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서 보면 4개의 막대기가 있고, 오른쪽에서 보면 3개의 막대기가 있다.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처음에 나는 이 그림이 소통의 중요성을 환기 시킨다고 생각했다.
'내가 맞다고 믿지만 상대 역시 맞을 수 있겠구나'
'내 관점에서 내 주장만 펼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야 되겠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의문이 생겼다.
'과연 소통한다고 해도 3개나 4개로 결론이 날수 있을까?'
'결론이 나더라도, 이것을 과연 온전한 3개나 4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것을 규정지으려 한다.
해마가 어떤 것을 기억할 때 연관성을 찾아 이미지로 뇌에 저장하는 것처럼
뇌에 규정지어 각인시키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 3개나 4개로 규정지어야 하는가?'
'진실은 3개도 4개도 아닐 수 있는 것 아닌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공기역학적인 측면에서 호박벌이 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호박벌의 몸무게와 날개가 불균형을 이뤄 날 수 없다는 것)
1882년 유럽에 오리너구리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학자들은 오리너구리의 존재를 부정했었다. (조류도 포유류도 아니고 조류와 포유류의 중간형도 아닌 이런 동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알다시피 호박벌은 날아다니고 오리너구리 역시 존재한다.
사람들 마음대로 규정 지어 놓고
규정되지 않아서 진실을 부정하다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시간이 흘러,
호박벌이 초당 200번에 가까운 진동 날갯짓으로 날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생포된 오리너구리를 보고 유럽 학계가 오리너구리를 인정했듯이
규정은 변할 수 있으며
규정이 진실인 것도 진실이 규정인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