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비록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지금의 학적 성취도 없었으리라. 물론 내가 말하는 건 책으로 만난 선생 말고 직접 만나 배운 선생님들이다. 책에서 만나 배운 선생들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기회를 봐서 차차 소개하리라), 면전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가르침들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학부 4학년 때인 1992년으로 가 보자. 당시에도 나는 세상물정 모르면서 그저 호기심에 공부에 빠져 있던 애송이였고, 진로 고민이 심각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보면 일찍부터 취직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학과에서는 어떤 수꼴 선배(그는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서 무려 안기부에 취직하려다가 좀 늦게 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다)와 크게 싸운 상황이라 미학과 대학원에 가기 싫었고(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보면 그게 가장 컸다), 대안으로 남은 선택지는 철학과와 당시 막 생긴 서양고전학협동과정, 둘이었다. 그해 봄과 여름까지 그 둘을 놓고 정말 고민이 깊었다.
그 후로도 몇 년 더 지속되었지만 당시 가장 큰 고민은 한국에서 철학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서양의 방대한 문헌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다(이 점은 아마도 앞으로도 한참 더 사실일 것이며,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대가 끊길 것 같다). 게다가 욕심만 많고 게을러서 외국어 학습에 소홀했고, 이는 (지금도) 끝끝내 내 발목을 잡고 있다. 당시 내 관심은 니체에 집중되어 있었는데(내 학부 졸업 논문이 니체의 미학이었는데, 미학과 학부 논문으로 최초였다), 나는 니체의 '철학'과 '고전문헌학' 이력 사이에 내 진로 고민을 겹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을 하려면 니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곧바로 현대철학을 하자니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았고, 그렇다면 차라리 니체처럼 서양 고전을 마스터해서 맞장뜨면 해 볼 법도 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서양 학자보다 철학을 더 잘 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김진석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당시 인문대 학장을 맡은 소광희 선생님 몫 대학원 강의를 인하대에 재직 중이던 김진석 선생이 맡게 되었고, 나는 소심하게 청강을 하게 되었던 것. 선생의 따끈한 저서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을 읽은 건 오히려 나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에서는 데리다와 하이데거를 들었는데, 강의에 매료되어 당시까지 발표되었던 여러 글들("'탈'의 놀이"를 비롯한)을 찾아 읽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학자로 유명한 동국대 김종욱 교수(당시 박사과정)의 하이데거 발제에서 김진석 선생이 희랍어 액센트 오류를 지적한 장면은 아직도 인상이 생생하다. 김진석 선생이 철학에서 강조한 건 구체성이었다. 그 방법으로 알려준 건, 예를 통해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구체적 사례에 맞지 않으면, 그 생각은 문제가 있다는 것. 선생이 쓴 많은 글들은 구체적 상황에서 나온 것들이다. 한국에서는 참 드문 케이스였고, 그 후로도 아직까지는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다. 아, 한국에서 철학한다는 건 이런 식이겠구나,를 처음 몸소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현장에 밀착한 철학 저술의 예로 김상봉 선생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분의 경우 관념적인 면모가 강하고 당위가 현실을 압도하며, 수사학이 너무 강하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 계실 때 나를 강사로 초빙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가깝게 지낸 편이고, 인간적 매력도 많지만, 냉정해야 할 땐 냉정하게 평가하자.) 내가 김진석 선생의 강의를 몇 개 들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후 소광희 선생도 복귀하셨는데, 최소 1993년 1학기까지는 김진석 선생이 강의를 맡았던 것 같다. 그 수업에서 하이데거와 베르그손을 읽었는데, 내가 번역한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 (문학과지성사, 1996)는 이 강의에 기말과제로 제출한 것이었다(여름방학 끝나고 제출했다는 흑역사가 있다). 그 후 종종 만나 뵙고 말씀도 듣고 했는데, 2003년인가 이라크 전쟁 직전에 민예총 강의(이 무렵 나도 여기에서 강의했었고, 김상봉 선생과 함께 만나기도 했는데)에서 들은 니체 강의가 직접 들은 강의로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태수 선생님 이야기는 내가 서울대 동물자원학과에 들어갔던 1988년에 지금은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전헌상에게 처음 들었다(인문대 수석으로 입학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반1등을 한 번도 못했고, 2학년 때 나는 이과로 가서 석차 대결은 그걸로 끝이었다). 전헌상이 추천한 두 개의 명강의는, 나도 동의하는데, 이태수 선생과 종교학과 정진홍 선생님이었다. 1학기를 마친 후 고민 끝에 학교를 그만두고, 올림픽과 청문회라는 희대의 역사를 뚫고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나는 두 분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철학을 얘기하는 자리라서 생략하겠지만, 정진홍 선생은 대학원까지 포함해서 공식 비공식으로 다섯 과목은 들은 것 같다.) 이태수 선생은 해박한 어학 능력과 명료한 따지기 신공으로 학생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고전 라틴어를 이태수 선생께 배웠고(물론 제대로 공부했다는 건 아니다), 고전 희랍어도 조금 배웠으며(유재원 선생이 강의한 희랍어 마지막 두 강좌를 들은 뒤, 복습 삼아 배운 거였다), 많은 철학 텍스트를 강독으로 배웠다. 메논, 피지카 1, 2권, 메타피지카 Z, 시학 같은 텍스트를 읽을 때는 불꽃이 튀었다. 물론 다른 강연, 콜로키움, 세미나 등의 자리에서도 강의를 접할 수 있었다. 아무튼 기억할 수 없이 많이 들었다. (운이 좋게도 학생 시절 김남두 선생을 비롯해 권창은 선생, 남경희 선생 같은 분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내 고전학 지식의 대부분은 이분들에서 왔다.) 이태수 선생의 강의를 처음 듣던 시기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씀은, 대학원에 와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처음 읽었다는 고백이었다. 물론 이 말씀은 제대로 알아들어야만 한다. 이태수 선생의 신조는 텍스트는 그 텍스트를 쓴 사람의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고전문헌학 제대로 걸린 셈이다. 말하자면 [[순수이성비판]]은 칸트가 쓴 그 독일어로 읽어야 읽은 거라는 얘기. 물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베르그손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이걸 다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런데 이태수 선생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고전학자의 태도에 오래 매료되었었다. 내가 지금도 영여 번역본으로만 비영어 텍스트를 읽는 학자를 학자 취급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욱이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비해 영어 번역은 품질이 천차만별이어서 원어를 대조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가능한 한 원래 저자의 말을 따라가려는 태도(실천은 그렇지 못하더라도)만큼은 이태수 선생의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나는 참고문헌에 온통 영어 텍스트와 영어 번역 텍스트만 있는 경우 아예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아, 물론 비영어권 서양 철학 논문을 읽을 때). 물론 사례와 결합해서 생각하는 훈련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선생은 당신의 견해를 내놓는 데 너무나 신중했다.
지금 생각하면, 니체가 옳았다. 문헌학이 철학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이 있다. 구체성과 함께라면 문헌학을 뿌리치고 가는 게 가능할 것이다. 안쓰러운 장면들이 있다. 철학(내가 다른 예를 들 능력이 없으니) 논문을 쓰면서 자신이 쓰는 논문의 가치를 '독창성'에 둔다 할 때 과연 독창성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지도 않고(이런 검토가 문헌학과 관련된다) 독창적이라고 우기는 경우. 영어로 된 글만 (그것도 다도 아니고) 본 후, 세상에 없던/없는 생각이라고 우물 안 개구리 노릇을 하는 경우. 자기가 하는 연구가 왜 중요한지도 모르고, 중요할 필요도 느끼지 않으면서, 논문 편수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쓰는 경우. 되도록이면 남이 읽어 보지 않기를 기대하면서도 인용 횟수는 많기를 바라며 쓰는 경우. 안쓰럽다. 그런데, 투성이다.
요즘 시름시름 몸이 많이 안 좋다. 옛날엔 몸이 안 좋으면 니체를 읽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회복되곤 했다. 밤에 잠이 깨서(요즘 흔한 일이다), 뒤척이다 일어나 몇 자 끄적인다. 벌써 아침이다.
참고: 관련된 철학 포스팅
정의와 법의 거리 좁히기 : 자크 데리다, "법의 힘"서평을 겸해 어뷰징 논란에 발 담그기
지금까지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팔로, 보팅, 리스팀('팔보리')은 스팀잇 사랑 3종세트입니다.
가즈아 글이 아니라서 어색하네요.
대학에 들어가서 남들 과외하고 영어공부하고 연애할 때 저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철학이 궁금해서 여러 서적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무작정 읽었고 이해는 못했었죠. 책들도 그닥 문체가 좋지 않았습니다. 동양철학도 깊이가 중후하지만 저는 그때 우선 서양철학에 관심이 갔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었고, 뭔지 모를 희열을 느꼈던 걸로 기억합니다. 후에 니체를 해석하는 책도 찾아보고 니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알게되고 포스트모던이 뭔지도 찾아보게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라스콜로니코프에서 짜라투스트라를 보기도 했었지요.^^ 나중에는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으며 철학을 복습했었습니다. 일단 오늘 @armdown님 글을 읽으면서 왜 자기자신을 철학자라고 소개했는지 명쾌한 답이 된 것 같아서 반갑네요.
무엇보다도 학문하는 사람은 영어번역본이 아닌 원문을 읽어야한다는 데 100% 공감합니다. 우리 교육이 이렇게 흘러간것이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주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깊이 있는 철학이 제대로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달 이벤트 하셔서 알게 됐지만, 깊이 있는 글 읽으러 포스팅 자주 보러와야겠어요.^^ 건강 유의하시고 빠른 쾌유 바랄게요~
저의 글이 긴 답글로 이어질 정도였다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ㅍㅍㅅㅅ 의 이승환 수령의 명을 받아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가제는 '철학, 되도록 공부하지 말자'입니다.
글이 길어지고 있어서 아직 끝내지는 못했는데,
ㅍㅍㅅㅅ에 수록한 뒤, 약간 시간을 두고 스팀잇에 박제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오늘 글에 이어지는 조금 신선한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ㅍㅍㅅㅅ의 이승환 수령이 누구신지...ㅋ 가수 이승환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ppss.kr 검색해 보세요.
재미있는 글이 많습니다.
주제는 다양해요.
아 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며 저의 스승님들이 떠오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항상 있지만, 당당하게 찾아 뵙지 못하는 게
더욱 마음 아픕니다.
다시 읽으며 생각하고 싶어 감사히 리스팀하고 갈게요.
조만간 당당하게 뵐 수 있는 '한 가지'를 만들어 찾아뵈세요.
저도 미루다 미루다 시기를 넘기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네요.
기운을 드릴게요.
제가 처음 접한 들뢰즈는 선생님이 번역한 <베르그송주의>를 통해서였네요. ㅎㅎ. 요즘 몸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땐 들뢰즈의 글을 읽습니다. 그럼 금새 회복되더군요.
들뢰즈 강의록 구입하신 거 사진으로 보았어요.
저도 구입하려 하는데, 게을러서 주문이 자꾸 늦어지네요.
조만간 '첫 인상' 서평 부탁드릴게요.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제 옛 이름도 김진석이었는데 말이죠. 하하. 저도 좋은 선생 만나 좀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오, 이름을 바꾸셨군요.
좋은 선생 후보가 있으면 먼 길이라도 찾아다니는 게 맞다고 봅니다.
두루두루 찾아보세요.
예전보다 찾아다니기 쉬워졌으니까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공학도인데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진로에 대해 고민입니다. 발 벗고 찾아다녀야겠습니다.
공학도인데 그림이 너무 매력적입니다.
진로에 함께 응용해도 좋을 듯요.
이 그림은 제 것이 아니옵니다..ㅋㅋ 씨마님 그림입니다. 전 시를 씁니다. 쓴다고 하기도 부끄럽네요.
내 글의 대부분에
단언은 거의 없고
"~~라고 나는 생각한다"로 되어 있음을 되새겨 봅니다
별게 아니긴 하지만 살면서 단언한 딱 2개의 내 용어와(이전엔 없었다는 면에서 ..ㅎ) 이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설명 체계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긴 합니다
3종세트 시전했음을 알려드립니다 ㅋㅋㅋ
입을 딱 떼는 게 무척 어려운 것 같아요.
옹알이 하는 상태와 비슷하달까요.
매번 사랑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찔리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비록 전 전공이 좀 다르긴합니다만, 선생님 말씀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찔리는 부분이 혹이라도 있다면,
하나씩 가시를 뽑아내세요.
한꺼번에 뽑으려다간 아파서 울게 되니까요.
중요한 시기에 방향을 제시해줄 만한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만큼 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멘토가 어서...ㅠ
저는 복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후생들에게 많이 베풀고 싶어요.
역사학자 김호동 교수가 왜 수많은 언어를 배워야했는지 하버드 공부시절 일화가 떠오릅니다.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김호동 교수께는 (글과 강연으로) 배웠습니다.
매체와 통신 발전으로 그런 배움이 더 많아지고 있어서 기쁠 따름입니다.
고등학생 때였던가, 대학생 때였던가 니체를 읽다가 든 생각은 정말 니체가 이렇게 썼을까? 였습니다.
번역을 통해 읽은 그 것이 과연 니체의 글이었나 생각해보면, 아니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은, 제가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 번역본이 나빠서인지...
니체의 글은 아직 좋은 번역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저도 뭔가 일조해야 하는데...
시간이 나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스팀잇에 번역 연재할 생각입니다.
그 때 많이 성원해 주세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읽으면서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공부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슬프네요...ㅠㅠ
공부를 시작할 시기는 늦기 어렵습니다만,
아무래도 체력이...
저도 절감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