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8] Monster(2)

in #kr-writing6 years ago

“뭐, 도 중사의 사디즘적인 성향을 빗대어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신일 씨, 혹시 말이에요.”

“예.”

“범인이 암시하려는 메시지가 오만에 대한 응징 같은 거 아닐까요?”

“오만? 오만에 대한 응징?”

“예, 신일 씨가 말한 대로라면 메두사는 자신의 미모에 대한 우월감에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거잖아요?”

“그렇게 볼 수 있죠.”

“그런 인간으로서의 오만함이라는 게 도 중사의 행동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요.”

“통하는 구석이 있다?”

“아까 그러셨죠? 도경욱 중사라는 사람, 군에서 가혹한 체벌과 금지된 얼차려로 악명 높았다고.”

“예.”

“생각해 보면 그런 금지된 체벌이라는 게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남용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 권한남용이라는 거 말이에요. 그게 바로 오만함이라는 거예요. 이쪽 일하면서 그런 사람들 숱하게 봤어요. 자기 손에 들린 알량한 권력에 취해 사리분별 못하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 특징이 보통 그래요. 원래는 안 되지만, 나는 예외다. 다른 사람은 다 안 되도 나정도 되는 사람은 괜찮다. 나는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 잘못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런 심리 말이에요. 그게 결국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오만함이 아니고 뭐겠어요?”

오만함, 인가. 혜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일은 도 중사와의 마지막 술자리를 떠올렸다. 그의 취기 섞인 혼잣말을 꾸역꾸역 들어줘야 했던 어느 술자리, 아마도 그게 신일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한 송별회식 자리였던가.

그 날, 도 중사는 평소보다 얼큰하게 취해 자신의 군 생활에 관한 자부심을 주절거렸다.

“나 중위님요, 제가 애들한테 잘해주는 법, 몰라서 안 하는 거 아닙니다. 그런데 애새끼들한테 절대 잘해주면 안 돼요. 이것들이 얼마나 영악한 줄 아십니까. 한 번 잘해주면 긴장이 풀려서 반드시 나중에 사고가 터진다고요. 나 중위님이 저만큼 절박하지 않아서 그래. 저는 이 일에 목숨을 겁니다. 제 말 아시겠어요? 전 이 일에 목숨을 건다고요.”

그는 자신의 폭정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었다. 하지만 꼬인 혀로 떠들어대는 그의 야비한 웃음은 위선이었다. 그건 결코 밥벌이의 절박함 때문에 다른 사람을 괴롭혀야하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주사(酒邪)는 기만이라고, 신일은 생각했다. 술기운에 기대 자신의 잘못을 자위하는 도살자의 입에서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겠어요.”

싸늘한 침묵을 깬 혜원의 한 마디에 신일은 고개를 들었다.

“예?”

“메두사 말이에요. 자기와 눈을 마주한 모든 이가 돌로 변하는 저주라는 게, 결국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거잖아요.”

“그야….”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주위의 모든 이들이 돌로 변해 버린다면, 그게 몇 년, 몇 십 년 계속되다 보면 둔감해지지 않을까요? 정작 메두사 본인은 남들이 자기를 괴물로 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주위에 아무도 말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자신의 오만함으로 주변의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주위에 누구도 남지 않게 되는 저주라….

“신일 씨, 저는요. 여기 「이제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라는 첫 문장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마치 도경욱 씨를 처단하기 전, 범인이 언도하는 최후의 사형선고 같은 느낌 같달까요.”

그러고 보면, 도 중사 역시 메두사와 다를 바 없었던 건가. 그는 언제부턴가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볼 기회, 아니 거울 앞에 설 용기가 없어졌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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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님, 뭐 한 가지 좀 물어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범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뭘까요?”

“궁극적인 목적?”

“예, 그간 범인이 보여준 행동패턴을 보면 마치 자기 행동을 누군가 알아주고, 해석해주길 바라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이 있죠, 분명히.”

“처음엔 저도 범인이 자기과시욕에 취해 닥치는 대로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늘 사건까지 접하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건 쫓아가는 사람에겐 낯설고, 쫓기는 사람에겐 위험한 방식 아닌가요? 범인 역시 이런 공개살인이 반복되다보면 꼬리가 잡힐 거라는 것 정도는 알 텐데요?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치밀하고 빈틈없이 범죄를 준비했다는 건, 단순한 미치광이의 살인행각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맞아요. 벌써 수개월 전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움직였다는 거니까요.”

“그럼 그 이후는요? 범인은 자신이 목표로 삼는 희생자들을 모두 처단한 후에는 무얼 하려는 걸까요?”

“음….”

“전 아직까지도 범인 손에 놀아나고 있는 기분이에요. 여태껏 범인이 저지른 일들을 보시라고요. 이건 마치 한 대령님 피살에 즈음해서 예전에 자기가 저지른 범죄들이 차례로 발견되도록 장치를 해둔 것 같잖아요. 이런 식으로 수사망이 좁혀지다 보면 결국 용의자도 추려질 테고, 그러다 보면 범인이 노출될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건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범인이 이루려는 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좋은 지적이에요.”

“범인이 이런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뭐죠? 끝까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걸까요? 그게 아니면….”

“사실, 제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도 그거예요.”

“걱정하는 부분이라고요?”

“예, 이건 저 역시 처음 겪어보는 케이스에요. 불과 얼마 전까지 지지부진하던 사건들이 일정한 시점에, 특정 사건을 계기로 하나로 엮여가고 있으니까요. 처음엔 제대로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신일 씨와 비슷한 생각이에요. 하염없이 범인의 뒤통수만 보고 뛰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그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가. 수사를 계속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거죠.”

“혜원 씨도 비슷한 생각을 한 거군요.”

“만약에, 만약에 말이죠. 지금 이 일련의 범행이 무차별 살인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증오범죄의 일환이라면, 그리고 이렇게 별개의 사건들이 엮여 나가는 것 역시 범인이 의도한 거라면. 이건 범인이 자기 자신의 각오를 공개적으로 내비치려는 거라고 볼 수 있거든요.”

“각오를 내비친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내 유일한 목표는 복수뿐이다, 라는 뿌리 깊은 적개심. 그 정도 각오라면 이런 행동이 충분히 가능하죠. 원한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차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요. 이 자가 정말 위험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체포나 처벌,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복수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가 생각하는 범행대상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 자의 범행주기는 더 빨라질 거예요. 끝이 임박했다고 느낄수록 쫓기는 자의 행동은 날래지니까요.”

“수사관님, 어쩌면 범인은 애초에….”

“애초에?”

“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신일은 마지막 말만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흉흉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 모든 게 현실에서 벌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봤을 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역시 진하인 겁니까?”

“그건 아직 공식적으로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그걸 밝히는 건 그다지 적절한 것 같지 않네요.”

“그럼 혹시 공개수배를 한다거나 별도의 조치는…”

“아직 마진하를 용의자로 공개수배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죠. 일단 마진하 씨 외에 다른 사람도 용의선 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수사를 하고 있다, 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는 하지만, 혜원의 확신에 찬 눈은 분명 진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일은 여전히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진하가 왜? 녀석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전역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한들, 이제와 옛 동료들을 사냥하듯 하나씩 살해할 이유가 되진 않을 텐데.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지요. 마침 오늘은 신일 씨 말고 수사에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신 분이 한 분 더 있어서요. 그분 오시면 얘기를 조금 더 나눠보도록 할까요?”

“오늘? 오늘 저 말고 누가 또 오는 겁니까?”

“예, 아마 신일 씨도 아는 분일 거예요. 당시에 같이 군 복무한 분 중에 한 분이시라.”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아, 예 그분 성함이… 아, 그분 성함을 어디다 적어놨더라?”

신일은 복잡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그는 이런 서먹한 만남에 질색하는 타입이었다. 오늘 같은 날, 옛 동료와의 조우라니. 오랜만이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울먹이며 옛 전우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껄끄러운 상황 아닌가.

“어차피 그분과의 약속 시간도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잠시 쉬었다 할까요?”

예정된 어색함 때문일까. 양손에 시큼한 땀이 차오른다. 다시 그의 몸이 간절히 니코틴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시죠. 그럼 전,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오겠습니다.”

몸을 일으키던 신일의 눈에 서류철 사이 삐져나온 도 중사의 증명사진이 들어온다. 개선장군처럼 늠름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 형용할 수 없는 비열함이 느껴진다.

착잡한 감정을 숨기려 신일은 걸음을 재촉했다. 식도로 매스꺼운 기분을 넘기며, 그는 황급히 경찰청 건물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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