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커피(Smart Coffee)
교토에서의 마지막 날.
골목길을 많이 돌아다녔던 여행이었는데, 마지막 날은 그래도 사람 좀 붐비는 번화한 거리로 나섰다. 아침을 먹기 위해 일찍 온 이곳은 무려 1932년에 문을 연 스마트 커피다. 86년 된 카페라니. 아, 다방이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가 찾아간 시간은 아침 9시였는데도 불구하고 잠시 웨이팅이 있었다. 크지 않은 가게에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한국인들도 몇몇 보였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너무 사랑한다.
꾸며진 레트로가 아닌, 늘 그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켜왔을 것만 같은 느낌. '살아있는 레트로'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지나간 과거는 어느 정도의 판타지를 갖게 만든다. 특히 난 그런 판타지가 큰 편이라서 레트로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쉽게 심쿵한다. 실제로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에게 삶은 그리 평탄치 않았을지 모르지만..
동묘 골목에선 우리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 여기왔던 그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엿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개화기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상의 '제비다방'을 가보고 싶다. 누가누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엿듣고 싶다. 백화점이 처음 생겼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은 어땠을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등등..
5분을 좀 넘게 기다렸을까.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운이 좋게도 내가 제일 원하던 가장 입구 쪽 자리였다. 이곳의 인기 메뉴인 프렌치 토스트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조명이 어두워서 어떻게 찍어도 비주얼이 영락없이 두부 같다;; 대략 난감.. 어찌됐건 아침으로 너무 좋았고 맛있게 먹었다. 다만, 단 걸 유난히 못 먹는 2인인데, 생각도 안하고 시럽을 다 뿌려버린 것이 최대의 실수였을 뿐이다.
이노다 커피(Inoda Coffee)
스마트 커피를 나선 후 바로 이노다 커피를 향했다. 다른 상점들이 문을 열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카페일 뿐 아니라 커피 관련 용품도 판다는 걸 듣고 아침부터 도장깨기하듯 카페를 갔다.
이곳은 1947년에 문을 열었다. 71년된 곳. 교토에 지점이 몇 개 더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이 본점이다. 참 오래도 된 카페들이 오래도록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부럽기도 하다.
원두부터 시작해서 커피잔과 드리퍼, 유리컵 등등. 커피덕후인 나는 이런 것만 보면 정신을 못차린다. 특히 커피의 맛보다도 커피잔에 예민한 편이다. 둔탁한 머그잔에 마시면 어떤 커피도 맛없게 느껴지는 병에 걸린 사람이다.
결국 커피잔을 샀다..
어쩌다 보니, 가게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시키게 되었다. 원두를 마셔보고 사자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교토의 커피는 좀 탄듯한 씁쓸한 맛이 공통된 것 같다. 산미가 강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센 맛은 아니다. 뭐라 표현해야할지 어려운 맛이다. 여기서 마셔보는 걸로 족하자는 마음으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 로고와 각설탕이 너무 귀엽게 느껴질 뿐이다.
바깥 정원의 테이블보는 왠지 90년대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레트로다. 이것 또한 이것대로 매력적이다. 흡연자 손님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안에서 바라다 볼 뿐이었다. 교토는 어쩐지 한번은 더 오게 될 것 같은 느낌인데, 다음엔 이노다에서 아침을 먹어볼 참이다.
나의 카페 사랑은 커피 사랑에서 시작되었고, 단순히 요즘 핫한 컨셉 공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살롱'이라는 개념도 카페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카페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오래될수록,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는 아이러니가. 매력적인걸요.
시간의 세례를 받은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번 포스팅은 제대로 취저!
저도 나직나직 시간을 보내고 싶네요. 교토에서.
오 시간의 세례라는 표현 너무 멋지네요. 결코 한번에 따라할 수 없는 고유한 것들이죠.
이노다 커피. 청수사 이르는 길에 그 까페군요.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청수사에도 지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가보진 못했어요. 아마도 비슷한 느낌일것 같네요:)
교토를 두세번 가보면서 커피숍을 한번도 간 적이 없네요. 갈 때마다 항상 짧은 일정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 바빠서요. 어떤 날은 지인의 부탁으로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기도 하고.. ㅠㅠ
근데 이런 류의 글... 차분하기 읽어내려가면서 되게 감성적인 글이네요. 우와~ 같은 교토를 다른 느낌으로 다른 곳으로 여행하셨네요~ ^^
저도 3박4일이 너무 부족했어요. ㅎㅎ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토도 시간만 있으면 몇주 머물면서 현지인 생활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고즈넉한 장소 제가 좋아하거든요~ ^^
저도 고즈넉한 곳 너무너무 좋아해요!! 안그래도 여기서 한달만 디지털노매드 생활해보면 어떨까 그 생각했었어요. 같이 간 선배가 알바도 같이하면 가능할거라고 하더군요 ㅋㅋ
진짜 디지털 노마드 생활만 가능하다면 최소 몇년 간 그렇게 여기 저기 다니면서 생활하고 싶네요. 저는 밖에서 살아보니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외로움을 덜 타고 향수병 같은 것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오사카에 친구도 있으니 교토에 디지털 노마드 생활하면.... ㅠㅠ 생각만하도 행복하네요. 그래서 @emotionalp님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헐...! 프렌치토스트 사진보고 두부부침인줄...ㅋㅋㅋ 죄송해요~ㅋㅋ 노릇노릇 잘 부쳐진거겠죠:) 근데 이노다커피 물컵이 너무 예쁘네요ㅠㅠ (사고싶당...)
제가보기에도 너무나 두부인걸요ㅋㅋ 물컵도 많이 고민했어요. 조금 작은 편이라서 커피잔을 택했습니다 ㅎㅎ
아기자기하네요
커피 맛도 카와이~~할 것 같아요ㅎㅎ
커피맛은 생각보다 씁쓸한 맛입니다 ㅎㅎ 호불호가 갈릴 듯도 하네요
일본은 저렇게 오래 된 전통이 살아있는게 너무 부러워요..
우리나라는 대부분 최신식이라 ㅠ
맞아요. 확실히 우리와 다른 성향을 느꼈어요. 물론 역사적으로 힘든 상황들을 겪어야 했던 것의 영향도 있겠죠..
오랜 기간을 살아간 분을 발견하는 밝은 눈을 가지셨군요.
몰랐는데 워낙 유명하더라구요. 운이 좋았죠 :)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공간들에는 신비로움이 있는거 같아요ㅎㅎ
이노다커피가 무지 끌리네요..!!ㅎ
뭔가 옛날 경양식집 같기도하더라구요.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ㅎㅎ
저도 이쁜 카페가는거 좋아하는데 잘 누리지는 못하네요. 토스트는 진짜 두부같긴 하네요 ㅎㅎㅎ
교토에 있는 카페라니 다 평온한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ㅋㅋㅋ무엇때문에 두부처럼 나온걸까요, 저도 의문입니다. 교토는 도시지만 참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사진 보고, 일본의 카페에서는 두부를 파는구나..했었네요ㅎㅎ
한국의 카페들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emotionalp님의 남다른 커피사랑을 알게 되었네요^^ㅋ
ㅋㅋㅋ또가게 된다면 다시 잘 찍어봐야겠네요.제가 한 커피사랑 한답니다 ㅎㅎ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 자체를 너무 좋아해요 :)
두부와 커피의 조합이 신선하군요.
흑.. 제가 제 발등을 ㅠㅠㅎㅎㅎ 아주 달달한 두부입니다.
분위기 좋네요
분위기 좋죠 :)
산미가 강하지 않으면서도 좀 탄듯한 씁쓸한 맛이라.. 상상이 약간 되면서도 궁금해지는 맛이네요. 살아있는 레트로라.. 이렇게 멋진 표현을 쓰진 못하지만, 저도 윤동주가 자주 산책했다는 동산에 찾아가 그가 있던 시절을 상상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역주행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ㅎㅎ 요즘 서울에 로스터리 카페들은 산미가 있는 커피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조금 다른 느낌이고 의외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