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6 (월)
■ 에베소서 3:1-13
[ 육체에 매이지 않고 ]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자 된 나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1). 바울 자신에 대한 소개는 감옥에 갇힌 자신을 동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니며, 이방인에 대한 복음사역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사명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사명에 대한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존귀함을 얻고 평안한 까닭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체포당하였습니다(행21:27-36). 그러나 감옥 안에서도 자신의 소명과 복음을 위한 사명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인하여 갇힌바 되어 감옥에 있지만 그곳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자 하는 사명에 불타있습니다(2-4). 특히,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헤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고 전합니다(2). 그는 과거 교회를 박해하던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추격하여 죽이는 사람이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종교적인 정죄의 행위에서 벗어나도록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직접 만나주시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심으로서 그가 가진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도록 하셨습니다. 서신을 통해 바울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경륜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전함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아 그 사명을 붙든 자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3). 그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려는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믿음으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동등하게 성결한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킨 것입니다(행26:17-18). 하지만, 그는 서신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증거만 할뿐, 그 비밀을 깨달아 알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3). 나의 이름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박사나 사장이나 목사나 장로와 같은 수식어가 아닌, 오직 "복음 전하는 자로 부름을 받는 나"라는 소개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게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4). '그것'이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소개하고 있는 서신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이와같은 서신을 통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그 은혜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임하였음을 선포합니다(7).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왔으며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함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6). 그것은 바랄 수 없는 자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 자격이 없는 자들이 사도바울과 같이 복음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 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나'라는 존재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우리"라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나'라는 기준이 아니라 항상 '우리'라는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골1:24). 자신을 복음의 도구로 온전히 내어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신 뜻이 성취되기를 소망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일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전의 유대인으로서의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새롭게 지음받은 바울입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의 피로 새생명을 얻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기도와 간구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내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통해 함께 세워져가는 역사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8).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고전15:9-10),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겸손한 자로 소개함으로서 존경을 얻고자 함이 아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빌3:7-8).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취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복음 앞에서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 중에 가장 작은 자"고 자신을 소개한 것은, 오직 자신은 감추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한 그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바울을 변화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8). 어떠한 죄인도 용서하며,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복음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다른세대와 사람의 아들들, 즉 구약시대과 이스라엘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었지만(5),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9). 사도바울은 환란을 당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기를 당부합니다(13). 때때로 복음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극심한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것을 실패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오히려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로합니다. 이는 그가 육체적으로는 매여있지만 믿음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고 있음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자유로운 것 같으나 실제로는 내 안에 있는 탐심으로 인해 속박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바울에게는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나의 작은 능력으로 인해 힘겨워하기 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어지고자 하는 복음의 능력을 따라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육체에 매이지 않는 사역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11).
- 나의 기도
하나님,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이방인을 위해 기꺼이 고난받으며 복음의 비밀을 이방인에게 드러내는 사역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몸된 교회를 위해 남은 고난도 내 육체에 채우고자하는 결연한 의지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