㅜ

그렇죠. 곳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클린하고 좋은 곳 같습니다. 아주아주 간혹 분탕질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즉시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게 스팀잇입니다. ㅎㅎ 방문과 댓글 감사드려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말이 지닌 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잘 보게 된다면
조심해야 함을 머리로는 아는데도 불구하고
잘 하고 있는지 불안을 느끼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잘 보고 가요

맞습니다.. 말은 듣는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죠.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