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 1 . 1. (1) 쌀이 떨어졌다!

in #kr-newbie7 years ago (edited)

쌀이 떨어졌다!

그렇다. 조금씩 사다 먹는 쌀이 오늘 저녁밥 짓는 것으로 똑 떨어졌다.
쌀은 금요일에 집으로 배달된다.
난 조그만 5인용 무쇠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내 사랑 무쇠가마솥 이야기도 언제 풀어놓을 예정)
거기다 밥을 하면 네 식구가 2끼 정도는 먹을 수 있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내일 점심까지 먹을 밥은 된다.
내일 저녁은 어쩌니?
나는 내일 저녁 주스파 멤버들과 회동이 있다.
(주스파에 대해서도 다음에 풀어놓을 예정)
아이들과 남편은?
걱정 말자. 햇반이 있으니까.
그리고 한 끼 정도 밥 안 먹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즉, 오늘 저녁, 쌀이 똑 떨어졌다고 해도 괜찮다는 말씀.

라면국수, 혹은 국수라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년쯤 전,
우리 엄마는 아침 먹고 나면 점심을 걱정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을 걱정했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에 특히 걱정이 많았다.

아침은 밥을 먹고,
점심은 라면 두 봉지에 국수를 라면의 서너배 많이 넣고
김치와 파 등을 넣고 휘리릭 끓여서 아홉 식구가 먹었다.
우리 형제가 5남매,
엄마랑 아부지, 그리고 할배와 할매까지 아홉 식구였다.
아부지와 할배 그릇에는 라면면발이 많았고
그 다음은 오빠 그릇에 꼬불한 면발이 많았다.
나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국수면발보단 쫄깃하고 통통하고 꼬불한 라면 면발이
훨씬 맛있다. 그런데 내 그릇엔 국수 면발이 많았다.
엄마 그릇엔, 김치쪼가리가 많았지만
그땐 내 입이 더 중요했다.(엄마, 미안)

세월이 한참 지나서 알았다.
겨울철 점심을 늘 라면국수로 떼워야 했던 것은
양식 즉 쌀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밥 대신 식구들의 끼니를 떼울
여러가지 음식을 많이 만들었다.

호박죽, 팥죽, 시래기죽, 콩죽


등 죽 종류는 저녁에 자주 먹었다.
이 중 생콩가루를 넣고 끓인 콩죽을 들기름에 들들 볶은
시래기나물과 김장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맛있다.

배추전, 김치전, 고구마전


같은 전 종류는
라면국수와 함께 점심으로 자주 먹었다.
배추전은 식용유에 들기름을 섞어 부치면
구수하고 들큼한 맛이 좋다.

아, 콩국시


를 빼 놓으면 섭섭하다.
생콩가루를 넣고 만든 국수반죽을
길고 널따란 나무판에 기~다란 홍두깨로 밀어서
콩국시를 만들었다.
엄마가 국시반죽을 홍두깨로 밀 때는
엄마만의 리듬이 있었는데, 그건 흉내를 낼 수가 없다
암튼, 애호박만하던 국시반죽은 어느 새 얇게 펴 졌고
엄마는 밀가루를 술술 뿌린 후 휙휙 접어
아부지가 숫돌에 슥슥 갈아 준 부엌칼로 똑똑똑똑 자른다.
그것을 멸치된장 육수에 배추잎과 파 같은 것을 넣고
후루룩 끓여내면....................

국시꽁다리


콩국시를 만들 때는
우리 남매는 엄마 옆에 찰싹 붙어앉아서
국시꽁다리를 기다린다.
똑똑똑똑 얇게 펴진 국시반죽을 국수로 자르다 보면
끝부분은 더이상 자르기 애매하게 남는데
마침 사랑방 아궁이에는 그 국시꽁다리를 구워먹기 좋게
숯불이 자글자글 타고 있는 것이다.
오빠하고 언니하고 나는
아궁이 앞에서 국시꽁다리가 구수한 냄새를 피워올리며
바삭하게 구워지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가
적당한 때에 휘딱 꺼내서는
참, 맛나게도 먹었다.

구수하고 들큼한


쌀이 부족해서
울 엄마는 애를 태우고
밥을 대신할 끼니꺼리를 생각하느라
농한기를 걱정으로 보냈겠지만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이렇게 구수하고 들큼한 이야기꺼리를 갖게 되었으니
부족한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블로그를 열고 글쓰기 버튼을 누를 때는
간단하게 몇 개의 에피소드를 적으려고 했는데
35년 전으로 돌아갔다가 왔습니닷.

덕분에
들큼구수한 옛날 맛이 혀끝에 맴도는
아련한 저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분은 어떤 저녁을 맞이하셨을까요?

당근이의 닥. 1. 1. 프로젝트는 이어집니다. 쭈~~~욱!!
(닥.1.1. 프로젝트는 아까 어떤 분의 글을 읽고 시작한 것인데,
어떤 분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수사해서 그 분을 밝히겠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스티밋!
여러분의 보팅은 당근이에게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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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없을 땐. 라면 그리고 김치전이죠! ㅎㅎ

라면도 넘 맛있죠.. 특히 뿌셔 먹을 때...ㅋㅋㅋ

당근님 포스팅을 보니
옛날에 먹던 음식들이
모두 건강식이었네요..
아이들을 키워보니 삼시세끼
어떤 걸 먹일지, 어떻게 먹일지가
하루 중 가장 큰 일이더라고요..
전 지금 닭볶음 하는 중이예요^^

오 닭볶음 좋네요. 맛나게 드셨겠지요?
둥이들도 잘 먹었을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저녁은 김치찌개, 김치두루치기를 자주 먹어요..김치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어요.. ^^

아들은 입도 안 대고요...
딸은 다 먹더니 글쎄 이 시간까지 에너지가 넘치네요..
(22:47 현재요ㅠㅠ)
원래 8시면 자는데 닭이 잘못된 걸까요?
흑...

둥이들이 몇 살인지요? 제 짧은 경험상... 아이들이 지독하게 안 잘 때가 있더라구요.. 새벽 두시 넘어서까지 논 적이 허다합니다. 먹는 것도 증말 징그럽게 안 먹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냅뒀어요..

곧 27개월이 돼요..
조금전 간신히 재우고 이제 좀 앉았어요
밤새 하얗게 불태워야 하는 줄 알고 겁먹었는데
다행이 자주네요^^

저희 둥이는 아홉살이에요..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이 안 납니다.. 27개월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어디로 튈 줄 몰라 엄마 혼을 쏙 빼놓는 일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죠.. 많이 드세요.. 엄마가 기운이 받쳐줘야 애들도 그 기운을 받더라구요..화이팅!

저도 벌써 신생아 시절이 생각이 안 나요^^;
요즘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고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예요
잠도 안 자고 울고불고 ㅠㅠ
내일은 밥 많이 먹고 힘내볼게요
감사해요♡

제 저녁은 먹스팀을 보시면 ㅋ
햇반은 사랑입니다

네... 사랑 받고요...
햇반은 평화입니다.^^

요즘은 햇반이 있어서 좋아요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살기 편해요^^

햇반은 밥 하기 싫을 때 밥을 급히 먹어야 할 때 요긴하죠..^^

묵을게 없어서 수제비를 많이 먹었었죠! 지금은 수제비가 별미라니.ㄷㄷㄷ!!!

맞아요.. 수제비도 마~~~~ㄴㅎ이 먹었죠.. 갑자기 수제비가 먹고 싶어졌어요ㅎㅎ

넵.. 묵을게 없으면 무조건 수제비로 대동단결... ㅠ.ㅠ.

넘 많이 자주 드셔서 이제 먹기 싫은 음식이 됐나봐요.. 그래도 비 오는 여름날 먹으면 맛있죠..

저는 비교적 농산물이 365일 풍부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지 먹을거 걱정은 없었지만 저희 부모님들은 시즌(?)에 따라 음식이 바꼈다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고구마나 감자에 김치를 드시기도 하는데 맛있대요 ㅋㅋ 글 보고 예전에 우리 나라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다시 한번 느끼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희 집이 워낙 가난해서 먹고 사는 것이 팍팍하기도 했지만7,80년대에 농촌 살이는 저희집이랑 거의 비슷했을 거예요..그리고 우리 나라는 전쟁을 겪었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게 사십년 정도 되려나요? 암튼 그렇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놀러 갑니다^^

저같은 경우 쌀이 떨어지면... 라면이지만 아이가 있어서 두부요리나 고기는 꼭 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되보니 아침 먹으면 점심걱정, 점심먹으면 저녁걱정을 하시는 엄마의 마음을 깊게 동감하고 있어요 ^^;

그렇죠.. 저도 아이가 있어서 저는 대충 먹어도 애들은 뭐라도챙겨 먹이게 됩니다. 끼니 걱정은 달리 표현하면 엄마의 사랑이 아닐까요..ㅎㅎ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놀러 갈게요~^^

저도 주말이면 한끼 먹고 치우면 다음끼니 걱정인데~
제가 하는건 진정한 걱정이 아니 였네요ㅜㅠ
좋은 추억 이야기 인데 왜 찡해지죠~

지나간 일은 다 좋게 느껴져요..
우리 기억체계가 그런 것 같아요.
지난 일을 좋게 저장해 둬야 살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생존전략? 으로 그렇게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기억체계가 어떤 사건으로 고장이 나면..... 슬프고 아프고 힘든 일이 일어나죠..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같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leeej님의 오늘이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시길 바라며....
저도 놀러 갈게요..^^

저는 지금도 삼시를 고민하는...ㅎㅎㅎ
그때 먹거리가 더 좋았던것도 같아요^^

그렇죠.. 첨가물 없는 먹을거리가 대부분이었죠..
식구들 끼니 걱정은 엄마들의 숙명일까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야 안그렇치만 울엄마도 쌀독에 쌀 떨어지는게 싫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전엔 먹고 사는게 어려운 시절이라서 할머니와 삼촌까지 챙기는 엄마한테는 쌀독의 쌀이 간당간당하면 서럽고 속상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요즘이야 밥 없다는 말이 그리 서럽지 않치만 말예요.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나열대는 음식이 요즘에는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들이네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예요~
전에도 눈치 챘지만 요리 좀 하시나봅니다.
부러워요~~

저희 집에 엄마가 오시면 2키로씩 4키로씩 쌀을 사먹는 걸 보시면 혀를 끌끌 차십니다.. 쌀뒤주에 쌀이 떨어져가면 저희 엄마가 속상해 하셨습니다.
나이가 드니 옛날에 먹던 음식들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때라 그때 먹던 음식들은 다 꿀맛이었죠.
어려운 시절 식구들 먹이느라 애태운 우리 어머니들 마음을 엄마가 돼서야 이해하게 되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오나무님~^^

풀봇으로 쌀 한공기 더합니다. 이런 진솔한 글 넘 좋아요.
당근이님! 오늘 팔로를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타타님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할게요. 타타님 글과 그림은... 잔잔한 연못에 낙엽 한잎이 떨어져서 생기는 은은한 물결같은 느낌이에요. 자주 들릴게요~^^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

짱짱맨님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