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대율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생화폐론으로 본 지역예대율과 지역수지의 연관성

in #kr7 years ago (edited)

오늘은 지난 사회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소소하게 발표한 지역 예대율의 의미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역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 없이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역 예대율은 지역수지를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지역 예대율을 지역의 자금 유출입의 척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경기도의 예금은행 예대율은 2016년 기준 약 165%입니다. 여기서 예대율이란 대출/예금의 비율입니다. 따라서 예금은행 예대율이 165%라는 것은 예금은행의 대출이 예금보다 65%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기존의 관점에 따르면 이것은 경기도에게 유리한 현상입니다. 기존의 관점에 따르면 은행은 자금중개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모집해서 대출을 해주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의 높은 예대율은 다른 지역에서 예금을 흡수해서 경기도 내에서 모집한 예금 이상의 대출을 행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출은 가계의 생활자금으로도 사용되어 소비를 진작하고 기업의 사업자급으로도 사용되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 기대됩니다.

지역금융을 연구한 논자들 대부분은 지역 예대율을 해석할 때 이런 관점을 취합니다. 한 지역의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그 지역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편 아시다시피 금융기관에는 예금은행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기관에는 저축은행, 상호금고, 신용협동조합뿐만 아니라 투자회사, 보험회사, 신용카드 회사 등의 비은행금융기관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보통의 경우 이들의 여수신 비율을 고려해서 지역의 자금 유출입의 정도를 측정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금은행은 다른 비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신기반으로 여신을 행하는 자금중개기관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예금은행은 다른 비은행금융기관에 비해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신(예금)기반 없이도 여신(대출)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와 역사적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그것은 차치해두겠습니다. 아무튼 은행이 예금 없이도 대출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일견 상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사실이 그런데. 실제로 은행은 사전에 예금이나 예금의 일정비율로 마련해야 할 준비금 없이도 대출을 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쉽게 말해 이들이 중앙은행에 가장 가까이 있는 금융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은행의 가장 특별하고 멋진(!) 점은 허공에서(ex nihilo) 화폐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먼저 은행이 다른 기업이나 가계에게 백만원의 대출을 행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대출과 동시에 대출을 요청한 가계 혹은 기업의 은행계좌에 백만원의 예금이 창출됩니다. 짜잔! 이렇게 해서 화폐가 창조되었습니다. 참 쉽죠?

너무 간단하다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예금의 일정비율을 지준금으로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은행은 예금인출을 대비해서 사전에 현금을 확보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여기서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사후에(ex-post)'에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은행이 신용할만한 고객이 있다면 은행은 사전에 지준금이나 현금이 없어도 고객에게 대출을 행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후적으로 은행은 은행 간 거래를 통해서 돈을 빌리거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지준금 및 현금을 마련합니다. 때로는 중앙은행이 은행이 요청하기도 전에 앞장서서 은행에게 필요한 지준금과 현금을 공급해주기도 합니다. 중앙은행은 은행이 은행 간 결제에 필요한 지준금과 은행이 예금고객의 인출요구에 필요로 한 지준금 및 현금을 공급하길 거절할 명분이 없습니다. 만일 중앙은행이 그런다면 은행은 파산할 위험이 커집니다. 그리고 그 경우 위험성을 인지한 예금자들은 은행으로 몰려가 현금을 인출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뱅크런이 일어날테고 은행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도 빚을 독촉하는 혼란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를 방치하면 경제 전체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중앙은행은 왠만하면 은행이 필요로 하는 지준금과 현금을 공급해줍니다.

앞서 말한 은행이 화폐를 창조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이론을 바로 '내생화폐론(endogenous money theory)'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생화폐라 함은 화폐가 중앙은행이 멋대로 헬리콥터에서 현금을 뿌리듯이(이 비유는 멘큐의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합니다) 그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외생변수가 아니라 철저히 경제주체들의 수요에 의해 그 공급이 결정되는 내생변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방금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은행이 대출을 해주는 이유는 애초에 대출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행은 이러한 수요자 중에서 신용할만한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고 그 결과 예금화폐가 창출됩니다. 사실 경제 전체의 통화량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대출을 통해 창출된 예금화폐이고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지준금이나 현금은 이들 예금은행을 '백업'하는 용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 다시 지역의 예대율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금융기관 전체의 예대율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철저히 예금은행의 예대율입니다. 미리 앞질러 말하자면 이 예금은행 예대율이 지역수지를 측정하는 유용한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내생화폐론(간단하게 말해 은행이 대출을 통해 예금화폐를 창조한다는 이론)의 관점에 따르면 지역 예대율은 기존과 정 반대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다시 기억을 복기하자면 은행을 자금중개기관으로 간주하는 기존 관점에 따르면 경기도 지역의 은행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경기도 지점의 은행이 다른 지역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모집해서 자기 지역에 대출을 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초과대출을 통해 경기도의 가계는 더 많은 생활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기업은 더 많은 사업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경기도의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경기도에서 자금중개가 활발히 일어나 지역경제 발전에 유리하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보다시피 은행이 대출을 통해 화폐를 창조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역 예대율은 정 반대로 해석되는 것이 옳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의 예금은행 예대율(대출/예금)이 높다는 것은 경기도에서 이뤄진 대출에 비해 예금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경기도 지점 은행들이 대출을 통해 창조한 예금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 유출 경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역외소비입니다. 다시 말해 경기도에 있는 소비자가 인터넷 쇼핑을 통해 서울에 소재한 인터넷 쇼핑몰에게 대금을 지불해서 옷을 샀다고 생각합시다. 이 경우 경기도 내의 예금이 서울로 유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요소소득의 이전입니다. 요소소득이란 생산요소(자본과 노동)에게 지급된 소득을 의미합니다. 기업이 얻은 영업이익과 노동자가 얻은 임금이 대표적이죠.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일하지만 실제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경기도 내에서 창출된 예금은 결국 서울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기도에 있는 자동차 판매지점에서 발생한 수입이 서울에 있는 본사로 송금된다고 생각합시다. 이 경우에도 경기도 내 예금이 서울로 유출됩니다.

마지막은 역외 자산구매입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 있는 가계가 대출을 받아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고 합시다. 이 경우에도 경기도에서 창출되거나 유입된 예금이 서울로 빠져 나갑니다.

지역의 예금유출이 이뤄질 수 있는 각각의 경로들은 국제수지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역외소비는 무역수지의 적자를 낳습니다. 두번째 요소소득의 유출은 경상수지의 적자를 낳습니다. 마지막 역외 자산구매는 자본수지에서의 적자를 낳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대출과 예금의 차이는 지역수지 흑자(예금>대출) 혹은 적자(대출>예금)를 측정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지표가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한계는 있습니다. 예컨대 경기도 내 가계가 자신의 은행예금을 경기도 내의 저축은행의 저축성 예금으로 옮긴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경기도 내 예금은행의 예금이 감소하면서 대출/예금의 비율인 예대율은 높아지겠지만 실제로는 경기도 밖으로 자금이 유출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경기도 예대율은 경기도의 지역수지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안에는 외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수지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역 간 소비, 소득이전, 자본이전의 결제가 궁극적으로 예금은행 예금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 은행예금 자체가 대출을 통해 창출되었다고 본다면 예대율 혹은 대출과 예금 사이의 격차는 지역수지를 매우 훌륭하게 반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역 예대율을 지역수지의 지표로 생각한다면, 더 나아가 이를 역외소비, 소득이전, 자본이전과 연관지어서 생각하면 지자체에게 유용한 정책판단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이전으로 치자면 경기도는 소득이 유입되는 지역입니다. 예컨대 경기도에 있는 기업의 본사로 다른 지역의 지점에서 발생한 영업잉여가 유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이 다른 지역에 출퇴근하고 일하면서 얻은 임금의 유입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소득의 유출입 여부는 지역 총생산과 지역 총소득의 차이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예대율은 전국 1위입니다.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대출에 비해 예금이 낮다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대출을 통해 창출되거나 외부에서 유입된 예금이 다시 외부로 유출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소득유입이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경기도가 심각한 지역수지 적자를 겪고 있다는 것은 다른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첫번째 경기도에서 심각한 소비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경기도의 가계가 경기도에서 얻은 소득으로 다른 지역의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한다고 할 수 있겠죠.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될수록 이러한 소비유출의 가능성은 더더욱 커집니다. 두번째 가능성은 바로 자산구매입니다. 경기도 지역의 기업과 가계가 서울의 부동산이나 국채를 구입한다면 이는 결국 예금의 유출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지역 예대율은 지역의 전체적인 수지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지역 간 자금흐름을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지역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역외소비, 소득유출입, 자산구매가 있다는 것을 떠올립시다. 이 중에서 지역의 소득 유출입은 측정하기 쉽습니다. 지역의 국민소득계정에 대한 통계측정 방법이 발전한 덕분에 오늘날 지역 간 소득 유출입은 지역 총생산과 지역 총소득의 차이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충청도의 지역 내 생산활동을 통해 창출된 소득이 실제 충청도 지역 내 거주자에게 수령된 소득보다 적다면 충청도는 소득의 유출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소비의 유출입도 상대적으로 측정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거래기록을 보면 얼추 지역 간 소비 유출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산구매를 통한 자금유출입이 어떻게 이뤄지냐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지역 예대율을 국제수지에 비견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역수지 계정으로 생각하고, 나머지 역외소비와 소득 유출입을 적절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역의 자본수지(자본유출입)을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에게 유용한 판단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강남지역에 부동산 버블이 심각해질 때 우리는 어느 지역에서 가장 많은 투기자금이 유입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지역에서 이러한 투기자금 유출로 인해 자금을 지역 내에서 생산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역수지 계정을 통계적으로 잘 정비한다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자산시장 과열규제와 관련해서 더 많은 정보와 정책수단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 예대율을 통해 지역수지 계정을 일관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지역 내 자금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내의 자금순환을 이뤄내고 싶어하는 지방 지자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수지를 일관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어느 항목에서 자금의 유출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지역의 자금유출이 소비의 유출 때문인지, 소득의 유출 때문이지, 자본의 유출 때문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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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에서 보기 아까운 고퀄리티 글! 감사합니다ㅎㅎ

변호사님의 리스팀 감사합니다^^

평소에 써 주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팔로우와 보팅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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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은 아직 남겨 두고 있지만, 잘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 설득하고자 하는 주 논점은 실제로 우리가 만지는 돈은 은행이 빚을 내줄 때 생성되는 예금통화다, 통화는 압도적으로 대출의 형태로 창출된다는 것이라고 읽힙니다. 지역 예대율은 그 주 논점이 납득된 후에 다루어질 부차적 논점이거나 어쩌면 주 논점을 설득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대출이 생성될 때 돈이 창출된다." "예금취급기관은 없던 돈을 빚을 통해 새로 만드는 곳이지, 있던 돈을 단지 중개만 한다는 기존 이론은 틀렸다." 이 점이 주된 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다른 모든 형태의 통화를 바라보는 태도의 혁신에도 아주 중요하겠고요.

저한텐 너무 어려운 경제글이에요. 그렇지만 약간의 감은 잡을 수 있을거 같아요. 금융자본주의의 제일 큰 근간이자 문제점이 허공에 쌓아올린 성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대출로 인해 화폐가 창조되는것. 이제는 이것이 진짜 문제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나라나 다 이렇게 하니까요.
그래서 암호화폐도 코인을 막 만들어내잖아요. 허공에서. 하지만 어느 코인은 진짜 돈이 되고 어느 코인은 안되잖아요.
신기한 시대에 살고 있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