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질 드 레 (Gilles de Laval, sire de Rais (ou de Retz))
1404년 가을 ~ 1440년 10월 26일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 한 때 잔 다르크의 전우였다.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라발(Gilles de Montmorency-Laval)이다.
그는 한 때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잔 다르크와 승리로 이끈 구국의 영웅이었으나,
훗날 악마의 종으로 타락한 티포쥬성의 살인마로 전락한다.
그에게 희생된 무고한 아동은 약 80~200명정도로 추정되나 최대 많게는 800명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1440년 9월 15일 체포되었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범행은 샤를페로의 동화 푸른수염의 기초가 되었다.
- 푸른수염이 된 배경.
처음 질드레는 잔 다르크를 와 함께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받쳐 싸우던 군인이었다.
남작의 직위도 가지고 있는 그가 살인귀가 된 배경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여러가지 설로 나뉜다.
추측. 질드레는 잔다르크를 사랑하였다.
질드레는 프랑스 귀족으로 군인이었을 당시 잔 다르크의 전우이며 함께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의 잔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으나,
잔 다르크를 흠모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잔의 힘이 막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프랑스의 왕 샤를 7세는
잔다르크를 정치적으로 모략하여 마녀로 몰아(남장이나 여장은 당시 종교적인 죄였다고한다.)
1431년 화형으로 죄를 다스렸다.
이런 일을 겪으며 잔다르크를 사랑했던 질드레는 모든 것을 놓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되고,
그 후 흑마술에 빠지면서 잔인한 범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추측 둘. 오랜 시간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질드레는 명문 라바르 가문의 수장인 아버지와, 프랑스 왕국의 최고 귀족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프랑스 최고 갑부라 불리우던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모님은 그가 어린시절 일찍 사망하여 외조부의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외조부는 다소 남색 기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중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는 1428년 샤를 7세의 근거지인 오를레앙이 포위당할 정도로
전쟁에서 밀리고 있었으나 잔 다르크를 만나면서 승승장구하며 수많은 피를 보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잔다르크에게 크게 감동받아 그녀를 대천사의 헌신이라고 까지 생각하였고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런 그에게 잔 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게 되자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되는데, 일부에선 질드레에게 상실감은 핑계였을 뿐, 살인의 광기를 맛본 그가
전장을 떠나서 살인의 광기를 억제우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 악마의 탄생.
그가 악마가 된 배경이 무엇이 진짜이건 간에, 그는 잔 다르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잇고,
그의 인생에서 잔 다르크는 없앴을 수 없는 한 부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가 잔 다르크에 죽음앞에서 신을 부정하고 흑마술과 연금술에 빠진 것은
그에게 상실감을 채워주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그의 영지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사라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고,
모든 마을 사람들은 질드레의 성을 가리키며 악마가 살고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지만,
그는 구국의 영웅이었고, 육군원수이며 명문가의 남작이라는 점 때문에 그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이루워지지 못했다.
질드레가 법정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의 보호자였던 외조부가 사망한 해에 첫 살인을 저질렀고 마쉬쿨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살인을 시작했다고.
그는 어린 소년들을 평민이나 길거리의 고아를 데려오기도 하였고 소년기사단을 만들어 모집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닮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소년들을 선호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성으로 미소년들을 납치하여 그 아이들에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호강을 누리게 해준 후,
좋은 옷을 입히고 산해진미와 술을 먹인 뒤, 소년을 지하로 끌고 내려가
고문하고 죽였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잔인했다고 한다.
(질드레의 대저택)
우선 그는 그 소년들에게 여장을 시킨 후 강간을 하고 아주 서서히 죽였는데,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빌리자면
그는 소년을 납치하여 고문, 강간등과 함께 잔인하게 살해한 후
시체의 입에 자신의 성기를 넣거나 허벅지에 구멍을 내어 자위를 하였으며,
시신을 토막내고 내장을 빼내어 그 냄새를 즐기는 행동 또한 서슴지 않았다.
또한 소년들의 시체에서 잘라낸 머리를 벽에 걸어놓고 소년들의 외모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공범자이자 '푸아투'로 알려진 엔티엔 코리요는 질이 소년들을 갈고리에 매달은 채로 강간을 했다고 증언하였고
소년들의 시체에서 나온 가죽으로 만든 종이에 그 피를 이용하여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 내용은 사탄에게 영혼을 바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 악마의 종말.
질드레가 사는 성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때문에 쉽게 조사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점점 많은 수의 소년들과 귀족 자제까지 사라지자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그들이 백작의 성을 급습했을 당시 질드레는 질펀하게 취해있었는데, 그의 눈엔 광기가 서려있었다고 한다.
그의 성을 돌아보던 사람들은 수많은 고문기구와 토막난 시체들, 전시용으로 걸린 소년들의 목과 흑마술진 등을 보았고
조사를 나온 몇몇은 그 광경에 충격을 받고 쓰러지고 기절하거나 구토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시신은 약 300구, 갈기갈기 찢기고 고문기구에 눌린 시체들을 합하면 수는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결국 악마숭배와 남색에 빠져 자신의 정신을 온전하게 관리하지 못한 질드레는 1440년 10월 25일
소아살해, 남색, 흑마술, 신성모독, 이단 등의 유죄판결을 받고 전재산을 몰수당하는 한편, 교수형과 화형에 처해졌다.
이에 대한 이면으로 젊은 나이에 정권의 최정상부에 서게 된 질드레를 시기한 세력들이 생겨나고
그를 정치적으로 모함에 빠트리기위해 모두 조작된 사실로 그를 죽음에 몰게 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앞서 이야기한 부분에 확실한 증거들이 존재하지 않는 내용이기에 아직까지도
질드레가 수 많은 남아들의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샤를 페로에 의해 [푸른수염]이라는 동화로 재구성되었고,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의 마녀 이미지 또한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