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e-book에 푹 빠져 있습니다.
고지식하고 때론 고루하기까지 한 저로서는
당연히 책은 종이 넘기는 맛이지,라는
생각에 갇혀 e-book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웬걸 한 번 e-book을 구입해 읽어보니 너무 편하고
덩달아 독서량도 훨씬 더 늘게 되더군요.
(저의 e-book 찬양론은 다음 포스트에서 표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깥은 여름"은 김애란의 단편소설집으로
총 7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상실과 그 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복구불가능한 상실에 처한 인물들이 갖는 감정과 생각이
마치 씨줄과 날줄을 정성스레 겹쳐 짜는 듯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소설집의 첫 이야기인 <입동>에서 한 젊은 부부는
힘들게 장만한 '아파트'란 공간에서
보통의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가지만
어렵게 가졌던 아들 영우를 사고로 잃게 됩니다.
[ 이십여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중략-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
소설에서는 화자가 아이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현실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아이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을 헐어 써야 하는 참담함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상실'은 잃어버리는 것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삶에 짙은 얼룩을 남긴다는 것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비유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근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노찬성과 에반>에서 찬성은 유기견이자 노견인
'에반'을 만나 집에 들이게 됩니다.
[ 순간 물컹하고, 차갑고, 뜨뜻미지근하고, 간지럽고,
부드러운 뭔가가 찬성을 훑고 지나갔다.
-중략- 얼음은 사라지고 손에 엷은 물자국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찬성의 내면에도 묘한 자국이 생겼는데
찬성은 그게 뭔지 몰랐다. ]
찬성이 에반을 마음에 들이게 된 순간이
너무도 마음에 와닿게 묘사되어 있는데,
소설에서는 찬성이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던 사건과
암에 걸린 에반을 잃게 되는 과정이 묘하게 중첩되면서
상실의 마음과 현실의 욕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건너편>에서는 오랜 연인의 이별을 다루고 있습니다.
[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
경찰공무원 시험을 함께 준비했던 연인들 중 한 명만 합격하게 되었고,
그 후 그들은 그 사이의 균열을 감당하지 못해 이별에 이르게 됩니다.
[ 도하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중략-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
이 구절은 개인적으로 매우 슬프게 와닿았습니다.
4포, 5포세대라는 요즘 젊은 세대의 현실같기도 했고요.
<침묵의 미래>에서는 소수언어의 상실을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서사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 이 안에서 어떤 이들은 고독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고독을 예상하는 고독 때문에 조금씩 미쳐갔다. ]
<풍경의 쓸모>에서 지방대 강사를 하고 있는 정우는
기대마지 않았던 교수 임용에 실패하고
아버지의 ‘여자’의 죽음을 겪습니다.
[ 수도와 지방의 이음매는 무성의하게 시침질해놓은 옷감처럼 거칠었다. ]
저는 이 단편소설집을 읽으며 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작가의 관찰력과 묘사, 비유에 경탄을 금치 못했는데요.
평범한 풍경에서 저런 비유를 뽑아 내다니...
역시 소설가구나, 싶었습니다.
[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
<가리는 손>에서 화자는 '재이'를 홀로 낳아 기르고 있는데,
'재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동남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 첫돌 무렵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 입안에
새싹처럼 작은 흰 뼈가 돋았다.
인간이 가진 뼈 중 유일하게 바깥으로 드러난 거였다.
재이는 이유식에 잘 적응했다.
말을 배우듯 난생처음 접한 ‘맛’들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생각과 판단이 깃든 얼굴로, 오물오물 턱 근육을 움직이면서.
생각의 그물 짜기, 감각의 실뜨기를 이어갔다. ]
화자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순간들이
놀라운 묘사와 비유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 그래, 엄마랑 아빠는...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에서 화자는
교사였던 남편이 현장학습에서 학생을 구하려다 사망하는 사건을 겪습니다.
소설의 플롯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그 봄의 사건,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
[ 그리고 그렇게, 여전히 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과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시간 남편이 정말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자의 지독한 상실감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남편이 구하려 했던 학생의 누나로부터 온 편지를 읽으며
치유의 희망을 조금이나마 기대하게 됩니다.
사실 그 기대는 화자가 아닌 바로 제가 갖게 되는 것이지만요.
또한 화자는 그 당시 학생을 구하려 했던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소설의, 그리고 소설집의 끝을 맺습니다.
[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겨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중략-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
해랑님 너무 잘보고갑니다- 와닿는 구절이 한 두개가 아니네요!
김애란 작가 소설 꼭 저도 봐야겠어요 ㅎㅎ
잘 보고 가셨다니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저도 좋은 책을 읽고 소개드리게 되어 기분이 좋네요^^
이북좋죠~ 저도 거의 90프로 이상은 이북으로 보는데, 간편하고 좋은것같아요:)
네 저도 뒤늦게 이북의 매력에 빠져서 엄청 좋아라 하고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김애란 작가 너무 좋아요 ㅠㅠ 바깥은 여름도 좋고, 달려라 아비도 너무 좋게 읽었습니다. 특히 <입동>....ㅎㅎㅎ 저는 아직까지 e-book보다는 책의 질감이 더 좋던데, 한번 e-book도 도전해봐야겠어요!
네 아무래도 편의성이나 가격면에서 이북이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강추합니다.
가성비도 있었네요 :) 눈은 아프지 않으신가요~?
새로운 한주 화이팅!!!
가즈아!
네 짱짱맨님 달려요 달려~~~
Joey Park의 보팅 파워 나눔
0.15$ 보팅 완료
이벤트 마무리하고 자야 되서 다 읽지 못 하고 갑니다 ㅎㅎ
다음에 여유있을 때 다 읽고 소통할게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뉴비들 위해 이벤트 열어주신 것 감사드려요^^
좋은 밤 되세요~~~
김애란 작품은 꼭 읽어봅니다. ^^
네 김애란 작품이 소위 평타 이상은 하는 것 같아요.^^
워낙 문장을 잘 쓰는 작가니까요.
앗.. e-book 찬양글 보고 싶어요..
경험해보지는 않았는데 왠지 종이감성이 없다고
써보지도 않고 별로 안좋다고 생각했는데!
해랑님 후기 보고 저도 이북에 대한 생각을 다시해보고싶어요!
네 얼른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종이책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또 그 나름대로 좋은 것 같아요~~~
바깥은 여름책은못보았는데.. 이번에 구매목록에 넣어서 조만간 읽어 봐야 할거 같네요. ㅎ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괜찮은 책인 것 같아요^^