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가지감 감상평 릴레이]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 8장

in #kr-mindfulness6 years ago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

바가반(BHAGAVA-N)을 산스크리트어로 '존엄한 이,훌률한 이,깨달은 이'란 뜻이라고 한다. ('기타'는 노래란 뜻이다)(산스크리트어 '바가반'이 우리나라말의 '부처'로 변형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봉선사에서 번역한 글에는 한글표기를 '바가왓기타'로 한 것으로 보아 실제 발음은 '바가왓기타' 로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바가바드기타'에서 약간 변형한 '바가박티기타'로 부르고 싶다.
바로 내가 쓸 감상평 8장과 9장에서 핵심이 '박티(bhakti)'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봉선사 번역문 산스크리트어 단어 참조 주해에 보면은 (8장 22, 351쪽)
산스크리트어 bhakti

bhakti(󰆷. separation, partition, division; a division, portion, share; devotion, attachment)

라고 되어있다.
봉선사에서는 박티(bhakti)를 '헌신'(devotion)이란 한단어로 번역해서 표현했다.
하지만 위 단어들에서 보이듯이 헌신(devotion)이란 뜻 외에도 부분(partition),분절(separation),나뉨(division)등의 뜻이 더 강하다.

나는 박티(bhakti)를 '신성함의 현현'(신의 현현??) 이라 표현하고 싶다. (즉 아트만의 행위)
( 저 위에 영어단어들을 차용하자면 atman's division(신성한 힘의 나뉨)이라 표현해도될것이다. 일종의 '화신'과도 맥이 통하는 개념이다.)

7장이전에는 자신내부와 세상에 있는 신성한 힘(아트만 또는 브라만)을 깨닫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8장,9장에서는 불멸이란 무엇인지, 그 힘으로 어떻게 불멸을 획득하는지에 설명되어있다.
그 방법이 다름아닌 박티(bhakti)이다.
(혹시 산스크리어 '박티'가 우리나라언어 '밝히다'로 변해진 것 아닐까)

------------아래는 책구절적고 제가 이해한것 적은것인데 문체를 바꿉니다. (뭐, 다른 것 한다음 쓰다보니 문체가 바뀌게되었습니다. 이해바랍니다.)__________

8장 22 (봉선사 번역본 351쪽)

모든 것을 넘어선 지고의 존재인 그것은, 아르주나여!
다른 것이 아닌 다만 헌신으로 가질 수 있다.
모든 존재들은 그러한 그것의 내부에 머물러 있으며,
그것은 모든 존재들에게 편재해 있다

8장에서는 불멸의 비밀에 대해 설명합니다.
불멸에 대해 설명하기위해 죽음에 대해 설명합니다.
왜냐면 불멸이란 죽음이란것이 없는상태, 즉 끝없는 윤회(과거,현재,미래)에서 벗어난 상태이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죽음의 순간(임종의 순간)에 불멸에 다다르는 비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죽음을 통해서 그 불멸이란 것에 닫는 것은 쉬운방법일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아트만(내면의 신성함)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면, 8장에 이야기한대로 죽을때 그것을 생각함으로 그것에 다다를수 있기 때문입니다.

8장 10

죽음에 이르렀을 때 확고한 생각(manasācalena)에 의한 헌신으로 참나와 하나가 되어,
그리고 오직 수행의 힘으로 양미간에 온전히 숨을 들이쉬면
그는 지고하고도 찬란한 그 궁극의 존재에 가닿게 된다.

위에 적힌 대로 '확고한 생각'(manasācalena) 을 하려면 최대한 살아있을때 아트만을 깨닫고 행위하고 해야되니 아주 쉬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트만의 행위는 너무 쉽습니다. 그냥 결과에 집착안하고 행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해당장 다시읽어보면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죽을때만이 불멸에 다다르는게 아닙니다....언제나 가능합니다.

8장 12~14

감각의 모든 문을 통제한 채 생각은 가슴에 가둬두고,
숨결을 자신의 머리에 고정시킨 채 수행의 자세를 지속시키며,
브라흐만인 '옴'이라는(omityekākṣaraṁ) 한 음절을 부르며 나를 기억하는 그러한 그는
육신을 떨쳐버리고 나아가 지고의 목적에 가닿게 된다.
끊임없이 집중된 마음인 그는
영원히 나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게 있어서 나는 손쉽게 얻어진다. 빠르타여!
언제나 참나와 하나 된 수행자에게 있어서

위에 보면 손쉽게 얻어진다고 합니다.(참나와 하나된 수행자에 한해서....)
사실 참나와 하나된 수행자면 구지 명상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쉽게 얻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위에보면 'omityekākṣaraṁ' 이것을 ''옴'이라는 한음절을 부르며' 란 번역했는데 이부분에 대해선 좀 더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면 구지 소리내지 않아도 소리낼수 있는 우주의 언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과 연관되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사실 아트만의 힘의 반영은 소리와 비슷한 형태(즉 파동의 힘)로 구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소리를 통해서 하나 소리가없는 파동의힘을 통해서 하나 뜻만 맞다면 비슷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꽤 길어졌는데 9장을 나중에 시간나면 써보도록하겠습니다.
(9장은 브라만,역시 수행하고 있기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고 인간인수행자가 어떤 종류의 것을 행하면 신의축복(아트만의 축복)을 받는지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저의 평가

종교서적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책들이 너무 종류가 많고 사람에 의해 쓰여진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본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진리을 깨닫는데 많은 장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저는 이런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나 예수님의 신통한 능력으로 직접 책을 남겼다면 훨씬 낮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요. 그러나 '사실 진리란 문자를 통해서 표현되는것이 불가능하고 깨닫는 것도 불가능 하기에 그렇지 않을까 ?' 란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번에 바가바드기타를 보게 되면서 부처나 예수님처럼 신적인 존재가 직접 책을 남긴다면 이런 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진리란 무엇인지 왜 수행해야 하는지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고 또 신적인 존재만이 말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비밀들도 그렇게 명료하게 적혀있습니다....사실 진리란게 별개아닙니다. 일상생활이나 잠을자면서도 느끼고 깨달을 수있는 당연하고 간단한 것들입니다. 당연하고 간단한 것들이기에 더욱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 바가바드기타 란 책의 구절도 원문과 번역을 음미하면서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많은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한다면 그 단어,단어와 문장들에 숨겨진 수많은 또 다른 진리들을 깨달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그냥 개인적인 횡설수설 글

---------------그리고 아래는 그냥 책읽으면서 개인적인 다른 생각 횡설수설 적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 생각 '아트만의 힘' 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과 신을 동일시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구절이 꽤 있습니다.
자신 내부의 신이 곧 브라만, 즉 아트만 아니라면 그것을 발견한자는 그와 동일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신이란 사실 형상화나 우상화된 존재로써 아트만이나 브라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의 힘(=아트만의 힘)이란 것 역시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 서 이야기하는 '무','공' 같은 개념역시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합니다.

또한 유교에서이야기하는 '충'과 서또 한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합니다.
'충'이란 글자를 보면 가운데중+마음심 으로 되어있는데 자기 자신에 있는 신성한 힘, 즉 아트만 을 가르키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이 개념이 변질되어서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잘못알고있는 게 아닐까요?)
'충'이 자신안의 아트만의 힘이라면 '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존재하는 신성한힘(아트만,브라만)입니다...(유교의 역경적 의미로는 중천건괘-충-내면의신성함의이해, 중지곤괘-서-모든것의 신성함의이해 라고 연결지을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이것(아트만,브라만,충서,건곤)은 어떤현상으로도 어떤 언어로도 표현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유교에서는 '신'이라는 표현을 안쓰는 것입니다. 바가바드기타에서도 '신'과 '브라만,아트만'을 구분하죠.......

음악두개링크

아래는 바가바드기타에 '가야트리 운율'이란게 있길래 뭔가 유투브에 찾아보니 있더군요 그것 링크입니다.
gāyatrī 에 대해 찾으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많은 것이 있는데 아래는 그것을 대중음악한 그런것인것봅니다....다른것은 온유하고 맑은 느낌이 드는 주문?노래?였다면 이건 약간 슬프면서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중노래네요

그리고 아래 링크는 바가바드기타 책 알기 며칠전에 찾은 동영상인데 음악이 참 신비롭습니다. 영상중간에 관중들보면 조금 특이한게 무슨 종교단체 같아보이는데 힌두교관련 종교가 아닐까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들은적 있는데 아시는분 계시나 모르겠는데요 '불가사리' 라고, 한달에 한번 모여서 공연겸 즉흥연주시연겸 하는데 이들은 힌두교 무관이고 일종의 즉흥적인 전위음악,실험음악,노이즈음악하는 어디에도 속에 있지 않고 누구나환영하는 그런 그냥 그런곳................느낌만 같다는 것입니다. 음악자체이나 운율은 전혀 틀리죠^^;)

이글은 여러가지 잡다한 이야기 글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다음글에 적을 9장에 대해선 구절 적고 제가 이해한 것 말하고 그렇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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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바가바드기타를 볼 때
번역 때문에
여러 권을 구해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전을 볼 때면
정말 예수나 부처를 직접 만나고 싶은 열망도 들었고요.

여러권식이나요.....저는 이제 막접해서 인터넷으로 볼수있는 것부터 보고 있는데...........이번기회에 감상평릴레이를 하면서 좀더 열심히 보려고 했지만 그냥 몇구절을 마음에 담아가는 경도가 고작인가 봅니다....

  1. 박티라는 의미가 불교에서는 4무량심(자비희사)과 연관지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결국 수행이라는 것은 나와 타자(나아닌 모든것)와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것인데 이것이 결국은 무아사상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불교수행자들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무아를 왜곡되게 이해하는 점이 있는것도 같습니다. 무아를 주장하면서 당사자 자신은 무아를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지요. 남은 무아이고 자신은 무아가 아닌 뭔가 우월한 존재가 되려는 착각속에 사는 것같지요. 우선 종교우월주의의 색깔은 벗어버릴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나의 종교가 제일이라는 사고방식부터 버려야하겠지요. 이것이 불교에서 정의하는 첫단계의 성인인 수다원과에서 성취하는 사견을 뿌리뽑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종교의 시대가 아니라 영성의 시대인거 같습니다.
  2. 주역의 건괘와 곤괘를 忠과 恕로 배대시키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천의 에너지인 乾을 받은 坤, 암말의 이로움처럼 항상 여일如一之心을 갖음, 표현이 멋지십니다. 나중에 주역과 관련되어서도 걱정하지마님과 재미있는 소통을 나눌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양사상을 아주 조아라합니다.
  3. 혹시 남방상좌불교의 아비담마와 대승불교의 유식론을 공부하셨는지요?
  4. 스팀잇의 보상이 적다고 하더라도 꾸준하게 소통하시면 재미있습니다. 지치지 마시고 계속 좋은 글들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겐 원문의 한 부분을 다르게 해석하려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르게 볼려 함으로써 그로부터 수많은 다른 의미들이 파생되거든요. 그중하나가 박티고요...주역도 마찬가지고요...
남방상좌불교의 아비담마는 처음 들어보네요.......유식론은 뭔지 모르고 단어만 들어봤습니다...

정성들인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