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5] SIGN(2)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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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ter 2 - HERO(1)
Chapter 2 - HERO(2)
Chapter 2 - HERO(3)
Chapter 2 - HERO(4)
Chapter 3 - Vertigo(1)
Chapter 3 - Vertig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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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 Vertigo(4)
Chapter 4 - Lucifer Effect(1)
Chapter 4 - Lucifer Effect(2)
Chapter 4 - Lucifer Effect(3)
Chapter 5 - SIGN(1)

“이 뺑소니 사고를 또 다른 살인사건으로 확신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좀 섣부른 것 아닌가요?”

“그렇죠. 만약 이 편지뿐이었다면,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겠죠.”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거예요?”

“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뺑소니 사건 자체에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어요. 류준 씨는 밤낚시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어요. 인도도,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인데다 워낙 늦은 시간에 발생한 사고라 목격자도 없었죠. 당연히 저희도 처음에는 단순 뺑소니로 사건을 접수했고요.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고 피해자의 시신을 수습하다 보니 이 사건, 일반적인 뺑소니 사건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더군요.”

“다른 점?”

“우선 차량과 충돌한 피해자의 충돌 부위, 차량이 처음 피해자를 가격한 지점 말인데요.”

“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보통 운전 중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잖아요?”

“당연하죠, 그야.”

“야심한 밤, 운전 중 갑자기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난 상황이라면 분명 더욱 그랬을 거고요.”

“그런데요?”

“자동차는 차체 무게 때문에 아무리 천천히 달리고 있다 해도 운행 중 제동하면 차량 앞부분이 주저앉듯 기울어요. 관성의 법칙이라는 거죠. 당연히 자동차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의 쏠림 현상도 심해지겠죠? 일반적인 상황에서, 차량 범퍼가 어느 정도까지 내려앉을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그쪽 방면으론 영 문외한이라….”

“과속 추돌사고의 경우, 승용차를 기준으로 가해차량과 피해자의 1차 충돌 부위는 보통 무릎 아래, 정강이 부위가 되요. 차량이 앞으로 쏠리는 힘 때문에 범퍼가 사람의 무릎 아래를 가격하게 된다고요.”

“그 정도인 가요?”

“예, 하지만….”

“…류 대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부검 결과 류 대위와 뺑소니 차량의 충돌 부위는 그보다 훨씬 윗부분이었어요. 정확히 무릎 관절 윗부분을 으스러트려 버렸더군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겠어요?”

“일반적인 교통사고보다 가격 부위가 높다는 건…”

“이건 말이에요. 자동차가 보행자를 보고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예, 애초에 사고 차량은 피해자를 보고도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현장의 스키드 마크를 분석해 봐도 사고차량의 감속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죠. 마치 처음부터 피해자를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동차는 최고 속력으로 달려가 피해자를 들이받았다고요.”

혜원은 언성까지 높여가며 이야기에 열을 올렸지만, 신일은 굳건히 잠근 팔짱을 끝내 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신일에게 그녀의 말은 지나친 비약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밤과 새벽의 경계에 놓인 야심한 시각, 으슥한 길가에 누가 걷고 있을 걸 예상하고 운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브레이크를 밟을 틈도 없이 일어나는 돌발 사고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새벽낚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면, 류 대위가 술을 몇 잔 걸쳤을 지도 모른다. 반대로,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을 가능성은 어떤가?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차 없이 제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신일은 생각했다. 안 그래도 그는 모든 걸 단정적으로 말하는 혜원의 말투가 거슬리던 참이었다.

“류 대위가 술을 마셨던 건 아닐까요?”

“낚시터에서 돌아오는 류 대위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차량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했다고 보긴 힘들어요.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류 대위는….”

“예, 저도 알고는 있어요.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죠. 그럼 반대로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을 가능성은요?”

“그럴 가능성도 낮아요. 그런 경우였다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다가오는 차량을 보고 피해자가 먼저 반응해서 피했을 테니까요. 야간에 멀리서 다가오는 차량을 보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도로 바깥쪽으로 피하려고 하잖아요?”

“자, 잠깐만요. 수사관님 말씀대로라면 결국, 준이는 어떤 식으로든 다가오는 차량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바로 그거에요. 뺑소니 사고가 난 지점은 특별히 다가오는 차량을 보지 못할만한 커브 길이거나, 그 외에 사고가 일어날 만한 특징 있는 장소가 아니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차량이 다가올 때까지 피해자가 이를 알지 못했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이상하죠? 피해자가 차를 피하려고 할 틈도 없었다면, 이건 사고차량이 헤드라이트를 끈 채 피해자에게 접근했거나, 그를 덮치기 직전 갑자기 속력을 올렸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의도적으로 류 대위를 노렸다는 겁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저희가 내사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따로 있으니까요. 피해자는 발견 당시, 무릎을 가격당해 양쪽 무릎 아래 종아리 부분이 절단된 상태였습니다. 처음엔 차량과의 충돌로 다리가 으스러진 거라 생각했는데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절단 흔적이 좀 이상하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절단흔적이 이상하다니요?”

“차량 충돌로 다리가 절단된 게 아닌 것 같다는 거예요.”

“예?”

“아직까진 확실히 말씀드릴 수준이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정황증거들은 이게 단순 뺑소니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유족 분들께 양해를 구해 조용히 수사를 재개하려던 참에 마침 오늘 류준 씨 미망인께 편지를 전달받은 거예요. 급하게 신일 씨를 찾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두 사건은 연결되어 있어요.”

신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혹투성이 죽음에 정체불명의 편지, 엽기적인 시체훼손의 흔적까지, 확실히 이 두 가지 사건은 닮은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 이 허세 가득한 문장, 이건 틀림없이 한 사람의 문체다.

“어쨌든 신일 씨가 보시기에 이 편지, 무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이거, 처음부터 네 번째 행까지의 내용은 확실히…”

“확실히?”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에요. 극 마지막에 등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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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피에르 피쿠(Henri Pierre Picou),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te), 19세기 중반

“아, 그 마지막 대사라면…”

“예, 극의 피날레, 두 연인이 살아생전 서로에게 건넨 최후의 대사 말이에요. 첫 번째 행, 「죽음이 그대를 정복하지 못했소. 그대의 붉은 입술과 뺨은 여전히 아름답소!」 이 부분은 무덤에 잠든 줄리엣이 죽었다고 착각한 로미오의 절규고, 「당신에게 입 맞추겠어요. 어쩌면 당신 입술에 독약이 조금 남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부분은 다시 깨어난 줄리엣이 로미오의 시신을 보고 뒤따라 죽기 직전에 남긴 독백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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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시드니 머스챔프( Francis Sidney Muschamp),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te), 1886

“잠깐만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뇨? 갑자기 여기서 그게 왜 등장하는 거죠? 이번 사건과 그 작품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글쎄요. 아마도 상대에게 닥칠 운명적인 죽음을 예고하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비극 속의 두 주인공처럼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당신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그런 경고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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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레이턴( Frederick Leighton),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앞에서 화해는 몬태규와 캐퓰렛(The Reconciliation of the Montagues and Capulets over the Dead Bodies of Romeo and Juliet), 1855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럼 여기 여섯 번째 행에 나오는「영원한 안식의 침대」는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함께 묻힌 관(棺) 같은 걸 의미하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전에…”

“그전에?”

“이 편지, 자세히 보면 말이에요.”

“예.”

“처음부터 네 번째 행까지, 그리고 나머지 다섯째부터 일곱째 행까지의 문체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어요.”

“흠, 말씀을 듣고 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도입부를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에서 그대로 따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렴구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전혀 다른 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로 추정되는데요.”

“이번에도, 인가요?”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