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주는 마음 받는 마음

in #kr7 years ago

/선물, 주는 마음 받는 마음

어느 날 저녁 봄도 끝나가고 해서 친구들끼리 조촐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 친구가 늦게 가게 문을 밀며 들어섰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이죠.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지금이 몇 신줄 아느냐, 이런저런 타박에도 그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후래자삼배' 벌칙에 따라 세 잔의 술이 건네지고, 연이어 술잔이 오고 가는 중에도 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뭐가 좋아서 입을 귀에 걸고 그리 웃는 거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복권이라도 맞았냐?"

그러자 그 친구는 가방 속에서 포장지로 곱게 쌓인 무언가를 꺼내며 보여줍니다. 포장지를 푸르자 낡은 책이 나왔습니다. 그 친구가 말합니다.

"내가 오늘 아주 귀한 것을 선물로 받았거든."

이야기인 즉, 지인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손때가 묻은 이 책이더랍니다. 지나간 세월과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더군요. 아마도 그 지인이 무척 아끼던 책이었나 봅니다.

친구들끼리 책을 돌려보고 있을 때 구석에 있던 친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새 책도 아니고 누가 보던 책을 선물 받은 게 뭐가 그리도 좋으냐? 선물을 줄려면 새것으로 제대로 줘야지. 이게 뭐야."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합니다.

"너는 선물을 받을 자세가 안돼 있어. 탈 벤-샤하르의《해피어》에 보면 이런 글이 있어. '친구로부터 또는 자연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려면 먼저 우리가 그 선물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병에 뚜껑이 닫혀 있으면 물을 넣을 수 없다. 뚜껑이 닫힌 병에 물을 부으면 옆으로 다 흘러버리고 병은 채워지지 않는다.' 마음을 열어. 그럼 네 선물이 아니더라도 선물이 건네주는 기쁨은 느낄 수 있을 거야."

탈 벤-샤하르의 말처럼 선물을 받으려면 선물을 받는 마음 자세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물이 갖고 있는 깊은 의미를 깨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파울로 코엘료는《11분》에서 말합니다.

"내 땀, 집중력, 의지가 묻어 있어요. 이거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갖고 싶어할 물건을 사주는 대신, 나에게, 진짜 나에게 속하는 물건을 당신께 드리는 거예요. 선물이죠. 나와 마주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시, 그 사람 가까이에 있는 것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방식이에요. 당신은 이제 내가 당신에게 자유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넘겨준 나 자신의 일부를 소유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친구는 정말 선물을 준 사람으로부터 한낱 물건이 아니라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과 그 사람 자체를 받은 것입니다. 그 친구의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제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좋으련만. 아니지요. 제가 먼저 그런 선물을 해 봐야겠네요. 대니얼 고틀립의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내가 너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가슴속에 차오르는 느낌 같은 것이다. 눈물이 어리는 슬픔과 사랑, 말이 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깊은 감정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춤사위 같은 것 말이다.[대니얼 고틀립(이문재, 김명희 공역),《샘에게 보내는 편지》, 문학동네, 2007,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