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산하 (山河)#1

in #kr-newbie7 years ago (edited)

내 변산 중계리, 지금은 부안에서 왕래하는 시내버스가 조 석간에 한두 차례 오고 가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곳이오. 산적들이 웅거했으며, 나라가 망하던 시기에는 고부를 발하여 전주, 삼례, 군산을 거쳐 충청까지 진격하던 동학군이 일본 군대에 패주하여 몰려온 패잔병 일부가 노적봉과 신선봉 계곡에 자리한 중계리 마을에 일만 양민으로 몸을 바꿔 은신 한 곳이다.

때는 6월 소년은 잔뜩 짊어진 나뭇짐 이 무겁지 않은 듯 성큼성큼 걸어서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 소년은 우마차 길로 접어들자 길 한편에 나뭇 지게를 내려놓고 삼베 적삼을 벗어 나뭇 지게에 얹어 놓고 개울가로 내려섰다. 개울물에 얼굴을 박고 엎드려 시원하게 물을 들이 켰다.

물은 맑고 시원했다. 개울 웅덩이는 깊었다. 맑고 깊으니 물속이 푸르다. 소년은 물 마신 엎드린 자세로 두 손에 물을 퍼서 얼굴을 씻었다.

'아~ 시원하다.

소년은 베잠방이를 벗는다. 알몸이 되었다. 그리고 물을 퍼서 몸에 끼얹는다.. 어~ 시원해! , 어~ 시원해!를 연발한다. 그때 동릿길 저편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떼의 군마가 짖쳐든다. 그들은 오잇! 오잇! 하고 채찍으로 말 궁둥이를 치며 달려오고 있다. 소년은 깜짝 놀라 그들을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병마는 여섯 일본군이었다. 소년은 급한 김에 베잠방이를 입지 못한다.

그래도 뛰어들어 물속에 몸을 숨긴다. 머리만 내놓고 그 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군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선두가 왜 친다. 워~ 워~ 달리던 말들이 일제히 멎는다.

말이 밥 굽에 치솟던 흙먼지 가 말 주변에 구름처럼 엉기다. 사라진다. 선두의 군인이 총을 들어 소년을 향해 겨눈다. 소년은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총이란 것을 훗날에야 알았다. 소년은 겁에 질려 얼굴만 내놓고 두 눈만 껌뻑인다. 일본군도 나이 어린 소년임을 금방 알아챈다.

겨누던 총을 거두고, 소년에게 나오라고 손짓한다. 소년은 무서워 떨며 그들 앞으로 간다. 고추자지를 덜렁이며 갔다. 그들은 가가대소한다. 한참 웃고 난 그 들은 소년에게 옷을 입으라 손짓한다. 소년은 잠방이를 입고 삼베 적삼을 걸쳤다. 소년이 나뭇짐을 지려 하자 일본군은 나뭇짐을 총 끝으로 밀어 버린다.

그리고 포승줄로 소년을 묶은 후 한끝을 말안장에 잡아 묶고 천천히 말을 몰아간다. 소년은 그렇게 그들에게 끌려간다.

중계리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일본군 내습 소식에 집, 집에 은신하던 동학군 들이 쏟아져 나와 일제히 산으로 도망친다. 온 산이 하얗게... 백의민족이 도망친다. 일본군들은 그들을 향해 말위에서 총을 쏘아 댄다. 그러나 한 사람도 그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자는 없었다. 거리가 너무 멀었던 탓 일게다.

총 소리만 듣고 도망치는 동학군, 소년은 어린 맘에도 기가 막힌다. 저 수십, 수백 명의 동학군이 고작 여섯 명의 일본 군에 벌벌 떨며 애벌 누에가 뽕잎에 몸 감추듯 신성봉 산골짝으로 숨어 버린단 말인가?

고부군수를 죽이고 정읍 관아를 들이치고 전주, 삼례 전라를 넘어 충청으로 진격할 때는 대항하는 군사가 이 씨 조선의 썩은 군졸들이었을 것이다. 수천수만의 동학군이 기껏 몇 백의 일본 군에 무너져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증명이 된다.

그 수 백의 동학군이 도망 칠게 아니었다. 처음 마을에 들어와 마을을 유린하고 동민들을 겁박하며 밥을 해내라. 소를 잡아라 돼지, 암탉을 잡아라 술을 걸러라 하던 그 무서운 기세로 칼을 들고 창을 잡고 그도 저도 없으면 죽창이라도 꼬나들고 저돌적으로 일본군에 달려들면 설사 몇 명 또는 몇십 명이 희생되더라도 그 일본군 여섯 놈 못 잡아 죽였을까?

<국태민안 위국 안민>의 대의는 어디 가고 달아나는 동학군이여! 뒤 꼬리가 부끄럽지 않은가?

일본군의 말안장에 묶인 체 끌려간 소년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동네의 대표급 노인 몇 사람이 나와 일본군을 맞는다. 그중에 식자 있는 노인 한 분이 일본군과 필담을 나눈다.

노인은 이렇게 썼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에 일본군을 환영합니다. 이 마을에 은신하던 동학군은 외지에서 들어온 자들이며, 그들에게 우리 동민은 말 못할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모두 도망갔으니 우리 마을에 화평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남은 사람은 동학군이 아닌 이곳 마을 원 주민 들입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군은 이렇게 썼을 것이다.

'노인장의 말을 믿을 것이오. 그러나 그들이 살던 집은 모조리 없애 버릴 것이오!. 그래야 그 들이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것 아니오.'

그때 한 노인이 소년을 알아보았다. ' 이놈아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지경이 됐느냐.?'

' 할아버지 저는 잘못한 거 없습니다. 나무 해오다가 더워서 물에 들어가 물욕 하다가 잡혀 왔습니다.'

노인은 다시 일본군과 필담을 나눈다.

아마 이렇게 썼을 것이다.

' 이 아이는 이 마을 아이입니다. 아비는 농사꾼이고 술이 과해서 그렇지 동학군에 협조할 위인이 못됩니다. 이 아이를 풀어 주십시오.!'

일본 군인은 크게 웃으며, ' 잘 알겠습니다. 조금 후에 곧 풀어 줄 것이오.'

일본 군은 소년을 데리고 마을 안에 빈집을 찾아다녔다. 빈집을 가리키며 ' 폭도? 폭도?'

소년은 동학군을 '폭도'라고 하는 줄 그제야 알았다. 소년은 주민에게 온건하게 처신 한 동학 군 집은 그냥 지나치고 주민에게 악랄했던 동학군 집 앞에서는 어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군은 그 집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불태워진 집이 동네에서 거의 반이나 되었다.

일본군은 불질이 끝나자 소년의 묶인 포승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찹쌀떡을 두 쪽 주었다. 훗 날 그것이 모찌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일본군이 떠나고 소년은 집으로 갔다. 집에 어머니는 소년이 일본군의 말잔등에 묶여 끌려다니는 걸 보고 기절해 버렸다. 정신이 들었을 때 어머니는 통곡을 하며 내 자식은 죽은 자식이라고 체념하면서 또 통곡을 했다. 훗날 소년이 성인이 되어 장가를 갔다. 그리고 아들 낳았다.

그 아들에게 할머니는 ' 네 아비는 일본군에게 끌려다니면서도 살아왔다고 자랑자랑했다. 그 소년의 아들 소년은 아버지가 소년 시절부터 독립운동 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국민학교 때 어떤 친구 애 가 자기 할아버지는 동학군이었다 자랑하는 걸 듣고 소년은 웃었다. ' 동학군 보다야 독립군이 더 훌륭하지...!'

소년의 아들 소년은 자라서 군이 됐다. 그리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래도 그는 자기 아버지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제 대후 그 소년은 건설 역군이 됐다. 나라 경제 발전에 조금이나 일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버지 따라 갈라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자 소년은 모든 실체를 알았다. 아버지도, 자기도 평범한 일반인 이란 걸 알았다.

그래도 늙은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친일파 매국노 아닌 것이 어디냐? 아버지도 또 자신도 친일파나 빨갱이 아닌 게 어디냐?

이렇게 자위하면서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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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D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