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한시 #25] “충혈된 눈동자” / 박인환

in #kr-po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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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혈된 눈동자

박인환






STRAIT OF JUAN ED FUCA를 어제 나는


지났다.


눈동자에 바람이 휘도는


이국의 항구 올림피아


피를 토하며 잠 자지 못하던 사람들이


행복이나 기다리는 듯이 거리에 나간다.





착각이 만든 네온의 거리


원색과 혈관은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거품에 넘치는 술을 마시고


정욕에 불타는 여자를 보아야 한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무거운 침묵 속으로 나는


발버둥 치며 달아나야 한다.





세상은 좋았다


피의 비가 내리고


주검의 재가 날리는 태평양을 건너서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은 떠나야 한다


아니 세상은 불행하다고 나는 하늘에


고함친다


몸에서


베고니아처럼 화끈거리는 욕망을 위해


거짓과 진실을 마음대로 써야 한다.





젊음과 그가 가지는 기적(奇蹟)은


내 허리에 비애의 그림자를 던졌고


도시의 계곡 사이를 달음박질치는


육중한 바람을


충혈된 눈동자는 바라다보고 있었다.


─ 올림피아에서





| 창작일자: 19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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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인환
작가설명: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출생;1933년 인제 보통학교 입학;1936년 서울 이주, 덕수공립보통학교 편입;1939년 경기중학교 입학;1941년 3월15일 경기중학교 자퇴, 한성학교 야학;1942년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 편입;1944년 명신중학교 졸업,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 입학;1945년 학업 중단후 서울로 돌아옴, 마리서사 경영;1946년 <거리> 발표;1948년 결혼, 자유신문사에 문화부 기자로 입사;1949년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출간, 경향신문사 입사;1951년 경향신문사 종근기자로 활약;1952년 6월 16일 경향신문사 퇴사, 대한 해운공사 입사;1955년 대한해운공사 퇴사, 첫시집 [박인환선시집] 발간;1956년 3월 20일 심장마비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