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이틀간 크립토 스프링스 회의(Crypto Springs Conference)가 열렸다. 회의 첫날, 공동 주최자인 멜템 드미러스는 수박 마르가리타 칵테일을 손에 들고 연단에 올라 구호를 외쳤다.
“아무것도 분산화되지 않았다!”
청중 사이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수영장에서 파티 형식으로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암호화폐 업계 베테랑들이 외치기에 선뜻 어울리는 구호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 자체가 우후죽순처럼 개최되는 여타 블록체인 회의들과는 달리, 블록체인의 단점과 문제점에 관해 성역 없는 토론을 자유롭게 나누고자 열린 회의였다.
“분산화는 신화가 아닙니다. 아직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테나 캐피털(Athena Capital)의 창립자이자 자산관리기업 코인셰어(CoinShares)의 최고전략책임자이기도 한 드미러스가 계속해서 청중들에게 말했다. 드미러스 외에도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은 더 있었다. 도지코인(Dogecoin)의 창립자 잭슨 팔머는 발표 중에 비트코인 코어가 최근 비트코인 코드에서 발견된 버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밀리에 채굴자들과 협력하는 등 “중앙집권적 방식”을 취했다고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팔머는 이어 비트코인 코어 코드 베이스를 누가 관리하는가의 문제에서도 “투명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비트코인 생태계 전체가 프로그래밍 언어 면에서나 구현 면에서 다양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매시장 진입이 아직도 요원한 이유를 묻는 코인데스크의 질문에 팔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암호화폐 업계 사람들 상당수는 비트코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꺼린다. 비트코인이 스타트업이었다면 진작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품에 필요한 매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인 매트 코랄로는 비트코인을 다양하게 이용하려는 시도가 성공한다 해도 네트워크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양의 작업이 추가로 필요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갈라져 이용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실행하기 시작하면, 노드는 양쪽을 다 실행해야 한다. 언어가 다양해지면 그에 따른 행동 양상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부분을 수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 버그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개발자와 커뮤니티가 서로 끊임없이 검토하고 보완해야
크립토 스프링스 회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암호화폐의 대부 격인 비트코인에 더 많은 상호 검토(peer review)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트코인을 위해 풀타임으로 일할 인재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팔머가 코인데스크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코랄로도 이에 동의했다. 코랄로는 비트코인 코드를 검토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원하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지만, 오히려 부족한 건 비트코인에 전념할 숙련된 엔지니어라는 견해를 밝혔다. 비트코인 코드에 여러 가지 변화를 접목하는 권한과 관련하여, 코랄로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중차대한 사안에 마지막으로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지닌 이들은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뒤에야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흥미가 덜하기 마련이다.”
코랄로는 이어 지난달 발생한 비트코인 버그 사태와 관련해서 비트코인 코어가 기본적으로 소수의 전담 인원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이끄는 구조가 아니라, 실제 검토를 맡는 이들이 각각 더 큰 책임을 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커뮤니티에 숙련된 검토자가 부족하면 오픈소스 관리에는 본질적으로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토시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인 알레나 브라노바는 비트코인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더 많이 육성하기 위해 온라인 과정을 세우고 이들에게 지급할 보조금을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다음번 목표라고 밝혔다. 브라노바는 최근 비영리 B 재단 설립을 위해 암호지갑 제조사인 트레조(Trezor)를 떠났다.
“비트코인을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하게 사용한다고 버그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포크가 될 때 버그가 전달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사용 방식을 원활하게 보장하기 위해 각기 다른 특정 버그에 현상금을 걸거나 상호 검토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코드 이해도가 높은 개발자를 많이 육성하는 방법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기대와 우려
크립토 스프링스 회의 첫날, 암호화폐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회의 둘째 날에는 분산화와 채굴, 그리고 특히 비트코인의 기본적인 검열 저항성에 초점을 맞춰 코랄로가 발표를 했다. 코랄로는 비트코인이 1조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커질지는 불확실해 보인다고 코인데스크에 전했다.
크립토 스프링스의 공동 주최자이자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ening Network) 기술을 바탕으로 확장성 솔루션을 모색하는 스타트업 라이트닝랩스(Lightning Labs)의 CEO인 엘리자베스 스타크는 현존하는 암호 기업들이 암호 생태계에 오히려 가장 큰 위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개발자이자 암호지갑 잽(Zap)을 만든 잭 말러스는 기업을 배제하지 않는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말러스는 현 시장이 변동성이 크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하며, 라이트닝 기반 기관 거래가 가격예시(price discovery) 기능 및 전체적 유동성을 향상할 수 있다고 코인데스크에 말했다.
또한, 내년에 비트코인이 주류 소매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금융 상품이 출시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말러스는 이어 현재 초기 단계에 있는 선물계약 시장 덕분에 암호 업계가 금융에 따른 리스크를 전문 투기 세력에 넘길 수 있었으며(농부가 상인에게 수확한 작물에 대한 권리를 미리 팔아서 리스크를 함께 넘겼던 것과 유사하다), 그 결과 소액 투자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선물 시장 덕분에 채굴 과정이 분산화될 것이다.”
최초 백서가 발행된 지 거의 10년이 지난 현재, 비트코인은 사실상 임계 질량에 거의 도달한 것 같다며, 말러스는 이렇게 말했다.
“비트코인이 제대로 작동해 1조 달러 규모의 자산으로 성장하거나, 혹은 작동을 멈추고 제로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