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두 가지 생각

in #kr-pen7 years ago (edited)


올해 들어 꾸준히 하고 있는 단 한 가지 일은 요가다. 무엇 하나 끈질기게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변덕스럽고 의지박약인 내가 웬일인지 요가만은 계속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스팀잇에 매일 글을 쓰겠단 다짐도 며칠 지키지 못했고,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을 읽고 나서 한 다짐, 일찍 일어나 글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것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요가만은 꾸준히 하고 있으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글쓰기와 요가 중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히 글쓰기인데 어째서 점점 소홀해지는지 혹은 무기력해지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요가로 이루고 싶은 것이 없어서 설렁설렁 요가반에 계속 다닐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몇 주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몸이 떨리고 요가 시간이 끝나면 온몸이 뻐근했는데 이제는 웬만한 동작을 해도 몸이 떨리지는 않는다. 그만큼 몸을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거꾸러질까 두려웠던 물구나무서기도 이제는 곧잘 한다. 다리를 벽에 의지하지 않고도 제법 혼자 서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처음과 비교하면 대단한 변화다.

또 하나 변한 게 있다면, 함께 요가 하는 어르신들을 대하는 내 자세다. 동에서 운영하는 센터라 그런지 아니면 아침반이라서 그런지 같은 반 수강생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반에서 유독 어린(?) 수강생인 내게 관심이 많았다. 나를 앞에 두고 당신들끼리 내 이야기를 하는 듯했고, 어느 날엔 칡즙 같은 걸 주시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요즘 것들로 통용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욕을 하기도 해 불편한 상황이 여러 번 생겼다. 

인사 없이 조용히 다니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조용히 요가만 하고 오자는 마음을 체념했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도 점점 나를 요가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줬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 나 역시 요가반의 암묵적인 규칙에 순응해야 했다. 그 규칙 중 하나는 ‘고정 자리’였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지만, 암묵적이면서도 공고한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걸 눈치 없게도 한두 달쯤이 지나서 알게 됐다. 그것도 한 소리를 듣고 알게 된 것이다. “이 자리 주인 없으면 여기에 잘 앉네.” 한동안 어떤 자리를 맡고 싶어서 일찍 센터에 가서 자리를 차지했는데, 바로 뒷자리 어르신에게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더 지나며 요가반에 각자의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좀 더 뒤쪽에 나만의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지금 내 자리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대충 눈치를 보면서 메뚜기처럼 옮겨 다닌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권력에 무릎을 꿇은 것 같아 뭔가 씁쓸하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늘은 그동안 늘 앉고 싶던 자리에 앉았다. 며칠 지켜봤는데 그 자리 주인이었던 어르신이 이제 더는 요가반에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았는데 옆 자리 어르신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스승의 날이라 5천 원씩 걷기로 했는데.”

뜻밖의 말에 나는, 왜 뒷자리에 앉지 않고 앞에 앉았는지 잠깐 후회했다. 무엇보다 갖고 있는 현금이 없었다.

“저 지금 돈이 없는데요.”

어르신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입을 뗐다.

“빌려주시면 내일 드릴게요.”

그러자 어르신이 종이 한 장을 내밀어 이름을 쓰라고 했다. 꼬깃꼬깃한 종이에는 돈을 낸 어르신들의 이름이 세 줄로 적혀 있었다. 빠르게 훑어보니 세 줄로 줄 쓴 이름이 일고여덟 줄쯤 됐다. 나를 끝으로 마감이 되었는지 어르신은 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을 세어 흰색 봉투에 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5천 원쯤은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정도의 돈이고, 요가 선생님께 밥 한 끼 사드릴 수 있는데, 어르신들이 이미 결정해 놓은 일에 아무런 의지 없이 따랐다는 게 왠지 서러웠다. 

수업 시작되기 전, 옆자리 어르신은 흰 봉투를 들고 선생님이 있는 단상으로 갔다. 지난해에도 같은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은 “작년에도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며 난처해하다 결국 감사한 마음으로 잘 받겠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손뼉을 쳤고 어느새 나도 마음이 풀려 따라서 손뼉 쳤다.    



기억에 남은 선생님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내게 따로 책을 빌려 주셨다. 책을 읽고 다시 돌려 드리면 또 다른 책을 읽어 보라고 주셨다. 한 번은 어리석게도, 하필 양념통닭을 먹으면서 책을 읽고 있었나 보다. 양념이 책 한쪽에 묻고 말았다. 휴지로 지워내 봤지만, 양념이 더욱 번질 뿐이었다. 지금 같으면 엄마한테 말해 새로 책을 사든지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텐데, 워낙 어렸을 때라 잠들기 전까지 어쩌면 좋을지 걱정했다. 다음 날 선생님께 책을 갖다 드렸는데, 마침 선생님이 양념이 묻은 페이지를 보게 됐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페이지를 넘기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슴이 쿵쾅대던지. 지금 돌아보면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당시에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선생님이 내게 실망하셨을까. 다시는 책을 빌려주지 않으시면 어쩌지. 

누군가 나를 알아준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내 일기장에, ‘너는 커서 양귀자 씨 같은 소설가가 될 것 같다.’라는 코멘트를 남겨 주셨다. 그때는 소설이 뭔지 또,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었고 코멘트 역시 날마다의 그것처럼 넘겨 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이 남겨 주신 코멘트가 참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양귀자 작가를 좋아해 본 적은 없지만, 소설가가 될 것 같다는 그 말이 지금의 내게 큰 힘이 된다.

또 한 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다. 당시 40대 후반, 50대 중반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선생님은 반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셨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몰랐고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조금 짐작하게 됐다. 선생님은 우리 반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생일이면 편지를 써서 올리셨고, 선생님에게나 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익명으로 할 수 있도록 게시판을 만들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 게시판은 유용하게 사용됐다. 현장학습이 끝나면 삼겹살 파티를 열었고 방학 때는 함께 산에 올랐다. 그러지 않아도 됐을 일들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여행했다. 마침 한 친구가 묵을 곳이 있다고 해 여수로 향했다. 각자 사는 일이 바쁘고 직업도 취미도 사는 지역도 제각각인 터라 자주 만나기 어려웠는데, 어찌 일정이 맞아 급하게 1박 2일 짧은 일정으로 떠났다. 특히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난 지 오래됐고 직업적으로도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다시 만나고 보니 과거에 함께했던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새울 수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오를 때쯤, 우린 아쉽다는 이야길 했다. 다음 날은 월요일이었으므로, 볼멘소리도 나왔다. 교사인 한 친구는 스승의 날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승의 날에는 소풍이나 체육대회 같은 걸 하나 본데 그래도 곤욕스러운 일이 생긴다 했다. 뭔가를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흘러, 학창 시절 기억나는 선생님 이야기로 가닿았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얘길 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마운 선생님이었다고. 친구가 말했다. 주변 선생님들이 피곤했을 거라고. 자신도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뭐 하나 더 해 줄 수 없을까 고민했는데, 그게 다른 선생님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이제는 자제하게 된다고 말이다.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였고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맞장구쳤다. 그러고 나서는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한 사람의 선의는 다른 누군가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일을 자주 겪었고 그러한 상황이 교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선생님들은, 혼자만의 선의로 나를, 아이들을 들여다봐 주고 알아주고 새로운 경험을 나누어 준 분들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게 된 지금, 그 선생님들이 더더욱 감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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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셨었네요. 누군가의 선의가 선의로서 다가오고 이해되는 순간, 조금씩 성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선의들이 항상 잘 닿는 것은 아니라서 가끔은 오해와 부담을 낳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한 오해와 부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 그건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을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해하는 만큼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댓글이 정말 마음에 와닿고 왠지 위로받는 느낌이에요. 부담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건 오해에 불과하다고 언젠가 준비가 되면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되뇌어야겠어요. 감사해요^^

왜 다들 선생님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했는데, 어제가 스승의 날이었군요.

소설가가 될 것이란 말을 남겨주신 선생님은 꼭 스승의 날이 아니라도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네,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정말 고맙고 보고싶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만드네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빌려주시던 담임선생님은 applepost 님
재능을 보신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 이셨네요
가끔 크게 이룬 사람들을 보면선생님이 특기를
알려주어서 이룬사람들이 많았어요^^

옐로캣님이 달아주시는 댓글들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항상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